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쯤 전에 명치 옆에 종기 같은 게 생겼는데, 
그걸 그대로 두었더니 가라앉으면서 두드러기처럼 가려워졌다.
돌잔치 때 우리집에 오신 부모님께 그걸 보여드리면서 가렵다고 하자 
'병원에 가봐라' 하셨다.
'그럴게요.'하고 답했지만, 부모님들이 고향으로 내려가시고 난 뒤 
한 주 동안 너무 바빠서 병원에 못 갔다. 
어차피 대수롭지 않은 피부 가려움증 정도라 생각하고 있었고, 
'언제라도 가면 되겠지' 하는 생각이 있었다.
그런데 고향에 가신 지 나흘 쯤 지났을 때 엄마한테 전화가 왔다.
"병원에 다녀왔냐?"
"아니요. 아직."
"아니, 너는 왜 병원에도 안 가고 그걸 내버려둬? 
동생네 집에라도 아이들 맡겨놓고 병원 다녀오라고 내가 말했잖아?"
"이번 주엔 너무 바빠서 갈 시간이 없었어. 다음 주에 갈게요."
"다음 주가 아니라 다른 일을 미루더라도 병원부터 가야지. 
그거 혹시 대상포진 아니냐? 옆에서 아빠도 빨리 가보라고 하시잖아."
"대상포진하고는 증상이 다른 것 같고, 
그냥 가려운 정도인데, 아무튼 다음 주엔 꼭 병원 갈게요."
"이번 주에 꼭 가보라니까."

엄마의 반응은 좀 의외였다.
평소 내가 하는 일에 대해 크게 간섭하지 않고, 
알아서 하라고 믿고 기다리거나 맡겨 두셨는데,
이번 일은 엄마 아빠 모두가 역정을 내며
 '왜 빨리 병원 안 가보고 그러고 있냐?'며 나무라시는 것 같았다.
걱정 끼쳐드려서 죄송하고, 신경 쓰고 걱정해주시는 마음엔 감사했지만,
한편으론 '내 몸 아픈 건 내가 알아서 치료할텐데, 왜 그렇게 화까지 내시는 거야?' 
하는 마음에 짜증이 났다.

엄마와 통화한 그 다음 주에 병원에 가보니 
의사는 손가락에 생긴 주부 습진은 일종의 곰팡이인데,
그게 명치 쪽에도 옮겨간 거라며 연고와 알약을 처방해준다.

며칠 뒤 동료 선생님들을 만날 기회가 있어서 엄마와의 통화 얘길 꺼냈더니
다섯 명의 동료들이 각자 자기가 만약 그 상황이었다면 
어떤 생각이나 감정이 들지, 그리고 어떻게 했을지를 얘기해준다.
대다수는 나처럼 짜증났을 것 같다고 말했고,
한 명은 병원에 안 갔지만, 다녀왔다고 말할 것 같다고 했다.
그리고 또 다른 한 명은 엄마한테 고마운 마음이 들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런데 그 말을 듣는 순간 갑자기 울컥했다.
전화 통화할 당시에도 고마운 마음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다른 사람의 말로 들어서일까, 왠지 고마운 마음이 커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바로 그때, 한 달 쯤 전에 아내한테 들은 말이 떠올랐다.DSC_0162.JPG

한 달 전 고향 부모님 집에 갔을 때 돌아오는 날 오후에 낮잠이 들었다.
출발할 시간이 되어 아내가 나를 깨우려 하자
엄마가 '피곤할 텐데 좀 더 자게 놔둬라.'하셨다고 한다.
그 말을 아내에게 들었을 때
'당신 아들이 아이 셋 보느라 피곤해 하는 모습이 안쓰러워서
그냥 더 자게 두라고 하신 걸까' 생각했었다.
좀 짠하고, 고마웠다.
내가 우리 아이들한테는 아빠지만, 우리 엄마한테는 여전히 자식이고,
자식으로서 엄마의 사랑과 돌봄을 받고 있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따뜻해졌다.
그 전까지는 그저 우리 엄마, 아빠는 나를 믿고 어떤 일이든 맡겨두고 
기다려주신다고만 생각했다.
워낙 어려서부터 독립적으로 살아왔고, 
부모-자식 간에 서로 크게 의존하거나 간섭하지 않는 가풍이 
우리 집에 있는 게 만족스러웠다.
그런 생각을 갖고 있다 보니 육아휴직할 때도 
부모님께서 '너희들이 알아서 잘 해라.'라고 말씀하실 때
'역시 우리 엄마아빠답다.'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3년 째 아들이 육아와 살림을 도맡아 하는 모습을 보는 엄마의 마음은 
단순히 믿고 맏기는 마음만 있었던 건 아닌 것 같다.
대견해하면서도 안쓰럽고, 염려되는 마음이 함께 있었던 거다.

그런 마음이 있으셨기에 내가 치료받으러 병원에 빨리 가지 않는 걸 보시고,
그렇게 역정을 내신 게 아닐까, 하고 생각해본다.
'넌 아이들 챙긴답시고 네 몸은 돌보지도 않냐? 엄마 속 상하게.'
그러니까 엄마가 낸 화는 속상함의 다른 표현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아, 부모 마음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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