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부쩍 신영이가 질문을 많이 한다.
그림책을 읽거나 이야기를 하다가 모르는 게 나오면 '그게 뭐야?', '왜 그래?' 하고 묻는다.
'함정이 뭐야?', '소굴이 뭐야?', '눈높이가 뭐야?', '이슬이 뭐야?', '전쟁이 뭐야?',
'왜 힘들게 운동을 해?'와 같은 질문들을 계속 쏟아내고 있다.
최근 부쩍 많아진 신영이의 질문에 대답해주면서 
어떻게 하면 아이의 질문에 잘 대답해줄 수 있을까 생각해보게 되었다.



아이의 질문에 대답할 때 내가 자주 써보려 하는 방법 중 하나는 되묻기다.
물론 되물어도 '몰라'라는 대답이 돌아올 때가 많지만,
그래도 되묻기를 통해 
아이가 자기가 품은 의문에 대한 답을 직접 생각해볼 기회를 가질 수 있고,
여러 아이들이 있을 경우에는 
한 명의 의문이 여럿의 의문으로 확산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몇 달 전 유치원의 '책 읽어주는 부모' 프로그램에 참여해서
유치원 아이들에게 그림책을 읽어준 적이 있다.
그때 한 아이가 벌레가 밤 속에 들어가 있는 그림을 보고
'근데 어떻게 벌레가 밤송이 속에 들어가요?'하고 물어왔다.
그 질문을 받고, 다시 아이들에게 되물었다.
'아, 정말 궁금하지요? 
밤송이는 딱딱하고 구멍이 없는데, 어떻게 그 속에 애벌레가 들어갔을까요?'
그러자 아이들은 그 물음에 대한 답을 찾으려고 골똘히 생각해보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되묻기가 한 아이의 의문을 여러 아이들의 의문으로 만들 수 있다는 걸 새삼 확인했다.


얼마 전에는 아침에 유치원에 가려고 현관 문 앞에 먼저 나간 신영이가 
뭔가를 크게 소리치더니 내게 말했다.

신영: 아빠, 내 목소리가 울려.
아빠: 어, 그러네. 메아리가 들리네.
신영: 메아리? 산 속에 숨어 있는데 어떻게 들려?
아빠: 신영이 생각엔 어떻게 들리는 것 같아?
신영: 몰라.

(신영이가 유치원에 다녀온 뒤 한 번 더 물어보았다.) 
아빠: 신영아, 신영이가 아침에 메아리가 산 속에 숨어 있는데 소리가 어떻게 들리는 지 물었잖아? 
신영: 어.
아빠: 생각해봤어?
신영: 아니. 
아빠: 지금 한 번 생각해 봐.
신영: 잘 모르겠어.

아이가 뭔가를 물어올 때 내가 되물으면 보통은 이렇게 '몰라'라고 할 때가 많다.
어떻게 하면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조금이라도 생각해보고
자기 생각을 말하게 될까?
되묻는 방법이나 태도에도 좀 더 정교한 무언가가 필요한 걸까?
내가 생각해 본 가설 중 하나는 
'아빠가 답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니까 자기가 답을 생각해보는 수고를 하기보다는
아빠의 대답을 얼른 듣기 위해 모른다고 하는 게 아닐까'하는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아빠도 정확한 답을 알고 있지 않다고 말하는 데서 시작해야 할까?
'아빠도 잘 모르겠는데, 함께 생각해볼까?' 혹은 '함께 찾아볼까?'

실제로 내가 알고 있는 게 정확한 답이 아닐 수도 있을 것이다.
아이의 질문에 대해 과학적 지식으로 답하거나
그 뜻을 사전적으로 설명해주는 것만이 답은 아닐 테니까 말이다.
그렇다면 부모인 나 또한 아이와 마찬가지로
모름의 상태에서 함께 배워야 하는 입장에 있다고 볼 수도 있다.
다음에 신영이가 질문을 하면 아빠의 무지(!)를 고백하고,
함께 생각해보자고 해봐야겠다.



아이의 질문에 대답하는 두 번째 방법은 그림책에서 배운 것이다.
엄마 마중.JPG
<엄마 마중>의 아가가 전차 차장에게 묻는다.
"우리 엄마 안 와요?"
그러자 차장은 대답한다.
"너희 엄마를 내가 아니?"
두 번째 전차 차장도 같은 대답을 한다.

그런데 '우리 엄마 안 와요?'라는 질문을 받은 세 번째 차장은 이렇게 대답해준다.
"오! 엄마를 기다리는 아가구나."
그리고 전차에서 내려 말해준다.
"다칠라. 너희 엄마 오시도록 한 군데만 가만히 섰거라. 응?"

<나를 불편하게 하는 그림책>에서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아이의 질문에 답하는 나의 태도를 돌아보며 먹먹해졌다.
그동안 내가 해준 대답들 중에도 첫 번째, 두 번째 차장의 것과 같은 대답이 많지 않은가!
질문의 껍데기만 보았지,
그 안에 담긴 아이의 마음, 그러니까 아이의 느낌과 바람은 얼마나 보았던가!
아이의 질문에 세 번째 차장처럼 답할 수 있다면, 그런 일이 많아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지만 현실은 그보다 복잡하고 어렵다.
오늘 아침에 신영이가 물었다.

