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 하나 정답을 일러주지 않는 육아, 
‘나’를 찾고 아이를 믿으니, 비로소 달콤한 교감의 순간이 찾아와

 
2주간의 조리원 생활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첫날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 남편에게 욕실 청소를 해놓으라고 신신당부했건만 욕실에는 물때와 곰팡이가 그대로 있었다. 이런 곳에서 신생아를 목욕시키라고? 말도 안 돼. 잔소리를 늘어놓자 남편은 분명히 청소를 했노라고 항변했다. 그 말을 믿을 수 없었다. 남편에게는 보이지 않는 세균 덩어리들이 내 눈에는 보였다. 그날 밤 아직 회복이 덜 된 몸을 이끌고 욕실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청소를 시작했다. 일종의 시위였다. 욕실 바닥을 솔로 박박 문지르는데 부아가 치밀어올랐다. 출산한 지 며칠 지나지 않은 산모를 꼭 이렇게 무리하게 만들어야 하나? 쫓아와 자기가 청소하겠다며 솔을 빼앗아도 시원찮을 판에 욕실문을 열어보지도 않다니. 솔을 바닥에 집어던졌다. 그제야 남편이 욕실문을 빼꼼히 열어보고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새끼를 낳은 뒤 다가가기만 해도 으르렁대는 어미개처럼 나는 아이를 낳고 나서 신경이 예민할 대로 예민해져 있었다. 갓 태어난 아이는 조금만 손이 잘못 닿아도 부서질 것처럼 연약했고 세상은 유해물질로 가득 차 있었다. 지어진 지 30년도 넘은 오래된 주택의 묵은 먼지부터 젖병에 기생하고 있는 각종 세균까지 아이의 건강을 해칠지도 모르는 온갖 위험물질을 상상하며 전전긍긍했다. 방역업체를 불러 온 집안을 소독하겠다는 걸 남편이 말렸다.

144861394704_20151128.JPG » 수유량을 체크하기 위해 하루에도 몇 번씩 아이를 체중계 위에 올려놓았다. 체중계 위에서 잠이 든 아이. 송채경화한 생명을 책임져야 하는 현실의 무게감은 상상 이상으로 무거웠다. 나는 그 무게감에 짓눌려 내 아이의 탄생을 마음껏 기뻐하지 못했다. 아이의 눈을 들여다보며 행복한 미소를 짓는 일보다 수유 시간과 배변 횟수, 수면 시간을 체크하는 일에 더 매달렸다. 신생아 양육표에 이 모든 기록을 빽빽하게 적어놓고는 하루 종일 그 기록을 분석하는 데 골몰했다. 수유 간격은 때로는 30분, 때로는 3시간으로 들쭉날쭉했다. 우는 아이에게 젖을 물리면서도 혹시 배고파서 우는 게 아니면 어쩌나 항상 불안했다. 왜 젖을 제대로 물지 못하는 건지, 배변 횟수는 왜 이리 적은지, 왜 이렇게 잠을 안 자는 건지. 질문은 끝도 없이 이어졌지만 답을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이를 먹이고 재우는 이 간단치 않은 일 앞에서 나는 파도를 만난 조각배처럼 이리저리 휩쓸렸다.
행복하지 않았다. 임신 기간 동안 엄청난 먹성을 보여주던 내 입맛은 출산과 동시에 뚝 떨어졌다. 먹고 싶지 않은데도 수유를 위해 억지로 밥을 입안에 밀어넣는 일은 고역이었다. 너무 지쳐 때로는 모든 것을 놓아버리고 싶었지만 이것은 파업이 불가능한 영역이었다. 잠을 자지 못한 탓에 몽롱해진 정신, 로션을 바를 시간이 없어 푸석해진 얼굴과 너덜거리는 뱃살을 마주한 채 내가 불행한 이유에 대해 곰곰이 생각했다. 나 자신은 사라진 채 아이만 존재하는 듯 지내온 시간들이 거기에 있었다.

사실 아이는 알아서 잘 크고 있었다. 내가 집착하지 않아도 아이는 스스로의 생명력으로 배고플 때 먹고 자고 싶을 때 자면서 건강하게 자라고 있다는 사실을 나만 모르고 있었다. 그걸 깨닫는 순간 양육표를 치워버리고 모든 기록을 중단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아이의 몸무게를 재던 저울도 방 구석으로 밀어놓았다. 대신 그 시간에 내 얼굴에 아이크림과 수분크림을 다시 꼼꼼하게 바르기 시작했다. 일주일에 한 번씩은 남편에게 아이를 맡겨두고 혼자서 회사 선후배와 친구들을 만나러 나갔다. 숨통이 조금씩 트이기 시작하자 그제야 아이의 배냇짓이 보였다. 아이와 함께 침대에 누워 옹알이를 주고받다가 스르르 잠드는 순간의 달콤함 속에서 처음으로 행복이 느껴졌다. 아, 이래서 사람들이 아이를 낳는구나. 아이와의 공존 속에서 나는 조금씩 육아의 답을 찾아나가기 시작했다.

(*이 글은 한겨레21 제1088호(2015.11.27)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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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채경화
결혼 안 한다고 큰 소리치다가 서른넷에 결혼했다. 아이를 안 낳겠다고 떠들다가 결혼한지 1년 만에 아이가 생겼다. ‘평생 자유롭게 살겠다’던 20대의 꿈은 잠시 접어두고 하루하루 모성애를 탐구하며 보내는 서른 여섯 초보 엄마. 2008년 <한겨레>에 입사해 사회부, 정치부를 거쳐 <한겨레21> 정치팀에서 일하다 현재 육아휴직중이다.
이메일 : khs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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