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be99c453268125ac9d4aedd6d922fe6. » 엄마! 요즘 많이 약올라요?하루하루 생활이 바쁘다는 이유로 미루고 또 미루고, 심지어 절필까지 생각했던 나를 다시 베이비트리로 이끈 건, 녀석의 ‘폭풍성장’ 이었다. 엄마 아빠가 무릎을 치게 하더니, 더 나아가 엄마 아빠 뒤통수를 치는 녀석의 기이한 행적은 이를 기록으로 반드시 남겨야 한다는 아빠의 의무감을 샘솟게 한 것이다.  


모처럼 일찍 집에 들어가 침대에 같이 눕게 된 우리 세 식구. 녀석은 오랜만에 “자동차 이야기를 해달라”고 했다. 졸음도 오는데 교훈적인 내용으로 쌩구라를 만드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고 재미도 없었다. 그래서 나도 즐길 수 있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만들기로 했다. 요즘 잘 나가는 어린이용 캐릭터를 짬뽕시켜서 적나라한 에피소드를 만드는 것. 내가 그날 급조해낸 ‘자동차 이야기’는 다음과 같았다. 


로보카 폴리가 운전을 하고 갔어. 신호등이 파란불에서 빨간불로 바뀌었는데 로보카 폴리가 서지 않고 지나간 거야. 그런데 <꼬마버스 타요>에 나오는 경찰관 이름이 뭐지? 루키야. 루키가 그 장소에서 교통 단속을 하고 있었네. 폴리가 신호위반으로 걸린 거지. 루키가 폴리한테 면허증을 보여달라고 그러니까 폴리가 “야, 나도 경찰이야. 우리끼리 뭐 이런 걸 단속하고 그러냐”고 그랬어. 그러니까 루키가 “경찰은 운전법규 안 지켜도 되냐. 빨리 면허증 보여줘”라고 쏘아붙였지. 그러니까 폴리가 머쓱해하면서 “그러면 좀 싼 걸로 끊어줘” 그랬어. 그러니까 루키가 “그럼… 그럴까” 하면서 불법주차 스티커를 떼어줬어. 신호위반은 6만원인데 불법주차는 4만원이거든.

아이들 캐릭터를 통해 그려본 ‘19금’ 어른들의 세계. 난 얘기를 하면서도 웃음이 터져나왔다. 아내는 “아, 뭐야. 얘기 좀 제대로 해주지” 그러면서 같이 웃었다. 영문을 잘 모르는 녀석은 “아빠, 다른 얘기 해줘”라고 했지만 난 “아빠는 이제 소재가 다 떨어졌어. 오늘은 더 못해. 이제 성윤이가 해줘”라고 역공을 폈다. 녀석은 “그래, 알았어” 그러더니만 다음과 같은 얘기를 지어냈다.


로보카 폴리랑 벤츠랑 비엠더블유랑 아파트에 주차를 하고 있었어. 그런데 우면산에 산사태가 났어. 그래서 폴리가 로보카로 변신해서 벤츠랑 비엠더블유랑 다 구했어.


띠용! 이렇게 이야기를 잘 지어내다니... 녀석도 내가 했던 방식으로 이런저런 얘기를 갖다 붙였지만, 최근에 있었던 우면산 산사태를 시의성 있게 잘 다뤘고, 그리고 구조에 전력을 다하는 로보카 폴리의 캐릭터를 최대한 잘 살린 수작이었다.


“아이고, 우리 성윤이가 많이 컸구나.” 짤막한 얘기였지만 난 이날 이렇게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나는 고슴도치인가...)


나는 녀석의 생각이 커가는 모습이 반갑기만 하지만, 아침저녁으로 녀석과 붙어있는 아내는 논리와 자아가 강해지는 녀석에게서 황당함을 많이 느낀다고 했다. 야근으로 나의 귀가가 늦었던 지난주 15일, 녀석과 아내는 볼 만한 신경전을 펼쳤다고 한다. 둘이 같이 퇴근한 아내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녀석에게 “성윤이 뭐 먹고 싶어?”라고 물었고 녀석은 ‘닭튀김’을 해달라고 했다. 그렇게 정성스레 닭가슴을 튀겨서 내오니 녀석이 한마디 했다.


“연근 튀김은 안 했어? 코피 나면 어떻게 해?”


신나게 놀다가 한두 번 코피를 흘렸던 녀석에게 코피 안 나게 하는 연근을 튀김 형식으로 두어 번 요리해서 먹였더니, 바쁘게 닭튀김을 준비한 엄마에게 “왜 연근튀김 준비 안 했냐”는 식이었다. 이 부분에선 잘 넘어갔다고 하는데, 닭튀김을 케첩에 찍어먹던 녀석이 케첩을 더 짜달고 했다. 그래서 아내가 “남기면 아까우니 조금씩 짜놓고 먹자”고 했더니 녀석이 파르르 떨면서 이렇게 말하더란다.


“이 집에서 못 살겠어. 어린이집도 안 갈 거야.”


헉! 말문이 막혀버린 아내는 야근 중인 내게 문자를 보내왔고 난 녀석의 ‘가출 선언’에 빵 터져버리고 말았다. “이 집에서 살 수가 없다”는 말은 누구한테 배운 건지...  즉석에서 ‘당한’ 사람은 황당했겠지만 녀석의 조그만 입에서 그런 말이 나왔다는 걸 상상해보니 웃음이 터질 수밖에 없었다. 엄마와 말싸움을 한다는 건 어쨌든 많이 컸다는 방증이었다. 가출이 아니라 독립의 의지를 표명한 ‘독립 선언’이라고 해두자.

‘미운 네살’에 녀석은 분노 감정을 조절하는 방법을 배우고 있는 것 같다. 이럴 때 엄마나 아빠는 차분하게 감정을 다스리는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 법. 성질 같아서는  “이게 어따 대고 신경질이야!”라고 귀싸대기를 한 대 올리고 싶지만, 그건 나 어렸을 적의 향수일 뿐이다.  녀석의 도발이 강렬해질수록 ‘참을 인’ 자를 쓰고 또 쓸 수밖에...

아내가 내게 농담처럼 물었다.

“내가 언제까지 애한테 이렇게 종노릇을 하면서 살아야 해?”


나는 진지하게 대답했다. 


“품안에 자식이라고 하잖아... 아마 초등학교 들어갈 때까지는 그래야 하지 않을까? 큭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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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규 기자
서른두살 차이 나는 아들과 마지못해 놀아‘주다가’ 이제는 함께 잘 놀고 있는 한겨레 미디어 전략 담당 기자. 부드럽지만 단호하고 친구 같지만 권위 있는 아빠가 되는 게 꿈이다. 3년 간의 외출을 끝내고 다시 베이비트리로 돌아왔다.
이메일 : dokbul@hani.co.kr      
블로그 : plug.hani.co.kr/dokb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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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김태규 기자의 짬짬육아 시즌2] 기자, 아빠가 되다 imagefile 김태규 2010-04-26 211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