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운 일곱 살'이란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든 느낌은 거부감이었다.
아이가 자라면서 미운 행동을 할 수도 있는 거지, 
그걸 보고 '미운 일곱 살'이라 이름 붙이는 건 지나치다는 생각을 했다.
'더구나 '미운'이라는 꼬리표를 붙이면 
그게 예언이 되어 '미운' 행동을 더 할 수도 있지 않을까?'하는 우려도 있었다.

그러던 차에 이런 일도 있었다.
신영이와 거리를 걷다가 아는 어르신을 만났는데,
신영이가 인사를 하자 웃으시면서 '아이구, 이 빠졌네? 이제 말 안 듣겠네.'하신다.
이가 빠진 걸 보시고 악의 없이 하신 말씀인 걸 알면서도
한편으론 아쉬운 마음이 생겼다. 
아이에게 대놓고 '이 빠졌으니 말 안 듣겠다'고 말하면, 
아이가 말을 잘 들으란 말인가, 듣지 말란 말인가?
이 빠진 신영(법주사).JPG
(어제 속리산 법주사에 가서 아이들과 찍은 사진. 앉아있는 이 빠진 아이가 신영, 그 옆이 둘째 선율, 맨 앞이 막내 수현이)

그런데 올해 일곱 살인 신영이의 요즘 행동을 보면서
'미운 일곱 살'이나 '이 빠지면 말 안 듣는다'는 말이 
괜히 나오진 않았을 거라 생각하게 된다.
'어르신들이 그렇게 말 하는 데는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텐데, 
내가 그런 말들을 너무 가볍게 흘려들은 걸까?' 돌아보게 된다.

신영이의 요즘 행동들을 보면 이렇다.

- 아침을 먹다 말고 졸리다며 드러눕길래 '한자리에 앉아서 먹어야지'해도 
계속 누워있다.

- 유치원 끝나고 집에 오는 길에 선율이(둘째)가 가방이 무겁다고 해서 
내가 선율이 가방을 들어주었다. 
그러자 신영이는 가방을 든 손을 몸 앞으로 뻗고는 가방을 발로 뻥뻥 차면서 걸어온다.

- 잠에서 깨 거실로 걸어 나오며 '아빠 오늘 유치원 가는 날이야?'하고 묻길래 
그렇다고 하자 '아, 짜증 나' 한다. 
"유치원 가기 싫으니?"
"응." 
"뭐 땜에?"
"다."
"..."

- 하루는 유치원 끝나는 시간에 맞춰 데리러 갔더니 유치원에서 나오자마자 
'아빠, **이네 놀러 가고 싶어.'한다.
'**이네 가려면 학교 버스 타고 가야 하는데, 그러면 돌아올 수가 없잖아.'하며 
안 된다고 하자 
'**이네 놀러 갈 거야! 버스 타고 가면 되잖아!'하며 소리를 지른다.

- 아침 식사 중에 선율이가 느리게 먹길래 서둘러 먹으라고 재촉했다. 
그런데 식사 마치는 시간이 되기 전에 먼저 다 먹은 신영이가 선율이에게 
'느림보', '시간 다 됐어.'하며 놀린다.


말 잘 듣고 예의 바르던 녀석이 이런 행동들을 할 때마다
당황스럽고, 난감하다.
답답하고, 화도 난다.
'으이구, 이 녀석을 정말...'하며 부글부글 끓을 땐 생각한다.
'일곱 살이 되면 미운 행동을 하게 만드는 버튼이 눌러지기라도 하는 걸까?
왜 그 전에는 안 하던 행동들을 일곱 살이 되니까 하는 거지?'

그래서 아이 심리를 다룬 책을 찾아보고, 인터넷 검색도 해보았다.
'유아 사춘기'라는 말도 보이고, 
'자아 개념이 형성되는 시기여서 고집이 세지고, 반항하기도 한다'는 설명도 있다.
그럴 수 있을 것 같다.
아이가 자라면서 독립적인 존재가 되려면 고집도 있어야 하고, 
반항도, 모험도 해보아야 할 테니까.
그런데 문제는 아이가 고집과 반항, 모험을 시작하려 하는데,
부모인 내가 그걸 받아들일 준비가 아직 되지 않은 데 있다.

