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여행을 할 만큼 했고, 여행과 연관된 책을 무지 좋아하는 나지만, 사실 나는 여행기를 읽기에 그리 좋은 독자가 되질 못한다. 자신이 다녀온 여행지에 대한 찬사를 아끼지 않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속으로 '음.. 거기서 한 3년만 살다보면 생각이 좀 달라질 걸.' 하며, 잠자코 듣고만 있게 된다.

그렇다. 나는 물과 공기와 언어가 전혀 다른 나라에서 '선인장으로 김치를 담궈먹'어야 할 만큼, 절실한 상황을 매순간 겪으며 14년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나마 엘리사벳 님의 호주여행기가, 읽기도 전에 조금 신뢰가 갔던 건, 단 며칠이거나 몇 주, 몇 달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이 결심하기 힘든 긴 기간동안 해낸 여행이라는 점 때문이었다. 또 책을 쓴 계기가 호주 여행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그 나라에 관한 여행기가 너무 없기 때문이었다는 말에, 다시 한번 내 마음이 반짝였다! 나는 살면서 무언가에 대해 간절히 필요한데, 찾는 정보가 부족하거나 없을 때, 그게 바로 내가 할 일이라고 생각해 왔다. 앞으로 호주 여행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이 책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훌륭한 의미를 가지지 않을까.

자신의 이야기를 책으로 내는 것은 누구에게나 삶의 멋진 목표와 꿈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의욕만 가지고는 어려운 게 글쓰기다. 무지한 인내와 끈기, 기록, 성실함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그녀는 이 일을 해냈다. 300쪽이 훌쩍 넘는 여행기를 일관된 관점과 긴장을 유지하며 끝까지 써냈다. 그만큼 이 여행을 통해 많은 것을 느끼고 배웠기에, 자신의 삶을 <호주 이전과 이후>로 나눌 만큼 그 모든 것을 자기것으로, 자기 삶 안으로 끌여들일 수 있었던 것 아닐까. 호주에 대한 소개와 함께 이 책을 읽는 가장 큰 또 하나의 재미는 한 여성의 내면을 꼼꼼히 들여다 볼 수 있었다는 점이다.

여행을 갈망하는 이유. 처음엔 단순히 도시부적응 증상인 줄 알았다. 복잡하고, 소란스러운 그곳에서 나는 늘 외로웠고, 바쁘게 살다보면 내가 무엇을 위해 이렇게 사는지조차 헷갈릴 때가 많았다.(86쪽)

 

이런 마음으로 시작한 여행이 마지막에 주인공을 어떻게 바꿔놓을지, 한 사람의 내면의 변화와 성장을 드라마틱하게 들여다 볼 수 있었다. 성실한 사람들이 흔히 그렇듯이 글의 '재미'는 좀 부족할 수 있는데, 일다 보면 자주 키득키득, 가끔은 푸하하 소리를 내어 웃게 된다. 여자의 입장에서 남자의 단순함이나 게으름, 둔함을 묘사한 부분이 많은데, <화성 남자 금성 여자>의 호주판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만큼^^ 

개인적으로 '돋보기 진료비' 에피소드가 가장 재밌었는데,

지금도 그 상황을 상상하면 웃음이 터진다.

 

나에게 이 호주여행기가 너무 친근하게 와 닿았던 데는 나름 이유가 있었다. 그때가 90년대 언제쯤이었을까. 회사에 출근해 한겨레 신문을 펼쳐 보고 있을 때, 베낭여행기 공모전 소식을 발견했다.

망설일 것도 없이 나는 여행기를 투고했고, 결과는 2등 당선. 2등 상금은 호주 왕복 항공권이었다. 왜 하필 호주야? 하며 심드렁하게 떠난 여행이었는데, 나 역시 <호주 여행 이전과 이후>로 내 삶을 구분지을 수 있을 만큼 큰 계기가 되었다.

그런데 20여 년이 지난 지금, 한겨레 육아사이트에서 세대가 다른 엄마로 그녀와 만나 호주에 관한 책을 내가 이렇게 선물받다니!!  삶이 이렇게 재밌고 신기할 수가.

마지막 책장을 덮고는, 이제 별로 신기한 것도 없고 꿈꿀 것도 없는 이 40대 아줌마에게

작은 꿈 두 가지가 생겼다. 언젠가, 그녀가 사는 화순 시골집 마당을 한번 찾아가보고 싶은 꿈,

또 하나는 내가 사는 일본으로 그녀를 한번 초대하고 싶은 꿈.

어디가 됐든 함께 만나

잔잔한 등불을 켜고 무릎 담요를 덮은 채, 서로의 호주 이야기를 더 깊이 나눠보는 것.

 

한 사람의 내면을 여행하는 것이 나에겐 가장 즐거운 여행이고 큰 공부다.

엘리사벳 안정숙 님에게 딱 어울리는 말을, 고미숙 님의 책에 나온 한 구절로 표현한다면

"삶은 명사가 아니라 동사다."

그녀의 두 번째 책, <아기와 나 때때로 남편>이 벌써부터 기다려지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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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희
배낭여행 중에 일본인인 지금의 남편을 만나 국제결혼, 지금은 남편과 두 아이와 함께 도쿄 근교의 작은 주택에서 살고 있다. 서둘러 완성하는 삶보다 천천히, 제대로 즐기며 배우는 아날로그적인 삶과 육아를 좋아한다. 아이들이 무료로 밥을 먹는 일본의 ‘어린이식당’ 활동가로 일하며 저서로는 <아날로그로 꽃피운 슬로육아><마을육아>(공저) 가 있다.
이메일 : lindgren707@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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