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들
문태준
모스크바 거리에는 꽃집이 유난히 많았다
스물네 시간 꽃을 판다고 했다
꽃집마다 '꽃들'이라는 간판을 내걸고 있었다
나는 간단하고 순한 간판이 마음에 들었다
'꽃들'이라는 말의 둘레라면
세상의 어떤 꽃인들 피지 못하겠는가
그 말은 은하처럼 크고 찬찬한 말씨여서
'꽃들'이라는 이름의 꽃가게 속으로 들어섰을 때
야생의 언덕이 펼쳐지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나는 그 말의 보살핌을 보았다
내 어머니가 아궁이에 불을 지펴 방을 두루 덥히듯이
밥 먹어라, 부르는 목소리가
저녁연기 사이로 퍼져 나가듯이
그리하여 어린 꽃들이
밥상머리에 모두 둘러앉는 것을 보았다
'들'이라는 의존명사가 주는 따뜻함과 잔인함에 대해 다시 한 번 곱씹어 본다.
꽃들, 아이들, 우리들, 백성들... 모이면 '은하처럼 크고 찬찬'하며 순한 말들이 있는가 하면,
요즘 뉴스를 장식하는 '그들' 무리들은 모여서 더 잔인하고 비열하기도 하다. 추석이 되어 온 식구들이 다 모여 반가우면서도, 마음 한 구석엔 끝내 돌아오지 못한 '아이들', 마음 시릴 '부모들'이 생각나 미안하고 죄스럽다. 아이를 낳고 같이 살면서 달라진 고마운 마음가짐 가운데 하나가 남의 아이가 내 아이 같이 느껴지는 것이다.(내 아이를 남의 아이 보듯 좀 더 너그럽게 지켜보는 건 내공이 부족해 아직 욕심인 것 같고. ^^;) '꽃들'이라는 간단하고 순한 간판, 잊지 말고 가슴 속에 품어 우리 밥상머리에 모두 같이 둘러 앉을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