낙인 효과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미운 일곱 살'이라는 말은 여전히 듣기 불편하지만,
그 말에서 내가 배운 점이 하나 있다.
'미운 일곱 살'이란 말 속에는
'아이가 독립성을 배우는 때가 되었으니 부모인 당신도 받아들일 준비를 하라'는 
메시지가 그 안에 담겨 있는 것 같다.
부모 입장에서는 미울 지 모르지만, 아이로서는 '자기 세우기'를 하고 있는 것이니
밉게만 볼 일도 아닌 것이다.


그런데 한편으론 '미운 일곱 살'이란 말에는 
부모가 빠지기 쉬운 함정도 들어 있는 것 같다.
아이의 행동에 대해 나이 탓으로 돌림으로써 
지금 이 순간 아이 행동의 원인이 된 마음을 보지 못하는 것 말이다.
글을 쓰면서 다시 보니 내가 답답해 하거나 화가 난 신영이의 행동들 속에는
피곤해서 좀 더 쉬고 싶거나 
동생처럼 자기도 아빠의 관심을 더 받고 싶거나
좀 더 놀고 싶어하는 마음들이 있는 걸 알겠다.

교육학자인 루돌프 드라이커스는 아이의 문제 행동을
'아이의 연령에 적합한 행동'이거나 
'낙담한 아이의 행동', 
혹은 '기술이 결여된 행동'이라고 정의했다.
만약 그때 신영이의 행동 속에 담긴 마음을 바라봐주고, 이해해주었더라면,
그리고 그 마음을 표현하는 더 나은 방법을 잘 안내했더라면
신영이의 행동에 내가 그렇게 답답하거나 불편해지지 않았을 것이다.


사실 신영이의 행동을 관찰해보니 눈에 띄는 게 한 가지 더 있었다.
바로 동생들을 돌보고, 함께 놀아주는 것이다.
며칠 전 유치원 가려고 내가 수현이(막내) 옷을 입히고 있을 때였다.
선율이가 찍찍이 운동화를 잘 신지 못하자 신영이가 나선다.
"선율아, 내가 신겨 줄게. 
일 단계, 찍찍이를 떼는 거야. 그 다음에 이걸 딱 잡아당겨. 
발을 넣어. 그리고 찍찍이를 붙이면 돼."
신영이의 행동을 보면서 동생들을 돌볼 마음과 능력이 함께 커진 것 같아 흐뭇했다.

막내 수현이가 말을 배우기 시작했는데,
수현이에게 말을 가장 잘 가르쳐주는 것도 신영이다.
아빠인 나보다도 신영이가 '엄.마.', '아.빠.', '누.나.', '사.랑.해.요.'할 때
수현이가 더 잘 따라 한다.

'미운 일곱 살'이라고만 생각하며 신영이를 보았다면
이런 고운 행동들을 못 보았을 지 모른다.
아이는 아이일 뿐, 밉거나 곱게 보는 건 어른인 나의 판단인데 말이다.
그래서 '미운 일곱 살'이라는 규정은 
아이를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게 만들 수도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일곱 살 신영이를 관찰하면서 나는 이런 결론을 내렸다.
일곱 살은 '자기 세우기'와 '관계 세우기'를 함께 배우는 나이이다.
즉, 독립성과 주체성이 자라고, 동시에 배려와 돌봄 능력도 커 가는 나이이다.

그 과정에서 부모로서 나는 아이를 어떻게 대하면 좋을까?
드라이커스의 말처럼 아이의 문제 행동을 새롭게 볼 수 있다면,
그래서 아이의 마음을 읽어주고, 
그 마음을 표현하는 좋은 방법을 안내하거나 모범을 보일 수 있다면 좋겠다.

