삭발당한 메타세콰이어

딸아이를 집 앞 유치원에 데려다 주고 공원을 걸어가는 데 신경을 긁는 기계음이 들렸다.

"윙-윙-윙"

그 소리와 함께 메타세콰이어 나뭇가지들이 제 몸통에서 “툭 툭” 하고 떨어져 나갔다. ‘가지치기 한다더니. 그런데 저게 뭐야!' 나무는 순식간에 삭발을 당했고 게다가 윗부분마저 댕강 잘려나갔다.

"아저씨, 가지치기 왜 하는 거예요?"

"잘 모르겠는데요."

같이 구경하던 경비아저씨도 그 이유를 알지 못했다. 하늘 높이 자라, 언제 봐도 듬직했던 나무 백 여 그루는 이삼일 사이에 볼품없는 전봇대 신세가 되었다. 화단에는 잘녀나간 나뭇가지들이 쌓여 작은 숲을 이루었다. 그냥 지나칠 수 없어 딸아이 손을 잡고 화단으로 들어갔다.

아빠 : 아빠는 메타세콰이어 나무 저렇게 잘라서 싫어.

딸 : 왜?

아빠 : 나무가 가지가 있는 게 나무지 저렇게 다 잘라버리면 어떻게 해. 위도 잘라버리고.

딸아이와 나무를 쳐다보다 잘린 나뭇가지에서 나이테가 눈에 들어왔다.

아빠 : 여기 동그란 거 보이지? 나이테야. 우리는 떡국 먹으면 한 살 먹지만 나무는 한 살 먹으면 이렇게 동그란 나이테가 생기는 거야. 나이테 세 보니까 서령이보다 훨씬 나이가 많은 걸.

딸 : 내가 어른이야! 내가 키가 더 크잖아. 나무는 누워있고 나는 서 있잖아. 아빠 칼싸움 하자.

잘린 나뭇가지를 꺾어 칼싸움을 시작했다. 오랜만이었다. 아빠와 딸은 “얍얍얍”하며 몇 번 겨루다 칼을 내려놨다.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아빠 : 나무 깎아서 토끼 만들까?

딸 : 응

토끼 인형을 깎을 만한 제법 굵은 나뭇가지를 골랐다. 그 사이 딸은 “땔감 찾아야 겠다”라더니 칼싸움 하던 나무 두 개를 움켜쥐었고 아빠와 딸은 나무를 끌고 집으로 갔다. 나무를 자를 톱은 집안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비보를 접한 딸의 얼굴, 순식간에 찌그러졌다.

아빠 : 나무 대신 종이통으로 만들어 보자. 나뭇가지로는 다리를 만들고.

종이통으로 토끼를 만들려고 했으나 영 모양이 나오지 않을 것 같아 다시 계획을 수정.

아빠 : 토끼는 어려울 것 같고 다른 동물 만들까?

딸 : 하이에나 만들어 줘.

딸아이는 몇 달 전부터 하이에나가 세상을 구한다고 믿었다.

아빠 : 그래, 하이에나 만들자.

종이통을 잘라 구멍을 뚫고 나뭇가지를 꽂아 다리를 만드는 사이 딸아이는 내게 기대 잠이 들었다. 아이 머리맡에 하이에나 한 마리를 두었다.

 

다음날 아침, 출근하던 아내가 메타세콰이어를 보더니 놀라서 발걸음을 멈췄다.

엄마 : 메타세콰이어가 얼마나 멋있었는데. 어쩜 저렇게 만들었지!

딸 : 나도 볼래 나도 볼래.

딸아이를 안고 그리스 신전 열주처럼 늘어선 나무를 봤다. 나무에게 미안했고 딸아이에게 미안했다. 그날 오후 유치원에서 나오던 딸아이가 메타세콰이어를 쳐다보며 한 마디 했다.

딸 : 나무들이 이상해 졌어.

 

그래, 나무들이 이상해 졌구나. 그렇지만 더 이상한 건 우리, 사람들이야. 나도 아이를 잘 키워보겠다며 그렇게 아이를 댕강댕강 가지치기 하고 있을 지도…….

 

 

돈까스 고기 빼고 주세요

한 잡지에서 아빠 육아를 주제로 취재를 요청했다. 딸아이와 함께 사진을 찍어야 한다기에 스튜디오로 갔다. 함께 칫솔질하고 세계지도를 보는 모습을 찍고 가족사진도 찍고 마무리. 같은 포즈를 여러 번 취하다 지친 딸아이는 사진가 언니에게 소리쳤다.

딸 : 또 찍고 또 찍고 자꾸 찍어요!

계속 웃으라는 주문에 턱이 얼얼해질 즈음 촬영이 끝나고 나는 아빠 육아를 주제로 기자와 인터뷰를 했다.

기자 : 엄아 육아하고 아빠 육아하고 어떤 점이 다른 것 같아요?

아빠 : 놀이를 보면 잘 알 수 있죠. 아빠들이 몸으로 놀고 위험을 감수하는 반면 엄마들은 안전하고 정적인 경향이 크고 아이와 이야기를 많이 나누는 편이죠. 저기 아내와 딸이 그렇게 놀고 있네요.

내가 인터뷰를 하는 동안 아내와 딸아이는 세트장에 앉아 음식점 놀이를 했다. 그들의 대화.

딸 : 엄마, 주문하세요. 서령이는 돈까스하고 짜장면. 엄마는요?

엄마 : 엄마는 볶음밥하고 짬뽕.

딸 : 돈까스하고 짜장면 볶음밥하고 짬뽕주세요.

엄마 : 음식 나왔습니다.

딸 : 냠냠냠냠. 엄마 짬뽕 국물 먹어 볼래?

엄마 : 응. 서령아 엄마 짜장면 좀 나눠 줘. 고마워

딸 : 엄마 돈까스도 먹어.

엄마 : 엄마는 돈까스 못먹어.

딸 : 왜?

엄마 : 엄마는 고기 잘 못 먹잖아(아내는 체질적으로 고기를 먹지 못한다).

딸아이가 고개를 쓱 돌리고는 소리쳤다.

딸 : 저기요! 우리 엄마 고기를 잘 못먹어서요 여기 돈까스 고기 빼고 주세요.

엄마 : .......

 

아이들의 상상력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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