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윤이와 삼촌의 다정한 모습
지난 한 주, 성윤이의 주 양육자는 삼촌이었다. 설에 맞춰 사천으로 내려가신 장모님은 이사를 준비하기 위해 그곳에 더 머물러 계셔야 했기 때문이다. 아직 장가도 안 간 처남이 애를 잘 볼 수 있을까. 나의 그 시절 추억이 떠올라 살짝 걱정이 되었다.
대학교 2학년 때 쯤이었을 거다. 겨울이었는데 막내 누나가 집에 와서 조카 민주를 맡기고 일을 보러 나갔다. 그때 민주는 지금의 성윤이 정도 되는 아이였다. 나도 약속이 있어서 나가는 길에 누나를 만나 민주를 데려다주기로 했는데 낮잠에 빠져든 민주는 일어날 줄을 몰랐다. 약속 시간이 다가와 맘은 급한데 깨워도 깨워도 민주는 칭얼대기만 했다. 난 갑자기 치밀어 오르는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민주가 덮고 있던 이불을 방바닥에 패대기치며 소리 질렀다. “빨리 일어나라고!” 그러자 그 어린애가 갑자기 이등병처럼 발딱 일어나 옷을 주섬주섬 입더니 따라나설 준비를 하는 것 아닌가. 어린 마음에 얼마나 놀랐을까... 난 그때부터 민주만 보면 미안한 맘이 앞선다.
둘째 누나의 아들인 수하와도 애틋한 기억이 있다. 내가 대학 4학년 때쯤 이 녀석은 돌도 안 지난 갓난쟁이였는데, 잠버릇이 예민해 밤만 되면 울었다. 누나와 매형이 애를 재우느라 잠을 못잘 지경이라는 소식을 전해 듣고 위문 겸 누나 집엘 들렀다. 소문대로 녀석은 밤새 울었고, 난 기진맥진한 누나를 대신해 아침에 녀석과 놀아주기로 했다. 녀석은 그나마 흔들말을 타면 울음을 그쳤다. 흔들말은 바닥에서, 또는 스프링 위에 올려놓고 공중에서도 탈 수 있는 이층 구조였다. 단, 스프링 위에 올려놓은 뒤에는 스프링과 말이 분리되지 않도록 고리를 반드시 채워야 했다. 수하는 바닥에 있는 것보단 스프링 위의 흔들말을 더 좋아하기에 난 녀석을 허공 위의 흔들말 위에 앉혀주었다. 그런데 고리를 채워놓는 걸 깜빡하는 바람에 말등에 앉아 몸을 이리저리 흔들던 녀석은 그냥 말과 함께 1미터 아래로 곤두박질쳤다. 아이의 자지러지는 울음소리에 선잠을 자던 매형과 누나는 방에서 뛰어나왔고... 다행히 다치지는 않았지만 나는 아직도 그 일만 생각하면 조카 수하에게 미안하다.
내게 ‘조카’라는 의미는 이런 슬픈 사건의 기억으로만 가득하다. 기본적으로 총각삼촌은 아직 경험이 없어서 아이를 어떻게 다뤄야 할지 잘 모른다. 예뻐서 잘해주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구체적인 보살핌이나 의사소통 방법을 몰라 좋은 ‘관계맺기’가 쉽지 않다. 때로는 좋아하는 여자아이의 고무줄을 잘라먹고 ‘아이스케키’를 하는 초딩 남학생처럼 사랑의 감정을 틱틱대며 표출하는 바람에 오히려 조카들에게 ‘기피인물’로 찍히는 게 삼촌이다.
그래서 성윤이의 일주일을 걱정했지만 녀석은 삼촌과 의외로 평온한 일주일을 보냈다. 방안에서 간지럼 태우면서 함께 장난치고 추위가 좀 풀린 날에는 함께 뒷산에도 다녀오고 노트북 보면서 함께 놀고 그래도 심심하면 외할머니와 화상통화하고... 등등의 방법으로 총각삼촌은 ‘베이비시터’ 노릇을 충실히 해냈다. 그 일주일이 지나자 성윤이는 ‘따촌’이라며 삼촌을 부르기 시작했고, 삼촌이 주말에 1박2일로 여행을 다녀오자 녀석은 반갑게 맞이하며 안기기도 했다. “성윤이 보면 장가가고 싶다”던 처남이 드디어 성윤이와의 교감을 시작한 셈이다. 한편으로는, 할머니·할아버지부터 삼촌까지 어린이집 입소를 앞둔 녀석을 돌보기 위한 ‘가내 총동원 시스템’의 완성이라고 할 수 있겠다. 물론 ‘삼촌의 발견’은 의외의 소득이었다. 미안함만 가득한 내 총각삼촌 시절과 비교하면 처남은 정말 준비가 많이 된 아빠라 할 수 있겠다. ‘짬짬육아’ 지정 아빠교실 수료증이라도 주고 싶을 정도로 흐뭇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