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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가족] 절대군주 시아버지

▶ “나는 없는데 내 친구가….” 시아버지와 갈등이 없냐는 제 질문에 대한 주변 사람들의 공통된 반응이었습니다. 찬장 검사를 한다거나, 손주가 딸이라는 말에 대놓고 실망을 한다는 등의 사례가 쏟아집니다. 은퇴 뒤 집 안에 홀로 머무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세상의 변화와 무관하게 가장이나 직장상사로 대접받으며 살아왔던 모습을 고수하려는 시아버지들이 가끔 있습니다. 신세대 며느리와 전통적 시아버지의 갈등이 한동안 계속될 것 같네요.

징~. 휴대전화가 몸을 떤다. 김신영(가명)씨도 같이 몸을 떤다. “왜 안 오냐.” 시아버지다. ‘제시간’에 아이를 데리고 시집에 오지 않자 어김없이 전화가 왔다. “애가 감기 기운이 있어서요. 오늘은 집에 있는 게 좋을 것 같은데….” 뭐라 대꾸할지 알기에 말꼬리에 자신감이 없다. “내가 보고 싶다는데 그게 무슨 말이냐. 당장 데리고 오라니까.” 무기력한 저항과 함께 실랑이는 계속됐다. “내가 데리러 가야겠냐.” 전화가 뚝 끊어졌다. 띵동. 10분 뒤 이번에는 벨이 울렸다. 시아버지다. 손주가 너무 보고 싶어서 그러는 건지, 자기 말을 어겨서 화가 나신 건지는 잘 모르겠다. 어쨌든 오늘도 김씨가 졌다.

‘며느리 사랑은 시아버지’라는 옛말이 김씨에겐 정말 옛말이었다. 시아버지는 결혼할 때부터 그랬다. “우리 집 앞에다 집 구해놨다.” 김씨에게 한번 묻지 않고 시아버지는 시집 10분 거리에다 집을 구해줬다. 친구들이 ‘시집은 멀수록 좋다’며 말렸지만, ‘집을 사주신다는 데 그 정도는 감수해야지’라며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집안살림을 마련하고 신혼집에 처음 찾아온 시아버지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침대는 왜 이렇게 큰 걸 샀냐. 양문형 냉장고는 또 뭐고. 이 집에서 네가 산 것 중에 유일하게 마음에 드는 건 세탁기를 통돌이로 산 것뿐이다.” 그때부터 시아버지가 하는 말은 명령 또는 잔소리, 딱 두 종류다. 결혼한 뒤에는 집안 중대사뿐 아니라 심지어 휴가 일정까지도 시아버지가 결정했다. 시어머니가 안 계실 때 시집에 가 밥을 짓고 청소하는 것도 김씨의 몫이었다. 임신해 몸이 안 좋을 때도 예외는 없었다. 명령을 제대로 수행하지 않아 조금이라도 섭섭한 마음이 들면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앉혀놓고 잔소리를 해댔다.

그래도 참았던 건 좋은 며느리가 돼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이었다. 이왕 시집 근처에 살게 된 거 자주 만나는 건 피할 수 없는데 밉보여서 뭐하나 싶었다. 집을 떡하니 구해주신 것도 고마웠고, 시아버님이 가지고 계신 재산도 언젠가 물려받게 될 테니 효도하자 싶었다. 하지만 시아버지의 경제력마저도 부동산 경기가 나빠지면서 흔들렸다. 월세 수입이 줄어들면서 “고생해도 젊은 니가 고생해야지. 왜 내가 고생하냐”며 생활비를 요구했다. 홑벌이로 살림 사는 게 빠듯했지만 무리하게 카드빚까지 얻어 돈을 가져다 드렸다.

1940년대에 태어난 시아버지는 권위적이고 가부장적인 전형적인 한국 남자였다. 맨몸으로 태어나 힘들게 일하며 가족을 먹여살렸다는 자부심이 컸다. 하지만 밖에서 일하며 받은 스트레스를 집에다 풀었다. 가족들의 ‘불복종’은 곧 자기에 대한 무시라고 여겼다. 시아버지는 그렇게 이 작은 집의 절대군주가 됐다. 아내도 내 것, 자식도 내 것이라 여겼던 시아버지는 며느리도 손주도 내 것이라 생각하며 마음대로 하려 했다. 시아버지 사전에 ‘노’(No)란 없었다. 은퇴한 뒤로는 더 심해졌다. 사회적 지위가 없으니 권위를 인정받을 곳은 집뿐이었다.

