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3f9475957add44247c726ed101ccbd6. » 녀석이 집안정리도 안된 새집에서 어린이집에 가겠다고 가방을 메고나섰다.






지난 금요일, 우리 가족은 이삿짐을 쌌다. 강추위가 기승을 부리는 이 엄동설한에 보금자리를 옮기는 일은 만만치가 않았다. 포장이사를 입회하는 일은 아내가, 전세금을 받아다 잔금을 치르는 대외적인 일은 내가, 우리집 ‘보물 1호’ 성윤이를 안전하게 옮기는 일은 외할머니와 처남이 맡았다. 아내는 하루 종일 이삿짐 아저씨들과 함께 했고, 난 중개소 두 곳과 동사무소를 쉼 없이 움직였으며, 녀석은 차를 타고 찜질방을 전전해야 했다. 오전 9시부터 시작된 포장이사는 밤 9시30분에야 끝이 났다.






바뀐 집에서 두 밤 잤는데, 아침마다 코가 시려 잠이 깬다. 집이 동향이라 볕도 잘 안 든다. 그야말로 냉골이다. 전에 살던 남향집에서는 난 항상 런닝셔츠 차림이었지만 여기선 항상 의관을 정제해야 한다. 그 덕에 녀석이 구사하는 말도 하나 더 늘었다. “츠.어.(추워)”






혹한기에 그것도 더 추운 곳으로 이사를 감행해야 했던 이유는 녀석의 어린이집 문제 때문이었다. ‘이모님’이 그만두시겠다는 뜻을 밝히고 나서 우리 부부는 고민에 빠졌다. 다시 베이비시터를 쓰자니, 좋은 분을 만난다는 보장도 없거니와 비용도 부담스러웠다. 이제 녀석의 나이도 찼으니 어린이집을 보내는 게 맞긴 한데,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어린이집 운영시간은 왜 그리도 짧은지...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까지 정규시간이 끝나면 저녁 7시까지 연장이 된다고는 하나 직장이 조금 먼 맞벌이 부부에게는 매일매일 피를 말리는 시간싸움을 강요하는 일이었다. 매일 서초동으로 출근하는 우리 부부에게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우리 세 식구의 행복한 삶을 위해서는 뭔가 구조적인 변화가 필요했다.






그렇게 해서 생각해낸 게 보금자리를 통째로 옮기는 이사였다. 목표물은 아내의 직장 어린이집. 운영 시각이 오전 9시부터 밤 9시까지라고 하니, 아내가 야근을 하더라도 녀석을 보살필 수 있는 최적의 공간이었다. 내 출입처와도 가까운 거리라 여차 하면 내가 달려갈 수도 있었다. 아내와 내가 일을 하면서 아이를 키우려면 이것밖에는 방법이 없었다. 






그러나 구상이 실현되기까지 시련도 적지 않았다. 우선 부모님이 이사를 반대하셨다. 옆 동네에 살던 하나밖에 없는 아들네 식구가 ‘먼 곳’으로 이사를 간다 하니, 서운함을 감추지 못하셨다. 가까이 있는 것만으로도 든든하시다는 게 부모님 생각이었다. ‘내 새끼’ 가까이 두고 싶다는, 연로하신 부모님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부모님께서는 아이를 봐주시겠다는 제안도 하셨다. 그러나 칠순을 넘기신 연세와 건강을 생각하면 그것도 안 될 일이었다. 결국 간곡한 설득에 부모님도 이사를 승낙하셨다.

‘미친 전세’도 문제였다. 서초동 한적한 곳에 비슷한 평수의 빌라를 얻었지만 전세 보증금은 8천만원이나 차이가 났다. 언론인금고에서 금리 3%짜리 전세자금 대출 제도가 있지만 액수는 2천만원뿐... 고민 끝에 염치없이 양가 부모님께 돈을 빌려 잔금을 치를 수 있었다.






그렇게 뜻하지않게 ‘8학군’에 둥지를 틀게 되었다. 아이 어린이집 문제가 발단이 됐으니 일단 ‘강남 엄마’의 모습과 유사하지만, 순전히 아이를 위한 것만은 아니었다. 나나 아내도 출근 거리가 가까워졌으니 한숨 돌리며 일과 육아를 병행할 수 있게 됐다. 휴~ 다행이다. 2년 뒤 ‘전세 대란’의 피해자가 돼 또 이삿짐을 싸야 할런지 모르겠지만, 한시적인 안정에 그저 감사할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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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규 기자
서른두살 차이 나는 아들과 마지못해 놀아‘주다가’ 이제는 함께 잘 놀고 있는 한겨레 미디어 전략 담당 기자. 부드럽지만 단호하고 친구 같지만 권위 있는 아빠가 되는 게 꿈이다. 3년 간의 외출을 끝내고 다시 베이비트리로 돌아왔다.
이메일 : dokb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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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태규 기자의 짬짬육아 시즌2] 어린이집을 위해 짐을 쌌다 imagefile 김태규 2011-01-31 135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