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윤아, 아침 빨리 먹고 놀이동산 가서 범퍼카 타자.”



지난 토요일, 온 가족이 부산하게 움직였다. 장인어른께서 녀석과 함께 가시겠다고 사두신 서울랜드 자유이용권 만료 기한이 2월까지였기 때문. 날은 풀렸지만 녀석의 감기로 꼼짝을 못하다가 결국엔 2월의 마지막 주까지 밀려왔다. 일요일은 비가 온다고 하니 갈 수 있는 날은 27일, 토요일밖에 없었다.

외할아버지가 성윤이를 위해 놀이공원 티켓을 사두신 건, 지난 가을날의 추억 때문이다. 부천의 놀이공원에 갔었는데 그때 자동차 마니아인 녀석은 외할아버지와 함께 범퍼카를 신나게 탔다. 그 뒤로도 놀이공원을 주제로 한 책을 읽을 때마다 다음과 같은 대화가 오갔다.



“성윤이, 놀이공원에서 범퍼카 탔죠?”

“쾅~ 쾅~”

“누구랑 탔어요?”

“하.찌~”

“그래서 어떻게 했어요?”

“바.지~”



부연설명을 하자면, 외할아버지랑 범퍼카를 쾅쾅 부딪히며 탔는데 무서워서 할아버지 바지를 꽉 붙잡고 있었다는 얘기였다. 성윤이 만큼이나 그날의 기억이 생생하신 장인어른께서도 놀이공원에 다시 갈 수 있는 봄날을 손꼽아 기다리시는 것 같았다. 그날이 드디어 온 것이다. 



금요일 밤, 서울랜드 홈페이지를 탐색하며 계획을 짰다. 음... 모험의 나라 → 환상의 나라 → 미래의 나라 차례로 움직이면 되겠군... 성윤이 데리고 이것저것 타면 될 테고... 어? 범퍼카는 보호자가 같이 타도 키가 1m 이상이어야 하네... 두 돌 때 87센티였지만 1m가 됐으려나? 뭐, 좀 안 되더라도 태워달라고 우겨보지 뭐.





be8fefced488d63a8103d0152e169934. » 이렇게 범퍼카 탑승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사람이 몰리면 놀이기구 하나 타는 데 1시간씩 걸린다는 글들을 보고 토요일 아침 일찍 일어났다. 밥을 안 먹겠다는 녀석을 “범퍼카 타러 가자”는 말로 꼬시고 일찍 나서 오전 10시 이전에 서울랜드에 도착했다. 비교적 일찍 당도했지만, 적지 않은 인파 속에서 맘이 급해졌다. 제일 먼저 선택한 놀이기구는 회전목마. 기다리는 줄도 짧아서 가볍게 워밍업을 해볼 요량이었다. 장인어른께서 녀석을 안고 목마에 올랐다. 그 옆에 나와 아내가 나란히 올라탔는데 녀석이 갑자기 타기 싫다며 울음을 터뜨렸다. 전혀 예상 못한 반응에 녀석은 외할머니에게로 보내졌고, 어른 셋만 민망하게 회전목마를 타야 했다.



무미건조한 회전목마를 타고 내려와 녀석에게 “이거 탈래, 저거 탈래?” 물었지만 녀석은 무언가를 찾으며 싫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그랬다. 녀석은 ‘꿈에도 그리던’ 범퍼카를 찾고 있었다. 애초에 계획한 동선은 아니었지만 일단 범퍼카 쪽으로 이동했다. 역시 줄이 길었다. 두 겹, 세 겹으로 된 줄을 서면서도 녀석은 안긴 채로 범퍼카의 움직임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러나, 안전요원들의 ‘키재기’가 예사롭지 않았다. 노란색의 가느다란 철제막대에는 100cm와 130cm로 보이는 부분에 빨간색 테이프로 표시가 돼있었다. 130cm는 혼자서 탈 수 있는 키, 100cm는 보호자와 동반해서 탈 수 있는 키였다. 거의 탈 차례가 다 될 무렵, 안전요원이 우리에게 다가왔다.



“아이도 태우실 건가요?”

“네.”

“키 좀 재보겠습니다.”



이런... 예상했던 대로 녀석의 키는 1m가 안 됐다.



“100cm가 안 돼서 아이는 탈 수가 없습니다.”

“어떻게... 안 될까요?”

“안 되시구요, 붕붕카를 태워주세요.”



