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가족] 60대 며느리의 명절

▶ 명절 풍속도가 달라졌다고 하지만, 여전히 많은 며느리들이 속을 푹푹 썩는 시기가 명절입니다. 얼굴도 모르는 조상들을 위해 온종일 일을 하다 보면, 일년에 한두번 모이는 명절이라는 게 한이 쌓이는 자리가 되기도 하죠. 그렇게 모진 세월을 겪은 며느리는 또 누군가의 시어머니가 되기도 합니다. 고령화 시대를 맞아 60대에도 여전히 며느리인 한 여인이 묻습니다. 추석과 설은 도대체 누구를 위한 명절인가요.

올해도 어김없이 명절이 돌아왔다. 결혼하고 서른다섯번째로 맞는 추석이다. 스물일곱살, 꽃다운 나이에 결혼해 시집살이를 시작했다. 그때 시어머니는 쉰두살, 지금의 나보다 열살이나 적은 나이에 며느리를 맞았지만, 나는 여전히 며느리고 그는 여전히 시어머니다.

명절이 다가오면 머리가 지끈거린다. 고통스러운 기억이 축적돼 명절이 다가온다는 것을 몸으로 먼저 느낀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습관처럼 장을 보고, 식재료를 다듬고서 조리를 한다. 제사상에 올려지는 음식 하나하나에 내 손길이 깃들어 있지만, 제사가 시작되면 난 투명인간이 된다. 그저 뒤에서 입을 닫고 일을 하는 사람일 뿐이다. 예전엔 제사하는 모습을 멀찌감치 바라보며 여러 생각을 하곤 했다. 누구에게 절을 하는지, 조상이 진짜 제사상을 받으러 오는지, 그동안 내가 해준 밥을 먹으며 고맙다고 생각할는지, 저 조상은 나랑 무슨 상관인지, 내 마음은 이렇다는 것을 알는지 등, 궁금함과 억울함이 뒤섞였다. 지금은 별생각이 없다. 그저 차례가 빨리 끝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지금 전세계에 한국 같은 제사와 차례 문화가 남아 있는 곳은 없다. 같은 유교문화권인 일본을 비롯해 제사라는 제도가 시작된 중국조차도 제사 문화가 사라졌다. 죽은 사람을 기리는 것은 의미있는 문화이지만, 한국에선 며느리들의 노동으로 이 문화가 유지된다. 며느리로선 얼굴조차 본 적이 없는 조상들이다. 사실 차례제도에 대해 이성적으로 따지고 싶은 마음은 별로 없다. 죽은 사람에게 억울한 것이 아니라, 산 사람들에게 더 서운하다. 35년간 내가 해준 밥을 먹은 시집 식구들은 그동안 고맙다는 말을 한번도 한 적이 없다. 그들이 와서 차례를 지내고 밥을 먹고 가면, 어질러진 집을 치우면서 ‘내가 뭐 하고 있나’라는 생각이 든다. 올해도 마찬가지였다. 첫 명절부터 이 마음은 늘 그대로였다.

시집와서 겪은 첫 명절은 1979년 추석이었다. 남편은 육남매의 장남이었다. 명절이면 시어머니는 새벽부터 불호령을 내렸다. 당시 임신 6개월째였지만, 힘들어하면 엄살 부린다는 타박만 들었다. 새벽에 연탄불을 때며 밥을 짓기 시작했고, 하루 종일 제사음식을 만들었다. 그 와중에 시집 식구들의 빨래와 집 구석구석의 청소도 여전히 내 몫이었다. 남편은 손님을 맞아 술을 마신 뒤 곯아떨어졌고, 내가 어떻게 일하는지 어떤 마음인지 돌아보지 않았다. 슬픈 기색도 쉽게 나타내지 못한 나는 자정을 넘어 세수할 때마다 펑펑 울었다. 눈물과 물이 섞여 들키지 않게 울 수 있는 유일한 때였다. 그렇게 울고서 고개를 들어보니 둥근 보름달이 떠 있었다. 그 보름달이 왜 이렇게 친정어머니의 얼굴이랑 비슷한지, 가슴이 미어져 또 펑펑 울었다.

