이 책을 신청할 때 나는 19개월 된 딸에 대한 정서적인 케어에 관심이 집중되어 있었고 이 책이 왠지 세상의 엄마들이 푸근하게 앉아 "이렇게 이렇게 해 봐~ 어렵지 않아~." 하고 얘기해줄 것 같았다.
이 책이 나의 정서도 만져줄 것을 기대했었나보다.
그런데 왠걸! 크리스틴 그로스-노는 하버드 출신답게 한 권짜리 육아 논문을 나에게 선물했다. 19장에 달하는 각주 참고 문헌 리스트를 붙여서. 3분의 1쯤 읽었을 때는 '도움은 되지만 너무 딱딱하네. 너무 생각해야 하는 책이야.' 라고 생각했는데 그것은 아마도 나의 정서를 건드려 줄 것이라는 기대를 충족시키지 않아서 온 불만이었던 것 같다.
정서... 정서가 어디서 오는데? 저자가 보여준 핀란드나 일본, 스웨덴 같은 나라의 정서 교육은 여러가지 측면에서 이루어진다. 좋은 음식, 타인에 대한 배려, 인사, 집안일을 나누어서 하는 것, 부모의 최소한의 개입을 통해 창의성과 독립심을 키우는 것 등. 정서가 마음을 나누는 차원만의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나는 내 자녀들을 나의 무한한 사랑을 바탕으로 한 없이 자유롭게 키우고 싶다는 생각만 가지고 있었는데 이 책은 자녀들이 더욱 행복할 수 있는 방법 (자유로운 것 뿐만 아니라), 책임감을 키움으로써 앞으로의 인생을 단단히 해나가는 것이 어떤 것인지, 그러기 위해 부모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준다. 집안일을 일찍, 세 살에서 다섯살 부터 시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이야기하는데 딸이 내년에 세 살이니까 내가 지금 이 책을 만난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이미 매일 아침에 나와 함께 요리를 하고 있지만 좀 더 본격적으로 채소 씻기 같은 것을 부탁해야겠다.
이 책을 읽고 실천 할 것을 몇 가지 정리해보았다.
1. 더 적게 가지는 아이가 더 행복하다는 이야기를 보고 장난감, 신발, 옷을 대폭 정리하기로 했다.
2. 절제된 식습관에 대한 이야기를 보고 간식을 줄이고 식사 전,후에 고개 숙여 "고맙습니다~!" 인사를 하기로 했다.
3.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비체계적인 놀이 시간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보고 좀 더 또래들과 어울려 놀 기회를 많이 만들고 되도록 놀이터 보다 넓은 자연에 풀어놓고 마음껏 놀도록 해주자고 결심했다. 실제로 오늘, 바다를 넓은 체육공원에 데려갔더니 혼자 이 길 저 길 돌아다니며 뒤도 안 돌아보고 잘 놀더라.
4. 덴마크, 독일의 4시간 야외 활동을 하는 숲 유치원 이야기를 보고 날씨 상관 없이 잘 놀도록 좋은 장비를 구입하고 야외 활동 시간을 대폭 늘리기로 결정했다. 내일 바람막이 사러 가야지. 바다 것과 내 것.
5. 아이가 집안일을 돕는 것이 아이를 위해 여러 면에서 좋다는 이야기를 보고 지금부터 옷은 옷장에, 신발은 신발장에, 장난감은 장난감 박스, 책은 책장에 넣는 습관을 만들도록 훈련 시키기로 했다.
이 실천들은 나에게 혁명이다. '자유롭게'가 육아의 중심 가치였던 나는 신발도 많은 것 중에 선택하게, 옷도, 장난감도 많은 것 중에 자유롭게 선택하기를 바랬고 음식도 자유롭게 먹고 싶은 만큼 먹기를 바랬다. 야외 활동은 내 컨디션 따라 결정했고 비가 오면 당연히 집 안에서 놀았다. 집안일은 고맙게도 바다가 조금씩 알아서 수건 개고, 가방 들어주고, 요리할 때 옆에서 플라스틱 칼로 썰어주어서 의도하지 않게 나누어 주고 있었던 것이고. 어찌보면 그 자유가 바다에게 보다 나에게 주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내 관점으로.
바다가 성장해서 어떤 어른이 될 것인지, 바다가 더 행복한 길은 무엇인지를 바라보는 눈을 이 책을 통해 가지게 되었다.
똑똑한 한국인 크리스틴 그로스-노, 고맙습니다.
베이비트리, 항상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