그렇게 우리는 범퍼카를 20분 동안 기다리다가 쫓겨나왔다. 안전 수칙이 엄격했다. 예기치못한 이런 돌발 상황을 나는 교육적으로 승화시키고 싶었다.



“성윤아, 성윤이가 밥을 잘 안 먹어서 키가 100cm가 안돼서 범퍼카를 못 탄대. 밥 많이 먹고 키 많이 커서 다음엔 범퍼카 타자.”





a9fcd6873424d471b989d16cf31c1d7e. » 대성통곡과 파안대소. 난 정녕 나쁜 아빠인가...



그러나 녀석의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애들 혼자 탈 수 있는 꼬마 범퍼카 앞에도 가봤지만 거기도 키가 100cm는 돼야 가능했다. 범퍼카의 꿈이, 그놈의 키 때문에 처절하게 부서지는 순간, 녀석은 짜증을 부리기 시작했다. 붕붕카는 물론이요, 보호자와 동승해서 탈 수 있는 웬만한 놀이기구 앞에서도 녀석은 고개를 저었다. 급기야는 “집에! 집에!”를 연발하며 귀가를 종용했다. 그러나 자유이용권이 아까워서라도 이대로 물러날 순 없었다. 녀석의 기분을 풀어주려고 가장 저강도의 놀이기구로 다시 한 번 워밍업을 시도했다. 뽀로로와 친구들이 타는 열기구와 비슷한 모양의 ‘둥실 비행선’. 기구에 타서 회전을 하며 공중으로 떠올랐다가 허무하게 내려오는 그 놀이기구를 녀석을 잘 달래서 일단 태웠다. 그러나 비행선이 움직이기 시작하자 녀석은 “무서워, 무서워” 하며 울음을 터뜨렸다. 녀석의 우는 동영상을 정신없이 찍다보니 ‘둥실 비행선’은 어느새 착륙해있었다.



점심을 먹고 들어간 ‘착각의 방’은 그나마 성공적이었다. 영화 <용쟁호투>의 마지막 장면에서 이소룡이 적과 사투를 벌였던 그곳과 비슷하게 만들어진 거울방에서 녀석은 제 엄마를 찾으려 다니다 몸을 날려 넘어지기도 했다.

녀석은 그렇게 돌아다니다가 유모차에 누워 낮잠을 청했다. 어떻게든 본전을 뽑으려한 아내와 나는 다시 눈을 크게 뜨고 주위를 둘러봤다. 저쪽에 어린 아이들이 떼지어 재밌게 놀고 있는 광경이 시야에 들어왔다. 이름하여 무지개 동산. 탄성이 좋은 특수재질 천으로 경사로를 만들었고 아이들은 거기를 타고 오르고 뒹굴고 미끄러지며 놀고 있었다. 녀석이 잠든 사이 줄을 서서 들어갔고, 기다리는 시간까지 포함해 1시간 정도 낮잠을 자고 일어났지만 녀석은 그래도 무지개 동산에 적응하지 못하고 엄마 품으로만 파고들었다. 그러면서 또 “집에, 집에”하며 귀가를 갈망했다. 그래, 우리가 졌다. 집에 가자. 그렇게 원대했던 놀이동산의 꿈은 이렇게 일장춘몽으로 끝이 나고 말았다.



‘지난 번 부천에서는 범퍼카 탔었는데 과천에서는 안 된다고? 치, 그런 게 어딨어... 속상해 죽겠는데 엄마랑 아빠는 자꾸 이것저것 타자고 하네... 여기저기 사람도 많고 음악 소리는 왜 이렇게 시끄러워. 아유 정신 없어. 그냥 집에나 갈래.’



이게 녀석의 마음 아니었을까 싶다.  녀석의 키가 1m가 되면, 그 시끌벅적한 곳에서도 잘 적응할 수 있을까. 어쨌거나, “쾅,쾅, 하.찌~ 바.지~” 하는 추억 속의 범퍼카가 더욱 그리워질 것 같다. 녀석이 다시 범퍼카를 타게 될 그날까지.





535eb4248916aae03aa8ca121e282f9c. » 외할아버지와 탔던 범퍼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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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규 기자
서른두살 차이 나는 아들과 마지못해 놀아‘주다가’ 이제는 함께 잘 놀고 있는 한겨레 미디어 전략 담당 기자. 부드럽지만 단호하고 친구 같지만 권위 있는 아빠가 되는 게 꿈이다. 3년 간의 외출을 끝내고 다시 베이비트리로 돌아왔다.
이메일 : dokbul@hani.co.kr      
블로그 : plug.hani.co.kr/dokb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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