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얼굴의 사나이






나는 모기가 싫다. 갑각류, 연체류, 설치류, 양치류, 갈조류 등등 이 세상 숨 쉬는 모든 것들 중에서 싫어하는 것이 무어냐고 묻는다면, 난 주저 없이 모기를 꼽겠다. 어려서부터 모기란 놈은 허락도 없이 내 피를 빨아간 뒤 참을 수 없는 피부의 가려움까지 안겨주었다. 30여년 동안 매년 여름철이면 모기에 시달리다보니, 나의 인성은 모기 앞에서 철저히 파괴되었다. 놈을 맨손으로 잡아 형체도 없이 짓이기는 건 그나마 점잖은 편이었다. 놈을 생포해서는, 침을 일단 제거하고 날개와 다리를 하나하나 떼어낸 뒤 양변기에 던져놓기도 했고, 매트매트 홈매트에 살짝 올려 훈제 처리를 하기도 했다. 나의 이런 행태를 지켜본 아내는 “생긴 거랑 다르게 모기한테는 잔인하다”며 혀를 내둘렀다.












모기의 반격








73a7f51959d1e5494db6fd3181d5c67e. » 토요일 아침 사진. 눈을 비빈 오후에는 더 부어올랐다.






그러나 복수는 복수를 부른다 했던가. 지난 수요일 아침 성윤이가 심하게 당했다. 목과 팔, 다리 등 10군데 가까이 모기에 뜯긴 것이다. 평소와 다르게 새벽녘 잠결에 심하게 짜증을 부린 것이 ‘아빠, 모기 잡아주세요’라는 호소였건만, 악몽을 꾸는 줄 알고 그냥 잠깐 안아주고 다시 재우는 우를 범했다.

잠들기 전, 따끔함을 느끼고 이미 모기 한 마리를 잡아 방심한 게 화근이었다. 그랬다. 당시 놈은 피를 보이지 않았었다. 진범은 따로 있었던 셈이다. 아침에서야 놈의 천인공노할 만행에 몸을 떨었지만 놈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 뒤였다. 범인, 아니 범충(犯蟲)이 사라진 뒤 남은 건 피해자 보호뿐. 일단 가려움을 진정시키는 연고약으로 새벽 내내 모기에 시달렸을 성윤이를 위무했다. 다행히 물린 부위는 가라앉았다.

그날 밤부터 한동안 소홀히 했던 순찰을 강화했고 그 결과 잠들기 전, 벽에 붙어있는 모기 한 마리를 책으로 때려잡았다. 핏자국이 맺혔다. 그렇다면 진범? 그렇다고 그놈이 간밤에 성윤이를 괴롭힌 진범이라고 확신할 증거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 어쨌든 성윤이에게는 영아용 모기 퇴치 스프레이를 듬뿍 발라주었다. 모기란 놈이 얼씬도 못하게.

그렇게 모기와의 혈투가 일단락된 줄 알았다. 그러나 모두가 잠든 평온한 토요일. 녀석이 울면서 나를 깨웠다. 새벽 6시30분. “성윤이 자다가 무서운 꿈 꿨어요?” 주섬주섬 일어나 녀석을 안고 마루로 데리고 나가 형광등 불을 켠 순간,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성윤이의 오른쪽 눈덩이가 마치 15회 판정패를 눈앞에 둔 권투 선수처럼 벌겋게 부어 있었다. 반대쪽 이마에도 혹이 하나 붙어있었다. 모기 퇴치액이 상대적으로 덜 발라진 얼굴 부위를 모기란 놈이 보란 듯이 정밀 타격한 모양새였다. 나는 끓어오르는 분노를 삭이지 못하고 세상모르고 자고 있는 애꿎은 아내까지 흔들어 깨웠다.

“일어나 봐. 지금 비상상황이야. 애가 이렇게 물렸는데 잠이 와?”












모기계에도 지능범이...








9ba3581e6636d550708927af7ba26580. » 수요일에 모기가 휩쓸고 지나간 흔적. 다행히 진정되었다.






요즘 우리 집 모기는 가장 어린 성윤이만 공격한다. 아내나 나나 모기를 잘 물리는 체질임에도, 성윤이와 함께 있을 때에는 거의 모기에 물리지 않는다. 3일 간격으로 성윤이가 그렇게 당하는 순간에도, 나는 모기가 방에 있다는 낌새를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 내 귀에서 윙윙거렸다면 난 즉시 일어나 불을 켜고 놈들을 격퇴했을 것이다. 놈들이 집주인의 행태를 꿰뚫고 있는 것일까? 우리 집 안방에서 죽어나간 수많은 조상들의 인생을 본보기 삼아 삶의 지혜를 터득한 것일까? 

어쨌든 그날 우리 부부는 대대적인 방역 작업에 들어갔다. 동네 시장에 나가기 전 에프킬라를 온 집안에 뿌렸다. 장을 다 보고 집안 환기를 위해 아내가 먼저 들어간 사이, 나는 성윤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지하주차장을 두 바퀴 돌았다. 그 사이에도 난 성윤이에게 겁대가리 없이 따라붙는 모기 한 마리를 잡았다. 또 엘리베이터 앞 로비 문틀 위에 앉아있던 모기도 폴짝 뛰어 손바닥으로 후려쳤다. 이놈들, 언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올지 모를 잠재적 침입자다.

오늘도 난 잠자리에 누운 성윤이의 몸에 모기 퇴치약을 발라주었고, 성윤이를 재우며 혹 모기는 없는지 온몸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대물림된 모기와의 악연, 그로 인한 혈투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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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규 기자
서른두살 차이 나는 아들과 마지못해 놀아‘주다가’ 이제는 함께 잘 놀고 있는 한겨레 미디어 전략 담당 기자. 부드럽지만 단호하고 친구 같지만 권위 있는 아빠가 되는 게 꿈이다. 3년 간의 외출을 끝내고 다시 베이비트리로 돌아왔다.
이메일 : dokb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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