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저러한 집안 사정으로 나의 유년기는 주로 할아버지와 함께한 시기였다. 많은 아이들의 손에 부모님 손이 잡혀있던 5~8살 무렵, 내 손엔 할아버지 손이 잡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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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같이 산보를 나갈 때가 그랬다. 물통 수레를 끌고서 동네 뒷산 약수터를 향하는 할아버지의 느릿한 걸음을 따라 나는 잰걸음을 종종거렸다. 동네 놀이터에 갈 때도, 목욕탕·이발소에 갈 때도 나는 할아버지와 함께였다. 등하굣길도 늘 그랬다. 밤잠을 청하면서도 할아버지한테 꼭 붙어 있었다. 젖을 뗀 지 얼마 안 된 때였을까, 잠결에 할아버지 가슴을 만지며 잠들던 기억이 난다.

할아버지는 술·담배를 즐기셨지만 건강하고, 또 근면하셨다. 아이 하나 돌보는 것 정도는 너끈히 해내실 만했다. 끼니도 문제가 없었다. 젊을 때 유학하면서 자취 생활을 오래 한 덕인지, 혼자서도 밥상을 척척 차리셨다. 할머니 계실 땐 그럴 일이 없었지만 할머니가 외출하면, 할아버지가 손수 차린 밥상 앞에 둘이 앉곤 했다.

물론 할아버지가 모든 걸 해줄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손잡은 팔을 흔들며 내가 신나게 부르던 노래를, 할아버지는 따라 부르지 못하셨다. 맨손체조로 체력은 단련됐지만, 스포츠에 능한 분은 아니셨다. 내가 공놀이가 하고 싶을 때 할아버지는 먼 발치서 바라만 보셨다. 나는 혼자서 형·누나들 주위를 쭈뼛거리다 물러서기 일쑤였다. 집에서 멀지 않은 해수욕장에서 처음으로 헤엄치는 데 성공했을 때, 할아버지는 백사장에 앉아 신문을 읽고 계셨다. 집에 가는 길에 아무리 자랑을 해도 시큰둥하셨다.

나는 내성적이었지만, 얌전하지만은 않은 아이였다. 뒷산에서 벌집을 잘못 건드리는 바람에 된통 쏘인 뒤 혼절한 적이 있었다. 깨어나보니 어두운 방안에 호랑이연고 냄새가 진동을 했다. 곁에서 내 온몸을 주무르던 할아버지가 ‘일어났나’하며 반기셨다. 동네 친구들이 함께 놀다가 나의 장난질에 여자아이가 얼굴에 상처를 입은 일이 있었다. 그 집 아줌마가 따지러 왔을 때, 할아버지는 며느리뻘 되는 이에게 용서를 구하며 몸둘 바를 몰라 하셨다.

그 무렵 할아버지가 몸소 나를 가르치셨던 기억은 없다. 몇 년 뒤에는 천자문과 붓글씨를 가르쳐주셨지만, 그땐 아직 너무 어렸다. 오히려 할아버지를 따라간 곳은 ‘비교육적’이기 일쑤였다. 저녁마다 할아버지를 찾아오라는 할머니의 성화에, 난 ‘할배요~’ 하며 동네 식당 몇 곳을 돌아다녔다. 해거름에 할아버지와 간소한 석양주를 나누던 아저씨들은 으레 나더러 이리 와 잠깐 앉으라 했지만, 나는 그 말을 한귀로 흘리며 할아버지를 모시고 집으로 돌아갔다.

직장을 은퇴하고 시장에 작은 가게를 내신 할아버지는TV를 많이 보셨다. 귀가 어두우셔서 온 집안이 쩌렁댈 정도로 볼륨을 키워야 했다. 군 출신 독재자였던 대통령이 나오면 혀를 차며 욕을 하셨다. 저녁 9시 땡 소리와 함께 늘 등장하는 그가 싫어서 9시 10분쯤에야 뉴스를 켜셨다. 어린이 프로그램이 드물었던 시절, 잠결에 보았던 뉴스 몇 꼭지는 할아버지의 반응과 더불어 어렴풋이 기억에 남아있다.

근래 할아버지·할머니들이 육아를 맡는 경우가 늘면서, 양육기관이 부모에게 많은 것을 요구하는 요즘식 육아에 능한 조부모도 많아졌다고 한다. 세살배기 아들을 둔 한 친구는 “학부모 모임에 가면, 세련된 할아버지·할머니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질문이나 배경지식이 웬만한 젊은 엄마들보다 훨씬 낫더라”고 했다. 다른 한편으론, 불가피하게 할아버지·할머니에게 아이를 맡겨놓고 육아 방식의 차이 때문에 전전긍긍하는 엄마들의 존재도 엄연한 현실이다. 손녀가 다니는 영어유치원의 통지문을 읽기 위해 영어를 배우기 시작하는 할머니의 등장은, 그 두 현실이 복합된 결과다.

내가 할아버지와 함께했던 시간은, 그것이 어떤 일상이었건, 지금의 나를 구성하는 귀중한 기억으로 남았다. 할아버지가 아니라 아빠였건 엄마였건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렇게 보면, 똑똑한 할머니를 부러워할 필요도, 영민한 엄마들에 주눅들 필요도 없다.

찬바람이 불고, 연인을 위한 초콜릿이 거리에 깔리자, 일곱해 전 이맘 때 영면하신 할아버지 생각이 났다.


** 이 글은 월간 육아잡지 <맘&앙팡>(디자인하우스) 2014년 1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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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외현 기자
아이 둘의 아빠인 <한겨레21> 기자. 21세기 인류에게 육아는 남녀 공통의 과제라고 믿는다. 육아휴직 등으로 나름 노력해봤지만 역시 혼자 가능한 일은 아니며, 사회적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걸 어렴풋하나마 알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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