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은 시인은 '떠나라 낯선 곳으로 그대 하루하루의 낡은 반복으로부터'라고 노래했다.
교사로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다 휴직하고 집에서 아이들과 지내는 요즘 
고은의 시가 가슴에 와닿는다.
유치원 학부모가 되어 아이들의 유치원 선생님을 보면서 
학교라는 '낡은 반복으로부터' 벗어나 
교사라는 존재를 새롭게 바라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학부모의 눈으로 유치원 선생님을 보면서 인상적인 것들이 몇 가지 있었다.
우선, 가장 눈에 띈 건 아이들을 따뜻하게 맞이하는 환대의 행동이었다.
유아들이기에 더 그런 면도 있겠지만 
아이들 한 명 한 명이 유치원에 들어올 때마다 두 팔 벌려 안아주시며 맞이하는 
선생님의 모습은 아주 인상적이었다.
그렇게 환영받으며 교실에 들어서는 아이들에게 유치원은 
안전하고 따뜻한 공간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교사이기 이전에 부모로서 나는 
우리 아이들이 학교에서 많이 배우는 것보다 많이 사랑 받았으면 좋겠다.
아이를 따뜻하게 맞아주고, 아이의 말에 귀 기울여주고, 존중해주는 선생님을 
만나기를 바란다.
지금 우리 아이들이 그런 선생님과 함께 지낼 수 있어서 참 다행이다.

유치원 선생님의 모습에서 인상적이었던 두 번째는 
한 해 동안 아이들의 변화와 성장 과정을 꼼꼼하게 기록하는 것이었다. 
종업식 날 아이들 손에 한 해 동안의 포트폴리오가 쥐어져 있었다.
아이의 포트폴리오를 펼쳐본 아내와 나는 그걸 보며 크게 감동을 받았다.
그리고, 꾸미고, 발표하고, 놀았던 한 해 동안의 활동 결과가 
사진과 작품으로 그 안에 다 들어 있었다.
그걸 보면서 '우리 아이가 일 년 사이에 이만큼 자랐구나' 새삼 확인할 수 있어서 기뻤다.
매주 '주말 지낸 이야기'를 그림으로 그려 발표한 것들이 모아져 있어서
아이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알 수 있었다.
주말 지낸 이야기.jpg
(주말 지낸 이야기 그림)

스무 명 정도 되는 아이들의 성장 과정을 포트폴리오에 담아 
고스란히 부모들에게 전해주는 선생님께 부모로서 크게 고마움을 느꼈다.
'부모란 아이가 자라는 모습을 보며 이렇게 감동하는 존재구나.' 생각하는 순간,
복직하면 나도 그런 부모의 마음으로 교사의 삶을 살고 싶어졌다.

연말에 모든 아이에게 상을 주는 모습도 부모로선 감동이었다.
어떤 아이는 과학상, 다른 아이는 미술상, 또 다른 아이는 친절상 등 
모든 아이가 상을 받았다.
한 명도 소외되지 않고, 모든 아이들이 자기 개성과 장점에 따라 상을 받는 모습은 
참 아름다웠다.
아이들마다 좋아하거나 잘 하는 게 다 다른 만큼 
각자의 고유한 모습을 인정하고 격려하는 시상 방식은 아주 특별해 보였다.


이처럼 부모가 되어 보니 
부모가 교사에게 바라는 건 관심, 애정, 존중이라는 생각이 든다.
몇 년 전에 첫째 아이를 데리고 치과에 갔을 때도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이 검사를 받으러 치과에 가게 된 신영이는 좀 무서워했다.
검사 과정에 대해 설명해주고 잘 달래서 치과에 갔는데, 
치과 의사는 어린 아이의 두려움 같은 감정에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고,
사무적으로 검사를 진행했다.
감정이 없는 사물을 대하는 느낌이랄까?
아이를 검사의 대상으로서만 다룰 뿐
두려움을 느끼면서도 용기를 내어 앉아있는 한 아이로 존중하며 대해준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다.
그런 의사의 모습을 보며 부모로서 많이 아쉬웠다.
물론 검사나 치료의 관점에서만 보면 그 의사가 잘못한 건 없다.
하지만 의사와 환자의 관계도 기본적으로는 사람과 사람의 만남이라는 점에서 보면 
치료 과정에서 환자가 느끼는 감정이나 고통에 무관심한 태도는 아쉬움이 남는다.


학교에서 벗어나 부모가 되어 아이의 선생님을 보면서 교사 역할에 대해 
새롭게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아이의 부모로 유치원 선생님의 환대, 포트폴리오, 모든 아이 시상하기 같은 것들을 
보면서 느낀 기쁨과 감사, 감동을
나도 복직한 뒤에 교사로서 우리 반 아이들의 부모님들께 전해주고 싶어졌다.
그리고 치과 의사에게 느꼈던 아쉬움은 교사로서 내 모습을 비춰보는 거울로 삼고 싶다.
'가르치는 데 정신이 팔려 정작 봐야 할 아이들을 놓치고 있지는 않은가?' 살피고 싶다.

'낯선 곳에서 보니 이렇게 분명하게 보이는 것들이 있구나.'
그렇게 본다면 나에게 휴직 기간은 새로운 기회인 셈이다.
그런 기회를 가질 수 있어서 참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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