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윤이네 하루 일과 철칙 중 하나는 밤 9시가 되면 불을 끈다는 거다. 녀석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어둠을 두려워했지만 “불을 계속 켜놓으면 지구가 아파한다”는 엄마의 말에 녀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불을 끄고 침대에 누운 뒤에는 엄마나 아빠의 ‘자동차 이야기 쇼’가 시작되고 녀석은 유쾌하게 잠이 든다.

 





e5b261e7e1ac18f35b9f19a6283b0313. » 저 이제 말 잘 해요~



며칠 전엔 자동차 이야기가 모두 끝나고 잠이 드는가 싶더니 갑자기 녀석이 깔깔거렸다. 

 

    “왜 웃어? 뭐가 재밌어?”

 “가쓰오부시가 재미셔.”

 

 말이 늘면서 녀석은 어감이 색다른 특정 낱말에 흥미를 보였다. 가끔씩 먹는 가락국수를 ‘가쓰오부시 우동’이라고 일러줬더니 그때부터 녀석은 “가쓰오부시~” 하면서 즐거워했다. 누운 자리에서 난 더 물어보았다.

 

 “가쓰오부시 말고 뭐가 또 재밌어?”

 “해피보이~”

 

 해피보이는 동네 병원의 의사선생님이 볼 때마다 싱글거리는 녀석에게 붙여준 애칭이었다. 이어서 녀석은 자신이 좋아하는 낱말을 쏟아냈다.

 

 “찌든 때~”

 욕실에서 샤워를 한 뒤 수건으로 몸을 닦고 로션을 바를 때 녀석은 드럼세탁기에 있는 글자를 하나하나 묻고 통으로 외워버렸다.  “울, 란제리, 삶음, 절약삶음, 급속...” 또박또박 읽다가 “찌든때”에서 빵 터지는 식이다. 그 말이 그렇게 재밌나 보다.

 

 또 물어보았다.

 “제일 재밌는 말이 뭐야?”

 “아부다비 성윤이 비비디 바비디 부우우우~”

 

 할머니·할아버지의 출국을 앞두고 녀석에게 가르쳐두었던 말. 녀석은 그 말을 수다맨처럼 빨리 구사했다. 신이 난 녀석은 보너스 트랙을 선사하는 것처럼 말을 이어갔다.

 

 “샬라카불라 메치카불라 비비디 바비디 부~”

 

 고무된 나는 내친김에 한 걸음 더 나아가보았다.

 

 “간장공장 공장장은 간 공장장이고, 된장공장 공장장은 공 공장장이다”

 “......”

 

 녀석은 갑자기 입을 닫았다. 음, 이건 어려운가 보다. 언젠가 따라하는 날이 있겠지.

 

 ‘한밤의 토크쇼’에는 호스트와 게스트가 따로 없다. 재밌는 말을 서로 던지고 놀면 된다. 하루는 녀석의 만담에 “얼씨구” 하면서 추임새를 넣어줬더니 녀석은 또 깔깔거렸다. 녀석은 “얼씨구”와 비슷한 “어쭈구리”로 되받았다.

 

 “어쭈구리는 어떻게 알았어?”

 “할머니랑 물놀이 하는데 할머니가 어쭈구리 그랬어.”

 

 특정한 낱말을 어떤 상황에서 들었는지 기억하고 있는 것도 신기하다. 그렇게 알게 된 “얼씨구 절씨구 어절씨구”를 녀석은 제 나름대로 발음한다.

 

 “어씨구, 아자씨구(어절씨구), 저나기구~.”

 “저나기구가 뭐야?”

 “저나기구는 잠잘 때 하는 거야.”

 “(뭔지 모르겠지만 여튼) 그런 거구나...”

 

 오늘 있었던 일, 자동차 이야기에 이어 말놀이까지 이어지는 ‘밤의 대화’는 참 재밌다. 녀석의 말문이 트이지 않아 내심 고민했던 옛날을 생각하면 격세지감을 느낀다. 막 던져도 대화가 된다. 말상대가 돼주는 녀석이 난 벌써부터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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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규 기자
서른두살 차이 나는 아들과 마지못해 놀아‘주다가’ 이제는 함께 잘 놀고 있는 한겨레 미디어 전략 담당 기자. 부드럽지만 단호하고 친구 같지만 권위 있는 아빠가 되는 게 꿈이다. 3년 간의 외출을 끝내고 다시 베이비트리로 돌아왔다.
이메일 : dokb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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