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상_1~1.JPG

 

 

"이다음에 시집가서 밥을 혼자 먹게 되더라도 꼭 방 한가운데 상을 펴 놓고

제대로 앉아서 반듯하게 차려 먹어라.

니가 너를 제대로 대접해야 남에게도 대접 받는 법이다"

 

친정에 있을때 아빠는 이런 말씀을 자주 하셨다.

주말에 늦게 일어나 냉장고에서 반찬통 몇 개 꺼내 놓고 뚜껑만 대충 열어  밥 먹고 있는

딸을 향해 혀를 끌끌 차며 이런 말들로 타이르곤 하셨다.

네, 네.. 좋은 말이네요. 알았어요. 그럴께요.

나는 건성으로 대답만 하며 그대로 밥을 먹곤 했었다.

 

결혼하고 애를 낳고 보니 밥 한끼 제대로 먹는 일이 얼마나 어렵고 귀한 일인지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다. 음식도 서툴고 손도 느린데 어린 애 돌보느라 쩔쩔매다 보면

어느새 밥 때가 되어 있었고, 울고 매달리는 애를 안고 업고 반찬 한가지 제대로 해 먹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어떤 때는 친정 엄마가 해 놓고 가신 반찬조차 제대로 꺼내 먹을 새가 없었다. 

젖주고, 기저귀 갈고, 기저귀 빨고, 다시  잠에서 깬 아이 안고 놀아주고

또 젖 물리고 기저귀 갈다보면 밥은 커녕, 엉덩이를 대고 앉을 틈도 없었다.

간신히 식탁에 차려 놓은 밥도 앉아서 먹지 못하고 서서 오가며 한 술씩 떠 넣기도 하고

국이 다 식도록 그릇에 입도 못 대보기도 했다.

젖을 물린체 간신히 엉덩이 붙이고 밥을 떠 넣다 보면 정성껏 차린 밥상에도

제 때 나와서 앉지 않았던 처녀시절의 내 모습이 떠올라 가슴이 먹먹해지곤 했다.

나를 위해 차려주는 한 그릇 밥이 얼마나 귀하고 소중한 것인지 새삼

가슴에 사무치던 날들이었다.

 

간신이 애가 잠들고 잠깐의 여유가 찾아오더라도 나를 위한 밥상에 정성을 쏟을

수가 없었다. 애가 깨기 전에 서둘러 먹다보면 늘 반찬은 냉장고에서

꺼낸 그대로이고 그릇 하나 더 씻는 것도 힘들어서 한 그릇에 이것 저것 다 넣고

허겁지겁 비벼 먹는 일이 다반사였다. 그때마다 친정아버지의 말이 떠올랐다.

귀하게 키운 딸이 제 스스로를 잘 대접해 가며 살기를 바라셨던 그 마음이,

밥을 먹는 일이 단순히 허기를 때우는 일이 아니라 나를 소중히  제대로 잘

돌보는 시간이기를 바라셨던 그 마음이 딸을 많이 아끼셨던 아빠의 진심이었음을

비로소 깨달았기 때문이다. 늦게 철 든 딸은 친정 아빠의 마음을 되새겨 가며

허술한 밥상에 앉아 눈물로 밥을 삼키곤 했다.

잘 키워주신 정성만큼 내가 스스로를 잘 대접해주지 못하는 것이 죄송했던 것이다.

 

늘 내 앞에서 먼저 쓰러지려는 도미노를 기를 쓰고 달려가 다시 세워 놓는 것 같은

고단하고 힘든 날들도 어느새 지나가고 세 아이들은 쑥쑥 자라나 어느새

아빠만큼 엄마만큼 밥을 먹는 나이가 되었다.

이젠 밥상을 차릴때마다 생각을 하게 된다.

 

매일 반복되는 엄마의 일상에서 아이들은 제가 살아갈 삶의 기본적인 모습들을

세워나갈텐데... 싶었기 때문이다. 바쁘다고, 힘들다고 쉬운대로, 편한대로

하다보면 아이들도 그런 모습을 당연하게 여기겠지... 생각하면

정신이 번쩍 나곤 했다.

끼니때마다 나물 한가지라도 해서 상에 내려고 애를 썼다.

무치고, 삶고, 다듬고, 데치며 수없이 많은 날들을 상을 차리고, 치우고 또 다시

차리며 살았다. 그 세월이 어느새 12년이다.