며느리 사랑은 시아버지라고? 
결혼 때부터 시아버지가 한 말은 
명령과 잔소리 두 종류뿐이다 
평생 반항 한번 못한 남편도 
아버지 말이라면 무조건 따랐다

매일 손주 데리고 집에 오라더니 
아이 앞에서 담배를 피우거나 
큰소리 지르는 날들의 반복 
더 이상 참아내는 건 
아이에게 독이 될 것 같았다

그런 시아버지와 평생을 살았던 시집 식구들은 시아버지의 행동에 둔감해져 있었다. 너무나 강한 아버지였기에 평생 반항 한번 못해본 남편은 아버지의 말이라면 무조건 받들었다. 게다가 남편은 결혼 전이나 후나 사는 공간이 똑같았다. 아버지에게 스트레스를 받아도 함께 술 마시며 풀 수 있는 친구들이 늘 근처에 있었다. 친구들과 놀러 나가 늦게 들어오는 날이 잦았다. 시어머니는 “나도 평생을 참고 살았다. 너도 참고 살아라. 별수 있겠니”라며 힘이 돼주질 못했다. 시아버지가 전형적인 한국 남자라면 순종적인 시어머니는 전형적인 한국 여자였다. ‘시’자 들어가는 사람들 중엔 김씨 편이 한 명도 없었다.

참고 살았던 김씨가 ‘이혼’이란 단어를 떠올린 건 아이 때문이었다. 자신과 시아버지의 양육관은 너무 달랐다. 집에서 기껏 유기농 재료를 사서 이유식을 만들어 먹여도, 매일 같이 가는 시집에서 시아버지는 설탕이나 소금이 많이 들어간 음식을 ‘애가 좋아한다’며 먹였다. 애를 안고 담배까지 피웠다. 아이 앞에서 시어머니에게 화내며 소리지르는 일도 부지기수였다. 그런 날이면 많이 놀란 아이는 편히 잠을 자지 못하고 불안해했다. 김씨는 자신의 삶이 통제받는 것까지는 참을 수 있었지만, 양육에 대한 지나친 간섭은 견딜 수 없었다. 시아버지 손주이기 전에 내 아이였다. 더 이상의 인내는 애한테 독이 될 것 같았다. 남편에게 “이사 가자”고 몇 번이고 말했지만 “아버지가 화낼 거야”라며 말도 못 꺼내게 했다. 김씨는 이제 시아버지를 생각만 하면 미쳐버릴 것 같고, 시아버지에 대한 미움에 남편에 대한 정까지 떨어졌다. “이혼을 하든가 이사를 가든가!” 김씨는 남편에게 최후통첩을 보냈다.

시어머니·며느리 갈등은 익숙하지만 시아버지·며느리 갈등은 아직까진 낯설다. 서울가정문제상담소 김미영 소장은 시아버지·며느리 갈등이 앞으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한다. “양성평등이 가속화되면서 시어머니들은 많이 달라졌지만 시아버지들은 여전히 가부장제를 고집하죠. 은퇴하고 혼자 있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경제적, 심리적으로 불안한 남성들은 그만큼 자녀들에게 집착할 가능성이 큽니다.” 지난 9일 대구에선 4년간 함께 살며 갈등을 빚던 며느리가 시아버지와 다투다 흉기로 찔러 죽인 사건도 발생했다. 갈등과 상처는 그냥 두면 독이 된다. 김 소장은 시아버지는 아들·며느리 가정의 독립성을 존중하고, 며느리는 착한 며느리 콤플렉스를 벗어나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미 성인이 된 자녀를 ‘내 자식’이란 틀에 가둬두면 안 됩니다. 아들이기도 하지만 한 가정의 남편이고 아버지잖아요. 며느리도 자기주장을 좀더 하면서 내 감정을 상대에게 전달해야 합니다.”

김민경 기자 salmat@hani.co.kr

(*한겨레신문 2013년 10월 26일자 토요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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