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부는 날의 시

                                       김기택

 

바람이 분다

바람에 감전된 나뭇잎들이 온몸을 떨자

나무 가득 쏴아 쏴아아

파도 흐르는 소리가 난다

바람이 부는 곳으로 가보자고

바람의 무늬가 움직이는대로 따라가보자고

작고 여린 이파리들이

굵고 튼튼한 나뭇가지를 잡아당긴다

실처럼 가는 나뭇잎 줄기에 끌려

아름드리 나무 거대한 기둥이

공손하게 허리를 굽힌다

 

 

 석달 전부터 '바람이 불어오는 곳, 그곳으로 가요~' 노래를 흥얼거렸다. 그 즈음에 가을 제주도는 어떨까 궁금해졌고, 덜컥 비행기표를 예약했다. 그리고 지난 월요일, 아이 옷으로 가득한 큰 배낭을 뒤에, 아이는 앞에 메고 제주도 김녕으로 갔다. 잘 왔다고 환영하듯 태풍이 불고 비가 쏟아진다. 그래, 잘 온 거야. 바람 부는 데로 이리 저리 실컷 휘청대고 흔들릴 수 있는 나날들이었다.

 아침이면 이제 조금 걸음마를 시작한 딸아이를 앞세워 길을 나선다. 그 길이 그 길 같은 낮은 돌담길을 마구 헤맨다. 바람이 불어오는 곳, 바다 내음 날아오는 곳으로 귀와 코를 앞세우면 어김없이 초록빛 김녕 바다가 펼쳐졌다. 해운대 바닷가에선 모래도 파도도 질색하던 아이가 여기선 철퍼덕 주저 앉아 신이 났다. 아이 걸음에 맞추어 걷다가 앉았다가 걷다가 앉았다가... '작고 여린 이파리'같은 아기 손을 잡고 가자는대로 이끌려 간다. 잠온다고 칭얼대면 더 가고픈 여행자의 마음을 미련없이 접고 엄마의 맘으로 집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아이가 깨면 다시 길을 나선다.

 바람 따라 나선 길인데, 일주일 정도의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 가만 생각해보니 정말 열심히 아이를 따라다니다 온 거 같다. 아무 이유 없이 이리 가자 하면 이리 가고, 저리 가자 하면 저리 가고 올라가자 하면 올라가고 내려가자 하면 내려가고... 공손하게 허리를 굽히고 작고 여린 아이 손에 이끌려 실컷 흔들리다 왔다.

 그래, 이게 진짜 여행일지도 모른다. 온 몸의 감각을 열어놓고서 작은 것을 놓치지 않는 것. 부드러운 바다 바람, 희미한 바다 냄새, 아이의 작은 손가락과 작은 발걸음. 작디 작은 것들에게 온 마음을 내어주고 공손히 허리를 굽히는 여행. 꼬마 길잡이를 앞세운 길 위에서 마음껏 작아질 수 있는 시간이었다.

 

더하기. 그러나! 모든 일에는 댓가를 지불해야 하는 법. ^^: 15개월 꼬맹이랑 단둘이 하는 여행은 정말 많은 체력을 요했다. ㅠㅠ 요 꼬맹이 바람 따라 지치지 않고 실컷, 유연하게 흔들리려면 열심히 체력을 키워야 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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