"아빠, 나 오늘 유치원 안 가면 안 돼?"
"유치원 안 가고 싶어? 
"응. 주말 지낸 이야기 그리는 거 싫어."
"뭣 땜에 싫어?"
"마음대로 못 그리고, 주말 지낸 이야기 한 것만 그려야 되잖아."
"아, 신영이는 마음대로 그리고 싶은데, 그렇게 못하는 게 싫구나?"
"응."
"그럼, 아빠한테 좋은 생각이 있는데, 들어볼래?"
"뭔데?"
"신영이가 주말 동안 집에서 마음대로 그림 그린 이야기를 하고, 그 그림을 그리면 되잖아."
"그래도 싫어. 어디 다녀온 이야기랑 가족들 나오는 이야기 해야 된단 말이야."

나름대로 신영이의 감정을 읽어주려 했지만 통하지 않았다.
주말 지낸 이야기 때문에 월요일마다 유치원 가기 싫다고 말하는 건
이미 몇 달째 이어지고 있는 일이다.
'어디 아파서 못 가는 것도 아니고, 
주말 지낸 이야기 하기 싫어서 유치원 안 가려고 한다고 선생님께 말하기가 
죄송하고, 어려우니 신영이가 유치원에 가는 게 좋겠다'고 말해도 소용 없다.
이럴 땐 아이의 마음을 읽어주다가도 내 마음부터 막막하고, 답답해진다.
그래서 '질문에 담긴 아이의 속 마음 읽기'라는 두 번째 방법은 종종 벽에 부딪치고,
나는 좌절한다.



얼마 전에는 신영이가 대뜸 이런 질문을 했다.
신영이의 유치원 친구 중에 올해 엄마가 하늘나라로 간 아이가 있는데,
그 아이의 엄마 얘길 하면서 이렇게 묻는 것이다.

"엄마가 다시 살아나서 만날 수 있어?"

'아, 이런... 난감하다. 뭐라 답해야 하지?' 망설이다 대답했다.

"아니. 다시 살아나는 건 아니야. 하늘에 가서 만나는 거야."
"그럼 빨리 할머니가 되어야겠네?"

윽, 더 고약한 상황이 되어버렸다.
"하늘에서 ** 엄마가 '너희는 건강하고, 재미있게 살다가 와라.'하고 말할 거야."
라고 답해주자 이렇게 묻는다.

"안 들리잖아."

(허걱.)
"... 그치, 안 들리지."


이렇게밖에 답하지 못하고 며칠을 보내는 사이 <바람이 멈출 때>라는 그림책을 보게 되었다.

날이 저무는 걸 슬퍼하며 아이가 엄마에게 묻는다.
"왜 낮이 끝나야 하나요?"
"그래야 밤이 올 수 있으니까. 저길 보렴. 밤이 시작되고 있지?
밤은 달과 별, 그리고 어둠과 함께 너를 위해 꿈을 준비하고 있단다."

아이가 다시 묻는다.
"하지만 낮이 끝나면 해는 어디로 가나요?"
"낮은 끝나지 않아. 어딘가 다른 곳에서 시작하지.
이곳에서 밤이 시작되면, 다른 곳에서 해가 빛나기 시작한단다.
이 세상에 완전히 끝나는 건 없단다."

아, 나도 이 책의 엄마처럼 좀 더 지혜로우면서 희망적인 대답을 해 줄 수 있었다면!
이 그림책을 며칠만 더 일찍 알았더라면!
<바람이 멈출 때>를 보면서 신영이의 질문을 다시 곱씹어본다.
'엄마가 다시 살아나서 만날 수 있어?'

<바람이 멈출 때>의 엄마를 흉내 내어 이렇게 답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엄마는 예전과는 다른 모습으로 다시 살아나는 거야. 
꽃으로 피어나거나 나무가 될 수도 있어.
그래서 새로운 모습으로 **랑 다시 만나고 있는 거지.'


샬로트 졸로토의 <바람이 멈출 때>를 통해 
아이의 질문에 대답하는 세 번째 방법이 있는 걸 알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새로운 앎으로 연결하는 대답 하기'다.


어제도 신영이는 질문을 했다.
아내가 외출한 일요일 낮 시간에 초인종이 울렸다.
설거지하고 있던 나를 대신해 신영이가 대답했다.
"누구세요?"
"엄마 계시니?"
"아니요. 아빠 계세요."
"아빠 낮잠 주무시니?"
"아니요. 설거지 해요."
"그럼 나와서 아줌마가 주는 전단지 좀 받아볼래?"

신영이는 내 말을 듣고 '괜찮아요'하고 답한 뒤 내게 물었다.
"아빠, 누구야?"
"전도하러 왔나 봐."
"전도가 뭐야?"
"자기들이 믿는 신을 믿어보라고 얘기하는 거."
"신이 뭐야?"

아, 이 어려운 질문에 또 답해야 한다. 
"이 세상을 만든..."까지 답하고, '사람'이라고 하자니 어색한 것 같아 
말 끝을 흐리다가 다시 답했다.
"이 세상을 만든 자."
"아. 근데 아빠도 알지 않아?"
"알지."
"근데 왜 얘기하려고 그래?"
"더 얘기해주고 싶은가 봐."
"아."


신이 뭐냐는 질문을 받고 대답하느라 진땀 뺀 나는
다시 한 번 <바람이 멈출 때>의 지혜로운 엄마가 부러워졌다.



질문자로서 신영이는 갈수록 민첩해지는데,
답변자로서 나는 아직 쩔쩔 매고 있다.
아이의 질문에 대답해주는 부모로서 내가 가진 바람은
우선은 아이가 계속 의문을 갖도록 돕는 역할을 하는 것이고,
그 다음은 아이가 자신이 품은 의문에 대한 답을 스스로 찾아보게 하는 것이고,
마지막은 내가 지혜롭고 현명하게 답해주는 것이다.

아직은 아이의 질문을 받으면 버벅거릴 때도 있지만
아이의 질문이 계속될수록,
아빠의 내공도 조금씩 커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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