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부모의 일상적 조건 속에서도

 아이에게 치명적인 결핍이 얼마든지 일어난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어야 한다."  

                            - <당신으로 충분하다> / 정혜신 -

 

 

이젠 육아책을 일부러 찾아읽는 시기는 좀 지났지만

어쩌다 읽게 되는 한 문장, 한 구절에서 아...! 하는 감탄사와 함께

몸과 마음이 동시에 뻥 뚫리는 듯한 느낌이 드는 순간이 있다.

누군가의 표현처럼

'지혜로운 말을 들었을 때의 쾌감'이 드는 그런 순간.

 

아이들을 키우는 엄마에겐 뭔가 알 수 없는 근원적인 불안감같은 게 있다.

어느 엄마나, 자신이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애지중지 키우고는 있지만

그러면서도 밤에 잠든 아이 얼굴을 들여다 보며, 이 아이가 오늘 하루,

나로 인해 생긴 결핍이 있진 않았을까..

불안하고 미안하고 자책하게 된다.

10년쯤 아이를 키우고보니, 뿌리를 알 수 없는 그런 불안마저도 

아직 어린 생명을 잘 돌보게 하기 위한 자연의 전략(?)같은 것이니

그저 적당히 불안해하는 게 자연의 흐름을 잘 타는 것이라 여기며 살고 있다.

 

그런데, 가끔 아이가 외로움을 타는 순간을 목격할 때가 있다.

부모와 조부모의 사랑은 물론

형제와도 알콩달콩 재미난 일상을 보내는 아이임에도 불구하고

나의 아이가 외로움을 느끼는 걸 지켜볼 때,

그것이 엄마인 내가 노력해서 채워줄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그런 본능적인 직감이 들 때 어쩐지 당황스럽다.

그건 어쩜, 남편과 아이들과 행복한 한 때를 보내는 순간에도

문득문득 외로움을 느끼는 나 자신의 그것과 비슷한 건지도 모른다.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이나 조건과 상관없이,

외로움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느낄 수 있는 감정이니

어린 아이라고 해서 늘 행복하고 귀엽고 즐거운 감정만 경험하는 건 아니다.

 

그렇게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 아이의 외로움을 보게 되는 순간,

엄마의 마음은 '내가 뭘 잘못했나' '뭐가 부족했지?' ' 뭘로 채워줘야하나'하는

강박으로 물결치곤 한다. 혼란스러운 상황이다.

그럴 때는 서천석 선생님의 따뜻한 글을 꺼내읽으며 마음을 달랜다.

 

"아이가 멋진 예술가가 되었으면 하는 꿈을 꾸는 부모들.

감성의 고향은 어두운 곳입니다.

감성은 그런 어둠을 이겨내려 자기 마음에 피워올린 모닥불입니다.

너무나 절실해서 꺼지지 않는 가냘픈 온기가 감성입니다.

누가 가르친다고 배울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엄마인 나의 부족한 양육방식이 원인이 되었든, 그것과 상관없이

아이 내면에서 자연스럽게 스며나온 것이든,

아이가 어두운 감정이나 어떤 결핍을 겪게 된다해도, 그것 자체가

큰 문제가 되진 않는다는 생각을 이제서야 하게 된다.

평범한 부모와 가정에서도 아이에게 결핍이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은,

모든 것을 부모 탓으로 돌리지않아도 될 뿐더러

결핍된 그 부분이 있어 아이 스스로가 자기 마음 안에

하나의 모닥불을 간절히 피워올릴 수도 있다..는 것.

 

부모인 내가 할 일은 결핍, 그 자체에 집중할 것이 아니라

아이가 자기 안의 그런 감정과 잘 사귀어 갈 수 있도록

지켜보고 격려하는 것이다.

 

DSCN1913.JPG

 

가을과 함께 4학년 2학기를 맞이하는 딸은

가까운 공원에 함께 산책갈 때마다 큰 나무 위에 오르곤 한다.

더 어릴 때는 올라가서 까불고 그러더니,

요즘은 높은 곳에 가만히 앉아 한참 먼 곳을 응시하곤 한다.

나는 그런 딸의 모습을 올려다 보며

철없이 까불고 조잘거리던 일곱, 여덟살 즈음의 딸이 그립기도 하고

이젠 내 곁을 성큼 떠나 다른 세계로 들어서고 있는 요즘의 아이가 낯설기도 하다.

뭐라고 정확히 설명하긴 힘든데,

4학년 아이를 둔 엄마들은 누구든

아이들이 요즘 부쩍 달라졌다, 상대하기 힘들어졌다고 말한다.

나 역시 딸에게서 어떤 문제를 발견하진 않지만 분명 뭔가가 달라진 걸 느낀다.

다 큰 앤의 뒷모습을 보며 쉴새없이 재잘거리는 앤의 어린 시절을

그리워하는 마릴라가 이런 기분이었을까..

 

그런 생각에 빠져 내가 잠시 안드로메다를 헤매고 있을 때,

딸아이가 나무에서 훌쩍 뛰어내려왔다.

"엄마! 나무 위에 앉아있는데..."

음.. 뭐지? 무슨 고민이라도 있나.. 뭘 그렇게 오래 생각하고 있었던 거지?..

 

"엄마! 나무 위에 있는데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다섯 번이나 났어요.

오늘 간식은 뭐예요??  배고파.. 집에 빨리 가요!!"

 

아이쿠야.

오늘도 엄마가 너무 앞서갔나 보다.

그래.. 아직은 11살. 배고픈게 그 어떤 것보다 급할 때지.

딸아. 엄마 욕심이지만 조금만 더 귀엽게 까불고 투정부리는 아이로 남아줘.

크더라도 한꺼번에 너무 빨리 크지말고, 살살(?) 커줘~

집에 얼른 가서 옥수수나 삶아먹자.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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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희
배낭여행 중에 일본인인 지금의 남편을 만나 국제결혼, 지금은 남편과 두 아이와 함께 도쿄 근교의 작은 주택에서 살고 있다. 서둘러 완성하는 삶보다 천천히, 제대로 즐기며 배우는 아날로그적인 삶과 육아를 좋아한다. 아이들이 무료로 밥을 먹는 일본의 ‘어린이식당’ 활동가로 일하며 저서로는 <아날로그로 꽃피운 슬로육아><마을육아>(공저) 가 있다.
이메일 : lindgren707@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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