물론 내 기대에 어긋나는 행동을 보면 화도 나고, 
화 날 때 성질도 부리고 하는 불완전한 부모이지만
그래도 부모로서 괜찮은 사례들을 하나씩 늘려가고 싶다.
지난 일요일 저녁에 있었던 일도 그런 괜찮은 사례가 될 것 같다.


내가 컴퓨터를 쓰는 사이 뒤에서 놀던 선율이가 갑자기 울기 시작한다.
신영이가 선율이를 넘어트린 것이다.
둘을 불러내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선율이가 그림책을 보고 있는데 신영이가 이불을 뒤집어 씌웠다고 한다.
선율이는 화가 나서 책을 던지고, 이불도 던지고, 방 문을 발로 세 번 찼다.
그리고 동생 수현이를 밀었고, 그걸 본 신영이가 선율이를 밀어 넘어트렸다는 거다.
신영에게 화가 났지만, 화 내지 않기로 마음을 먹고, 
차분하게 신영이에게 물었다.

아빠: "신영이는 장난을 치고 싶었어?"
신영: "응."
아빠: "신영이가 한 장난 때문에 동생이 화 났는데, 신영이는 뭘 했어?"
신영: "선율이가 수현이 미는 거 보고 화나서 나도 사과 안 했어."
아빠: "신영이는 선율이가 수현이 밀어서 화 났니?"
신영: "응."
아빠: "그래서 화 나서 선율이 민 거구나?"
신영: "응."
아빠: "그런데, 아빠 말은 선율이가 수현이 밀기 전에, 선율이가 화 나 있을 때, 
신영이가 뭘 했냐고."
신영: "아무것도 안 했어."
아빠: "그럼 신영이는 선율이 화 난 거 보고 아무 것도 안 한 거네?"
신영: "응."
아빠: "선율이가 신영이 장난 때문에 화 난 거고, 신영이가 사과하는 걸 보여줘야
선율이도 언니 보고 배워서 수현이한테 사과할 것 같은데?
신영: "알겠어."
아빠: "신영이가 이제 뭘 할 수 있겠어?"
신영: "미안하다고."
아빠: "사과는 어떻게 하는 거랬지?"
신영: "..."
아빠: "'무엇 때문에 미안해.'하고 말하는 거랬지? 그럼 해 봐."
신영: "선율아, 이불 뒤집어 씌워서 미안해."
선율: "아직 기분 안 풀렸어."

헉, 선율이가 단단히 화가 났는지
사과 한 번에 기분이 풀리지 않는 모양이다.
선율이에게 물었다.

아빠: "어떻게 하면 좋겠어?"
선율: "많이 사과 했으면."

그러자 신영이가 끼어든다.

신영: "나, 안 해."
아빠: "신영아, 사과는 미안하다는 말만 하려고 하는 게 아니라 상대방이 기분 풀리라고 하는 거야.
아직 선율이가 기분 안 풀렸잖아. 어떻게 할래?"

이렇게 물었지만 신영이가 '사과 더 안 할 거야'하면 난 어떻게 해야 하나, 
잠깐 고민했는데,
다행히 신영이는 마음을 바꾸어 사과를 했다.

신영: "미안해." 
선율: "괜찮아."

그리고 선율이도 언니의 두 번째 사과를 받고 마음을 풀었고,
막내 동생 수현이에게도 '수현아, 밀어서 미안해'하고 사과했다.
'휴우~' 
난 안도의 숨을 쉬었다.
아내와 나는 아이들이 바로 서로 사과하고, 푸는 모습을 칭찬해주었다.
그리고 아이들 다툼에 화 내지 않고,
아이들에게 상황을 묻고, 해결 방법을 함께 찾은 것,
그리고 사과의 방법을 알려주고 그렇게 하도록 안내한 것은 스스로 뿌듯했다.

'그래, 일곱 살 아이는 일곱 살 아이답게 행동하고 있는 거야.
그럴 때, 어른인 나 또한 그 나이의 어른답게 행동하면 되는 거지.'

(어제 글 쓰는 중에 아이가 깨는 바람에 서둘러 마무리한 글이라
고쳐 써서 다시 올립니다.
미완성 글을 읽으신 분들께 죄송하고, 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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