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유 1

자유글 조회수 4012 추천수 0 2013.08.14 17:01:01

단유를, 적어도 낮이라도, 단유를 해보려고 한다. 드디어.

그제 도연이 먹이는 문제로 힘들었다가, 어제 하루 좀 수월했다고(그 이유는 도연이가 거부하며 난리를 피우기보다 아주 조금씩만 먹었기 때문) 생각했는데, 밤에 그렇게 젖을 많이 먹을 수가 없었다. 자주 깨기도 했고(2시간마다), 오래 먹었다. 정말로 배가 고픈 것이었다.

젖꼭지와 젖이 너무 아프다는 생각이 들 정도여서, 나도 보통 때처럼 자면서 줄 수가 없었다. 젖을 빼고 일어나서 도연이를 안아 재우려니 도연이도 깨고.. 정말로 너무 졸린 상태에서 너무 힘들었다. 밤중수유는 정말 못하겠다, 생각했다. 그동안 먹는 게 적은데 똥은 많이 잘 싸는 거 보고 자기 필요한 만큼은 먹고 있구나, 생각했었는데, 그것은 사실 젖으로 보충하고 있는 것이었나 보다. 진짜로 거꾸로 가고 있구나, 밤중수유는 내가 힘들어서도 못하겠고, 또 도연이 위해서도 하면 안 되겠구나, 그 밤중에 막 결심이 섰다.

문제는 아침. (젖 안 주고 안아 재우려다가 일찍 깼는데) 밥하고 반찬해서 주었는데(아침 요리는 너무 힘들다), 너무 안 먹었을 뿐 아니라 던지고 장난치고 난리를 피웠다. 그러다가 국그릇이 떨어지는 순간, 정말 인내심의 한계에 이르러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바로 이어서 도연이에게 호통. 그러니 도연이가 너무 놀라서, 빨개지고 무서운 얼굴로 울음을 터뜨리는데, 그러면서 내게 팔을 뻗치며 안아달라는 것이었다. 내가 계속 소리지르며 혼을 내고 있는데도.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표정을 지으면서. 그 얼굴이 잊히지 않는다.

그 순간, 참담했다. 세상에서 가장 흠 없고 약한 존재인 이 아기에게 나는 과연 어떤 존재인가. 내가 가진 힘이란 게 이렇게 부끄럽고 싫다니. 도연이를 안고 목이 메어 울면서 미안하다,고 뭐라고 기억도 안 나는 말로 횡설수설 사과이기보다 용서를 빌었는데, 오히려 도연이가 먼저 울음을 그치고 나를 토닥토닥..

정말로 제정신이 아닌 상태로 우선 도연이를 씻기고 난장판이 된 식탁과 거실을 치우고, 다시 먹여 보았지만 실패. 아, 정말 안 되겠구나. 그리고 도연이에게 말했다. 도연아, 정말 너가 이렇게 안 먹으니 젖을 줄 수가 없겠어. 오늘은 쭈쭈 안 줄 거야.

일찍 일어났으니 일찍 졸려 했는데, 그때 한 번 고비가 왔다. 많이, 정말 많이 울었는데, 몸으로 울 때 바라보기만 하다, 나에게 올 때 안아주며 계속 얘기해주었다. 기도해주었다. 그리고 또 눈물이 났다. 이렇게 슬프고 참담하게 단유하고 싶지 않았는데. 정말 어렵게 모유수유 성공하고 정말 행복하게 그동안 젖을 주며 지냈고, 참 감사했는데.

그리고 이후로 잘 놀았고, 점심으로 멸치김밥을 적은 양이지만 넙죽 받아먹었고, 물도 많이 먹고(빨대컵을 들고 다니며 먹는 것을 처음 봤다), 낮잠을 너무 늦게(7시간 만에!) 자긴 했으나, 그때조차도 가볍게 찌찌,라고 말하고 말 뿐이었다. 정말 안 졸린가, 싶을 정도로 안 자려고 했으나, 어르고 달래 업은 지 3분 만에 잠이 들었다.

그리고 두어 번 중간에 깨서 지금도 안아 재우고 오는 길이다. 약 17개월. 지금까지 도연이를 키운 것은 도연이를 먹인 것, 그 중에서도 모유수유를 한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그 시간이 어떠했는지, 지금은 정리해보고 싶지 않다. 버겁다.

다만 자는 도연이를 보며 계속 생각했다. 너를, 이렇게나 내 품을 편안해하는 너를, 내 젖으로 그렇게 만족해했던 너를, 내가 무섭게 해도 나에게서 평안함을 찾으려 했던 너를, 내 안에 이렇게 많은 상처를 내고 행복을 가득 채우며 나를 이렇게나 뒤흔들어놓은 너를, 깊이 사랑할 수밖에 없구나,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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