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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밀수제비

[나는 농부다] 숨쉬는 제철 밥상

마당에 백일홍이 피었다. 백일홍이 필 무렵, 밀과 보리를 거둔다. 우리도 밀을 조금 지었다. 정말 조금, 그것도 척박한 다랑이 밭에 땅 힘을 길러주기 위해서다. 밀은 추운 겨울을 나며 뿌리를 깊이 내리니 땅을 살리는 데 도움이 되니까.

그렇게 심어 놓고도 밀이 저 알아서 열매를 맺으니 밀 먹을 욕심이 난다. 하지에 낫으로 베어 마당에 부려 놓으니, 누렇게 익은 밀이 자글자글한 여름 햇살을 받고 황금빛으로 빛난다. 날이 좋으면 사나흘이면 다 마르지만, 중간중간 장맛비가 오시면 언제가 될지. 드디어 남편이 도리깨로 터는데, 나는 도망가고 말았다. 움직이기만 해도 땀이 흐르는데 도리깨를 따라 밀 까락이 온몸에 달라붙으면 얼마나 고역인지 알기에. 조금 심었으니 나온 것도 조금. 그래도 올여름 우리 식구 햇밀 맛은 보겠다.

여름 점심으로는 밥보다는 밀가루 음식이 더욱 당긴다. 하지만 도시 사는 여러분들이 사먹는 밀가루 음식은 십중팔구 언제 적 것인지 알 수 없는 수입밀가루. 우리밀가루로 음식을 해 먹는다 해도 그게 햇밀일까? ㈜우리밀에 전화로 물어보니 6월 말에서 7월은 밀을 수매하는 시기고, 그걸 제분해 생협이나 마트에 나오는 건 빨라야 8월 중순에서 9월 초란다. 아니 여름이 다 지나야 햇밀을 만날 수 있잖아!

햇밀에서는 찐한 여름 햇살 향이 난다. 이제 그 햇밀을 곱게 빻아 고운 밀가루만을 모아야 한다. 밀농사가 사라지면서 밀 제분소도 따라 사라져 우리처럼 밀을 조금 농사하는 집은 제분해 올 곳이 마땅치 않다. 그러니 우리 햇밀가루 품질은 그다지 좋을 리 없다. 해 먹을 수 있는 건 수제비.

밀가루를 미리 애벌반죽한 뒤 비닐을 씌워 밀가루가 물과 어우러질 시간을 준다. 두어 시간 뒤, 멸치와 다시마를 넣고 국물을 끓이면서, 반죽을 다시 한번 치댄다. 텃밭에 가서 부추를 한 움큼 베고 청양고추를 몇 개 따다가 양념장을 만든다. 만드는 김에 부추 겉절이도 하고.

수제비를 끓일 시간. 반죽을 손에 잡기 좋은 크기로 잘라 잡고 국물이 끓고 있는 솥 앞에 선다. 펄펄 끓는 국물에 반죽 끝을 살짝 담갔다가 꺼내면, 국물에 들어갔던 부분이 매끄럽게 익반죽이 된다. 거기를 손가락으로 비벼 떼어 넣는다. 또 담갔다가 떼어 넣고, 이렇게 하면 수제비가 귓불처럼 얇으면서도 쫄깃하다.

여기에 햇감자 숭덩숭덩 썰어 넣으면 금상첨화. 수제비를 한 대접 떠서 먹으니 ‘농사짓는 맛이구나!’ 요렇게 약을 올리려 했는데 인터넷에 검색해 보니 벌써 2013년 햇밀가루를 파는 곳이 있더라. 농민 직거래는 cafe.daum.net/yuginong-story, 장터는 http://miral1000.com, 햇밀 수제비로 더운 여름을 날 힘을 얻으시길!

장영란 <숨쉬는 양념·밥상> 저자

(*한겨레신문 2013년 7월 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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