명절은 고된 시집살이의 연장선이었을 뿐이다. 아침과 저녁 밥상을 하루에 서너번씩 차렸다. 직장에 다니던 남편의 동생은 새벽 6시 반이면 출근했다. 그를 위해 새벽 6시에 아침 밥상을 차렸고, 학교에 다니는 남편의 여동생들과 남편을 위해 아침 7시에 밥상을 차렸다. 시부모를 위한 아침 밥상은 아침 8시에 차렸다. 저녁때도 마찬가지였다. 퇴근시간이 다른 시동생들을 위해 두번 세번 밥상을 차렸다. 제사는 한달에 한번꼴로 있었다. 시아버지의 할아버지, 즉 남편의 증조부모까지 제사를 지냈다. 겨울이면 김장을 하는 배추가 180포기였고, 시어머니는 시장에서 사온 식재료를 마당에 던졌다. 입으로만 일을 하는 시어머니가 야속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제사상 올리는 음식 하나하나 
내 손길이 깃들어 있지만 
제사 시작되면 투명인간이 된다 
35년간 내 밥 먹은 시집 식구들 
고맙다는 말 한번 한 적 없다 

6남매의 장남에게 시집와 
임신하고서도 밥 지었던 명절 
남편이 모른 채 자는 사이 
보름달 보며 펑펑 울곤 했다

그렇게 시집살이를 하던 중에 딸이 태어났다. 한겨울이었다. 옛말에 삼칠일이라고, 산모가 아기를 낳고서 21일이 지나면 회복된다는 말이 있다. 그땐 달력을 세가며 21일이 지나지 않기를 빌고 또 빌었다. 하지만 어김없이 그날이 다가왔다. 새벽부터 “밥해라”는 불호령이 떨어졌다. 산후조리도 제대로 안 된 몸으로 다시 일을 시작했다. 이삼 주 뒤 설 명절이 다가왔다. 한 주 동안 집안에는 손님이 끊이지 않았고, 갓난아기를 방 안에 내버려둔 채 부엌에서 일만 했다. 가끔 아기가 울면 시누이들이 들어가 우유를 주고, 기저귀를 갈아줬다. 산후조리도 안 된 몸으로 일만 하다 보니 우울증이 찾아왔다. 명절이 있던 주 어느 밤에 난 가출을 했다. 서울 종로구에 있는 시집에서 나와 하염없이 걸었다. 광화문에 다다르자 큰길엔 차들이 빠른 속도로 오가고 있었다. 그냥 이 길에 몸을 던질까, 그러면 편해질까를 여러번 고민했다. 갑자기 방 안에서 혼자 울고 있던 갓난아기가 생각났다. 아무 생각 없이 집으로 돌아왔다. 방 안엔 아기와 남편이 자고 있었다. 방 한편엔 언제 샀는지도 모르는 수면제가 있었다. 한손 가득 약을 움켜쥐고 입안에 털어넣었다. 그렇게 잠들었다.

눈을 떠보니 남편은 신문을 읽고 있었다. “이제 일어났냐. 어머니가 많이 화났다”는 게 눈을 뜬 내가 들었던 첫말이었다. 얘기를 들어보니 난 2박3일을 잠만 잤다고 한다. 그렇게 잠을 자는데도 병원에 데려가지 않았다. 시어머니는 내가 일을 하기 싫어 꾀병을 부린다며 잠든 나를 일으켰다고 했다. 그러다가 스르르 다시 미끄러져 쓰러지는 나를 보고는, “그래 실컷 꾀병이나 부려라”며 나갔다고 했다. 그 길로 갓난아기를 안고, 친정으로 돌아갔다. 앞으로 내 인생은 어찌 되는 걸까, 두렵고 불안한 마음뿐이었다. 친정 부모는 이 결혼을 엎을 것이 아니라면 참고 살아야 한다고 했다. 갓난아기를 바라보며 아빠 없는 자식을 만들 순 없었다. 우여곡절 끝에 다시 시집으로 들어갔고, 무수한 세월이 지났다. 명절이면 시집에 업고 가던 자식들도 이젠 다 커서 사회인이 됐다. 그래도 여전히 난 며느리다.

시어머니는 올해부터 남편의 조부모 제사를 명절 차례와 합치겠다고 했다. 차례나 제사 모두 이젠 없어져야 한다고는 생각하지만, 한편으론 시어머니가 다시 제사를 지내겠다고 하면 어쩌나 조마조마하다. 지금도 여전히 마음이 갈팡질팡하다. 이렇게 계속 살 순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이전보다 나아졌다며 스스로를 위로하고 있다. 사실 어디서부터 무엇을 바로잡아야 할지도 잘 모르겠다. 그저 자식이 나와 같이 살기를 바라진 않지만, 내 마음을 알아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을 뿐이다.

35년 참고 산 며느리


(*한겨레신문 2013년 9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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