 

큰 아이에 이어 둘째가 초등학교에 입학을 하자 매일 점심은 나와 다섯 살 막내

둘이서 먹게 되었다. 입맛 까다로운 큰 아이들이 빠져나가자 슬슬 꾀가

나기 시작했다. 막내는 뭐든지 잘 먹는 아이다보니 반찬이 많을 필요도 없고

가끔 내가 밥 먹기 싫을때는 막내만 차려주고 나는 과일인 빵으로

때워도 좋았기 때문이다.

바쁜 아침 시간을 종종거리며 보내고 나서 맞는 점심엔 그냥 편하고

간단하고 쉬운 것으로 때우고 싶다는 생각이 굴뚝같았다. 어짜피 온 가족이

다 모이는 저녁엔 새 반찬도 해야하고 이것 저것 준비할 것이 많으니

점심이라도 쉽게 지났으면 하는 것이다.

냉장고에서 반찬통을 꺼내 뚜껑만 열고 밥을 먹게 되기도 하고

계란 후라이와 김치만으로 점심을 해결하는 날도 흔했다.

 

이룸%2~1.JPG  

 

 

그러다가 다시 친정 아빠가 해주신 말씀이 떠오른다.

내 모습을 보며 제 날들을 키워 갈 아이들의 모습도 떠오른다.

그래, 그래, 이러면 안되지.

편하자고, 귀찮다고 소홀하면 아이들이 내게서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내게 소중하고 사랑스런 아이들 역시 스스로를 잘 챙기고 대접하는 법을

배우기를 바라는 것은 나 역시 똑같은데 말이다.

귀찮고 힘들어도 정성껏 상을 차리고 정성껏 먹을 수 있도록 가르쳐야지.

내 부모님이 나를 그렇게 키워 주셨으니 내 아이들에게도 그런 정성을

기울여야지... 그래야지..

 

다시 느슨해진 마음을 단단히 조였다.

반찬통의 반찬을 이쁜 그릇에 덜어 상에 내 놓고 샐러드도 만들었다.

작은 상에 막내랑 둘이 앉아 밥을 먹는다.

그러고보니 내년에 막내가 병설 유치원에 다니게 되면 그때부턴

점심은 나 혼자 먹게 되는구나.

13년만에 혼자서 먹는 점심을 맞게 되겠구나.

 

한결 편해지겠네.. 싶다가도 마음이 싸해져온다.

내가 만든 음식을 환영해주고 같이 맛있게 먹어주는 귀여운

얼굴들이 사라진 식탁에서 과연 나는 나 혼자를 위해 얼마나 정성과

노력을 기울일 수 있을까.

챙겨야 할 대상이 있을때 사람은 더 긴장하고 애쓰게 되는 법인데

나 혼자 남은 식탁에서 나는 어떤 밥상을 차리게 될까.

13년 만에 비로소 내가 나를 잘 대접할 수  있는 그런 밥상을

준비하게 될까.

13년만에 큰 숙제에서 해방되었다고 기뻐하며 내 맘대로

간단하게 넘기게 될까.

 

어쩌면 얼마 남지 않은, 막내와 둘이서 먹는 점심 밥상을 위해

정성을 기울이면서 밥상에 차려진 음식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정성과 수고가

내 아이들을 길러 왔음을 새삼 생각한다. 나 역시 수많은 정성과 수고를

먹으며 이때껏 살아왔음을 깨닫듯이 말이다.

 

애 키우고 살림하며 밥 해먹기 힘들다고 늘 아우성이지만

밥상에 담긴 수고와 정성이 식구들의 몸과 마음의 허기를

든든하게 메워주었기에 그동안 탈 없이 잘 커주었을 것이다.

아이들이 없어도 혼자 먹게 되어도 이 마음을 잊지 말아야지.

그땐 정말 내가 나를 잘 대접해야지. 그동안 수고했다고, 애 썼다고

큰 일 했다고 다독이며 격려하며 나를 잘 위해줘야지.

 

사는 일이 힘들수록 정성 담긴 밥 한 그릇이 우리를 일으킬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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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순화
서른 둘에 결혼, 아이를 가지면서 직장 대신 육아를 선택했다. 산업화된 출산 문화가 싫어 첫째인 아들은 조산원에서, 둘째와 셋째 딸은 집에서 낳았다. 돈이 많이 들어서, 육아가 어려워서 아이를 많이 낳을 수 없다는 엄마들의 생각에 열심히 도전 중이다. 집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경험이 주는 가치, 병원과 예방접종에 의존하지 않고 건강하게 아이를 키우는 일, 사교육에 의존하기보다는 아이와 더불어 세상을 배워가는 일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고 있다. 계간 <공동육아>와 <민들레> 잡지에도 글을 쓰고 있다.
이메일 : don3123@naver.com      
블로그 : http://plug.hani.co.kr/don3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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