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eae650ede55b55b6148fdf61c861b5c. » 성윤이가 울릉도에서 삼촌한테 안겨서 찍은 사진. 휴가를 내지 못한 아빠는 함께하지 못했다.



가을이 갔다. 2010년 가을이 완전히 지나갔다. 겨울이 오고 또 한 해가 저물면 나이 한 살 더 먹게 되니 가을을 보내는 일은 언제나 아쉽지만, 올해는 그 아쉬움의 정도가 더 크다. 우리 가족에게는 다시 못 올 가을이었기 때문이다.



성윤이가 태어난 지 세 번째 가을. 2008년 6월에 태어난 녀석은 그해 가을에 겨우 뒤집기를 시작했고 그 다음해 가을에는 아직 공갈 젖꼭지를 물고 아기 티를 벗지 못한 상태였다. 생애 세 번째 가을에 접어들자 녀석은 전격적으로 기저귀를 뗐고, 야심한 밤에 침대에서 30분은 뛰어야 잠이 오는 혈기왕성한 유아가 되었다. 날 추워지기 전에 너른 들판에 방목하듯이 풀어놓으면 딱 좋을 그런 시기인데, 이번 가을에는 녀석과 다양한 추억을 만들지 못했다.



우리 집 가족계획을 생각하면 하는 일 없이 보내버린 올 가을이 더 아쉽다. 계획대로라면, 내년 연말쯤엔 성윤이에게 동생이 생긴다. 당장 내년 봄부터 녀석의 기득권을 노리는 또 다른 녀석이 엄마 뱃속에서 커 가면, 하늘 모르고 연일 상종가를 치던 녀석의 몸값은 날이 갈수록 떨어질 게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녀석에게 이번 가을은 극진한 대우를 받으며 나들이하기에 가장 좋은 계절이었던 셈이다.

아빠 입장에서도 우리 가족의 규모가 더 커지기 전에, 성윤 엄마의 몸이 무거워지기 전에, 성윤이가 ‘찬밥’이 되기 전에 오붓하게 하고픈 일이 있었다. 먼저 동물원에 가고 싶었다. 책에서만 보던 사자, 호랑이, 기린, 곰 등등을 성윤이에게 직접 보여주고 싶었다. 신선한 가을바람 맞으며 코끼리기차나 진짜 말이 끄는 마차를 타고 싶었다.

또 20대 시절 패기만만하게 활보했던 모교 캠퍼스에 녀석을 데려가고 싶었다. 엄마와 아빠가 처음 만났던 그곳에 녀석을 풀어놓고 ‘생명의 기원’을 설명하고 싶었다. 아빠가 기자시험을 준비하며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었던 중앙도서관도 녀석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다시 생각해봐도 뭐 대단한 일도 아니었다. 그러나 소박하기만한 이 꿈은 끝내 이뤄지지 못했다. 가계에 보태려고 성윤 엄마가 따온 외부 프로젝트 탓이었다. 원래 10월 한 달 동안 정리 작업에 참여하는 것으로 알고 합류했지만, 팀 내부에서 의사소통에 문제가 생기고 프로젝트 발주처로부터 좋은 평가를 얻지 못하면서 벌써 두 달째 일이 마무리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성윤 엄마는 주말마다 미팅에 참석해야 했는데 벌써 두 달이 다 되도록 작업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고스톱도 셋이 있어야 정통. 주말마다 성원을 채우기조차 어려웠던 2010년 가을은 그렇게 허무하게 지나가버렸다. 그렇다면 넷이 되는 내년, 후년 가을은 재미가 쏠쏠할지... 그러나 광 팔고 한 텀 쉴 수 있는 여유를 부리기까지는 너무 멀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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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규 기자
서른두살 차이 나는 아들과 마지못해 놀아‘주다가’ 이제는 함께 잘 놀고 있는 한겨레 미디어 전략 담당 기자. 부드럽지만 단호하고 친구 같지만 권위 있는 아빠가 되는 게 꿈이다. 3년 간의 외출을 끝내고 다시 베이비트리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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