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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일 낮 백화점 문화센터에서 성인 남성은 ‘희귀종’이다. 영유아 수업은 특히 그렇다. 아이와 함께 오는 것은 대개는 엄마들이고, 할머니나 육아 도우미가 더러 보일 뿐이다. 그 어색함을 무릅쓰고 내가 아이를 데리고 가는 것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그러나 어쩌랴. 집에서 아이와 둘이서 씨름하다 보면 그저 숨구멍이 간절할 따름이다. 수업시간 40분+α에 왕복 30~40분을 보태 최대 1시간 반 가량을 외출할 수 있는데, 그것도 아이를 위한 프로그램이 준비돼있다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화요일과 금요일 낮시간 수업을 등록했다.

기대 이상이었다. 태어난 지 열 달이 좀 넘은 아이들이 뭘 알아들을 리 만무하지만, 선생님들은 집중력 한계치인 5~10분마다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선보였다. 동화를 읽어주고, 무용을 하고, 그림카드를 보여주고, 노래를 부르고, 놀이를 하고…, 아이들은 대개 즐거운 표정으로 수업에 몰두했다. 아! 집에서 맛볼 수 없는 이 평화!

그런다고 나의 어색함이 해소되는 건 아니었다. 난 여전히 교실에서 유일한 성인 남성이었다. 아이들은 신기해하기도 했다. 사귐성 좋은 아이들은 내 허벅지에 턱 하니 걸터앉기도 했다. 나를 빤히 쳐다보다 “아빠!”하고 부르는 녀석도 있었다. 반대로 우리집 아이도 다른 엄마들 앞에 서서 애교를 떨곤 했다. 어느 쪽이든 결핍을 메우려는 아이들의 몸부림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다만, 엄마들은 나를 어색해 했다. 자기들끼리는 모르는 사이라도 곧잘 수다를 떨었지만, 난 좀처럼 끼워주지 않았다. 나도 원체 숫기가 없는지라 먼저 가서 말을 걸진 못했다. 얇고 헐렁한 엄마들의 여름옷차림이 행여 나 때문에 불편할까 하는 염려에, 나는 되도록 눈길도 아이에게만 고정했다. 어차피 내 친구 사귀러 간 것도 아니니 불만도 아쉬움도 없었다. 나중에 아내가 아이를 한 번 데리고 갔더니 엄마들이 “이제 엄마랑 왔구나”라며 반색했다 한다. 어느새 아이는 ‘아빠랑 다니는 아이’로 유명했던 모양이었다.

사실 아빠랑 다니는 아이는 어디서나 관심의 대상이었다. 하루에 한 번 유모차를 끌고 동네 한 바퀴 도는 산책이 유일한 외출이었던 시절, 길을 지나는 사람들, 특히 아주머니들은 꼭 한 번 유심히 쳐다봤다. 아이들의 통학 버스를 기다리며 모여있던 엄마들은 우릴 보며 수군대기도 했다. 나로선 유쾌하지 않은 시선이었고, 남몰래 속상해 하기도 했다. 하지만 악의적인 눈길이었다기보단 단지 낯설었기 때문이었을 거라 믿는다.

즐거운 기억도 있다. 공원서 마주친 두 할머니가 “요샌 아빠들이 애를 저렇게 잘 보네!” “맞아, 맞아. 우리 때랑 달라”라며 맞장구치며 격려해주시던 모습은 잊기 힘들다. 아이가 갑자기 엉엉 울어서 유모차를 세우고 다독이고 있을 때 빙그레 웃는 얼굴로 다가와 “도와드릴까요” 하던 아주머니는 천사 같았다.

아프리카의 그 유명한 속담, ‘아이 하나를 키우려면 마을 하나가 필요하다’는 말은 우리에겐 너무도 비현실적이다. 현대 도시인들에게 마을 공동체는 어릴 적 추억, 어르신들의 옛이야기일 뿐이다. 그러니 힘들다. 마을 하나가 하던 일을 엄마 한 사람이 혼자 맡으니 당연히 버겁다. 하지만 가정도, 아파트도, 문화센터도 충분히 공동체가 될 수 있는 곳이다. 아빠가 빠질 이유는 없다. 아빠의 육아를 어색하게 여겨선 안 될 이유다. 그러니 바라건대, 부디 열어주시라, 그 마음을.
 
** 이 글은 육아휴직중이던 시기에 작성해 월간 육아잡지 <맘&앙팡>(디자인하우스) 2011년 9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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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외현 기자
아이 둘의 아빠인 <한겨레21> 기자. 21세기 인류에게 육아는 남녀 공통의 과제라고 믿는다. 육아휴직 등으로 나름 노력해봤지만 역시 혼자 가능한 일은 아니며, 사회적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걸 어렴풋하나마 알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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