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직 후 일주일 만에 찾아온 위기
147619009160_20161012.JPG » 육아휴직을 마치고 회사에 다시 출근한 뒤부터 집안꼴은 엉망이 됐다. 송채경화 기자

식탁 밑엔 아이가 먹다 흘린 밥풀이 말라 비틀어진 채 붙어 있었다. 거실을 걸어다닐 때마다 정체 모를 부스러기들이 발바닥에 달라붙었다. 빨래통이 넘치고 욕실엔 곰팡이가 피었다. 옷장엔 남편과 나와 아이의 옷이 어지럽게 얽혀 있었다. 육아휴직을 마치고 복직한 지 일주일. 집안꼴은 엉망이 되었다. 집뿐만 아니라 우리 세 식구도 함께 위기를 맞았다.

새벽같이 출근하는 일은 고됐다. 업무 특성상 야근을 해야 하는 상황까지 감안하면 집에 있는 시간이 많지 않았다. 체력이 급격히 떨어지는 게 느껴졌다. 남편은 그동안 내가 하던 모든 일을 떠맡았다. 아침에 일어나 아이를 먹이고, 씻기고, 입히고, 가방을 챙겨 어린이집에 보냈다. 낮에 일을 하다 저녁 6시가 되면 어린이집에서 아이를 데려와 다시 먹이고, 씻기고, 놀아주고, 재웠다. 부모가 바쁜 사이 15개월 아이는 손가락을 더 자주 빨았다. 어린이집 선생님은 아이가 다른 친구보다 더 많이 안기고 싶어 한다고 했다. 집에 돌아오면 아빠가 현관문 근처에만 가도 울부짖으며 매달렸다. 새벽에도 가끔씩 깨어나 엄마·아빠를 확인하고는 다시 잠들었다.

모두가 지친 일상 속에서 남편과 나는 서로 조심하려고 애썼다. 누군가 한 명이라도 볼멘소리를 했다가는 한순간에 ‘빵’ 터져버릴 것 같았다. 도움의 손길이 절실했지만 우리한테는 돈이 별로 없었다. 둘이 열심히 모아도 가파르게 오르는 전셋값을 감당하기 벅찼다. 이런 나날이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다는 게 우리를 더 힘들게 했다.

그나마 나는 운이 좋은 편이다. 복직해야 하는데 어린이집을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는 여기자 선배를 여럿 봤다. 어린이집이 아이를 늦게 데려가는 직장맘을 싫어하는 탓이다. 다행히 나는 상대적으로 좋은 어린이집을 구할 수 있었다. 평일엔 프리랜서인 남편이 육아와 집안일을 주로 하는 것도 ‘행운’이다.

올해 통계청이 발표한 ‘한국인의 생활시간 변화상’ 조사 결과를 보면 워킹맘의 가사노동 시간은 하루 3시간8분이다. 남성의 45분에 비하면 4배나 더 많이 집안일을 하는 것이다. 도대체 다른 워킹맘은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는 걸까!

그러다가 우연히 한화그룹 광고 ‘나는 불꽃이다’ 직장맘 편을 봤다. 어이가 없어서 말이 다 안 나왔다. 새벽에 아이를 위해 도시락을 싸고 출근해 일하다 저녁 늦게 들어와 너저분한 집안을 치우며 녹초가 된 워킹맘에게 ‘불꽃’처럼 더 노력하라고 떠밀고 있었다. 광고 마지막에는 워킹맘이 밤중에 식탁에 앉아 머리를 질끈 묶고 “나는 불꽃이다”라며 서류를 들춰보는 것으로 끝난다. 이것이 현재 대한민국이 ‘일하는 여성들’에게 요구하는 기준이라고 생각하니 눈앞이 아찔했다. 이건 그냥 불꽃처럼 터져서 죽으라는 얘기다.

가끔 주변에서 둘째 계획이 있냐고 물어본다. 안 낳는다. 아니, 못 낳는다. 지금도 아이를 볼 때마다 측은해 가슴이 미어지는데 불쌍한 아이를 둘이나 만들 수 없는 노릇이다. 사회는 우리에게 아이를 낳으라고 등 떠밀어놓고, 막상 낳고 나면 알아서 키우라며 등을 돌린다. 그러고는 지친 부모에게 어차피 모두가 힘들다고, 더 열심히 살아야 한다며 ‘파이팅’을 외친다. 이런 나라에서 출산율을 올리겠다니 그것이 가능하기는 할까.

*송채경화 기자의 ‘모성애 탐구생활’ 연재를 마칩니다. 애독해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이 글은 한겨레21 제1132호(2016.10.17)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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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채경화
결혼 안 한다고 큰 소리치다가 서른넷에 결혼했다. 아이를 안 낳겠다고 떠들다가 결혼한지 1년 만에 아이가 생겼다. ‘평생 자유롭게 살겠다’던 20대의 꿈은 잠시 접어두고 하루하루 모성애를 탐구하며 보내는 서른 여섯 초보 엄마. 2008년 <한겨레>에 입사해 사회부, 정치부를 거쳐 <한겨레21> 정치팀에서 일하다 현재 육아휴직중이다.
이메일 : khs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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