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민 기자 제공

[한겨레 매거진 esc] 김소민의 타향살이

이 정도면 결혼 하객질도 중노동이다. 11시간째다. 피로연 장소는 나무로 세운 기둥들에 회벽을 바른 독일 옛 가옥, 7월 삼복더위를 다부지게 품고 해가 진 뒤에도 안 놔준다. 이런 예쁜 건물은 앞에서 사진만 찍고 눈요기할 일이다. 누가 내 입에 찹쌀과 대추라도 물릴 것만 같은 찜통 속, 신부 시몬느의 치렁치렁 웨딩드레스와 신랑 다니엘의 꼬리 턱시도는 동정마저 불러일으켰다. 에어컨은커녕 선풍기도 안 돌아가는 이 피로연장에서 하객 40여명은 닭 울 때까지 춤춰대야 할 팔자다.

신부 등짝이 어느새 번들번들하다. 연습을 마친 태릉선수촌 레슬링 꿈나무 같다. 새 부부 몫인 첫 번째 춤을 추자마자다. 둘이 팥죽땀을 흘리며 잠시 앉은 사이, 신부 할아버지가 차라리 영원히 계속됐으면 좋겠다 싶은 시를 읊었다. 그동안은 멍 때리고 앉아 있으면 되니까. 안타깝게 할아버지도 곧 지쳤다. 다른 팀이 구원투수로 나섰다. 콩트다. 은행원인 신랑 신부의 결혼을 인수합병에 빗댄 연극인데, 뭔 소린지는 잘 모르겠지만 길어서 좋았다. 이 팀도 헉헉거리며 끝냈다. 이제 피할 도리가 없다. 엉덩이에 땀으로 들러붙은 바지를 떼어내며 일어나 덩실덩실 팔다리를 허우적거렸다. 그래 추자, 추자, 추다 쓰러져 버리자.

밥값은 해야 할 것 아닌가. 맥주가 무한 리필이다. 디저트부터 생선요리까지 땀에 말아 먹어 그렇지 꽤 맛있었다. 테이블마다 하객 이름과 조그만 선물이 리본을 늘어뜨린 초와 함께 장식돼 있었다.

하객들은 신랑 신부의 알짜배기 친구, 동료들이다. 부모님의 지인들은 두 주인공의 친구가 아닌 이상 초대받지 못했다. 이건 부모 인맥 자랑 대회가 아니라 둘의 결혼식이니까. 정예 하객들에겐 암팡지게 쏠 모양이다. 보통 이런 결혼식엔 1500만원은 든단다. 그런데 내가 한 거라곤 다른 친구와 편먹고 공연 할인권과 캐나다 여행책 준 것뿐이다. 한 친구는 결혼식 전, 하객들한테 자신 있는 레시피를 받아 이 신혼부부만을 위한 요리책을 만들었다. 정성은 갸륵한데 그래도 내가 신부라면 추호의 망설임 없이 현금 5만원을 선택할 것 같다. 그러니 이 죄책감은 오롯이 몸으로 때워야 하는 거다. 추자, 추자, 추다가 기절해버리자.

역시 여름엔 성당이 최고다. 어디 가도 에어컨 바람이라곤 요실금마냥 찔끔거리는 독일에서 높은 천장은 선조들이 준 축복이다. 여기서 상쾌하게 열린 본식 때만 해도 수월하게 감동했더랬다. 개그 본능 있는 신부님, 예복을 입었는데 몇 마디 덕담하더니 구석에서 기타를 꺼내 노래를 시작했다. 긴 노래였다. 뚝심 있는 신부님이다. 절정은 신부 여동생 사라의 공연이었다. 사라는 다운증후군을 가지고 태어났다. “꼭 기억해요. 겨울에도 저 눈 아래 씨앗이 있다는 것을. 봄이 되면 태양의 사랑을 받아 장미로 피어난다는 것을.” 사라가 한 손으로 피아노 건반을 꼭꼭 누르자 내 옆자리 코니는 눈물 둑이 터졌다.

김소민 <한겨레> 편집부
그랬던 코니, 지금은 땀이 나이아가라다. 드레스를 허벅지까지 걷어 올리고 퍼져 앉아 연신 부채질이다. 피로연장으로 들어오기 전 하객들은 오늘의 주인공들에게 보내는 축하 메시지를 빨간 풍선에 달아 하늘로 날려 보냈는데, 아마 다 녹아버렸겠지?

새벽 1시쯤, 같이 온 친구 옆구리를 찔렀다. “이제 가도 되겠지?” “절대 안 돼. 신랑 신부가 실망한단 말이야.” 그 순간만큼은 그토록 싫어했던 한국식 결혼식, 눈도장 찍고 식당으로 직행 밥 먹으면 끝나던 그 엘티이급 예식이 사무치게 그리웠다.  

김소민 <한겨레> 편집부


(*한겨레신문 2013년 8월 2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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