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de0af65a7a717552c60c77b330ed0e0. » 뽀로로와 비율이 같은 우리 딸금요일 저녁에는 가족예배가 있는 날이다. 보통은 집에서 모이는데, 지난 주에는 수학학원을 운영하는 분이 계셔서 학원에서 모였다. 학원이라 그런지 아이들 놀거리가 많아서 좋았다. 아이들을 잘 놀려야 어른들이 제대로 수다를 떨 수 있다.

빔 프로젝터가 있는 방에는 뽀로로 상영관이 마련되었다. 큰 화면에 불까지 끄니, 제법 영화관스러워졌다. 방에 불을 끄니 아이들 반응이 제각각이다. 뽀로로는 좋지만, 깜깜한 게 무서운 22개월 예음이가 제일 먼저 밖으로 뛰어 나왔다. 뽀로로는 당연히 좋고, 깜깜한 것도 괜찮은데, 낯을 좀 가리는 서현이도 얼마 후 뛰어나와 엄마, 아빠를 찾았다. 뽀로로가 시시한 초등학교 아이들은 얼마 후 집단 이탈했다. 그 와중에 전혀 기척이 없는 절대 1인자가 있었으니, 바로 우리 딸이다.

이제 30개월, 친구들이 물려준 뽀로로 장난감 때문에 뽀로로라는 캐릭터는 알고 있었지만, 아직 움직이는 뽀로로를 본 적이 없다. 그러니, 뽀로로 비디오는 아마 신세계에 가까웠을 것이다. 꼼짝도 안 하고 너무 집중해서 보는 탓에 눈 좀 쉬게 하려는 요량으로 데리고 나왔더니, 눈이 퀭하고, 입에서는 ‘엄마, 크롱크롱! 포비포비!’ 라고 말하고 있었다. 뽀로로 친구들의 존재도 제대로 접수된 것이다.

이날 이후로 뽀로로 후유증이 아주 심각하다. 소율이가 아니라 내가 말이다. 이번 주에는 급하게 처리할 일들이 좀 있었다. 나는 원칙 같은 건 잘 없는 대충주의지만, 나름 몇 가지는 신경을 쓴다. 그 중 하나가 ‘아이랑 있을 때는 되도록 컴퓨터에서 작업하지 않는다’였다. 그래서 대부분 낮잠 잘 때나 밤에 재워놓고 일을 하고는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렇게 잘 때까지 기다릴 수 없는 긴급한 사안이었다. 혼자서 놀고 있을 때 기회를 봐서 슬그머니 컴퓨터를 켰다. 컴퓨터 켜지는 소리에 시선집중!

“소율아, 엄마 일 좀 할께. 빨리 끝낼께. 소율이는, 책 읽고 있어. 응?”

아주아주 애절한 마음을 담아서 잘 전달했기 때문일까, 의외로 순순히 그러라 한다.

“응. 엄마 일해 일해!”

고개까지 끄덕끄덕, 얼른 일하라는 손짓까지 하고는 보던 책으로 돌아간다. 한 30분 정도는 그렇게 일을 했다. 더 이상 책이 재미가 없는지 쪼르르 달려와 매달렸다.

‘아, 조금만 하면 되는데…’

잔머리를 굴려본다. 일단, 먹는 것으로 유혹!

“우리 야금야금, 사각사각 사과 먹을까?’

좋단다. 우리 딸이 제일 좋아하는 사과를 최대한 잘게 잘라서 대령했다. 일이십 분 정도 또 시간을 번다. 사과가 떨어지니 또 달려와 매달린다. 화제전환도 해보고, 온갖 유혹을 해보지만 이번에는 물러서지 않을 기세다. 결국 애를 안고 컴퓨터 앞에서 일을 한다. 제대로 될 리 없다. 마음 속에서는 계속 이렇게까지 해야하나? 하는 죄책감이 든다. 그래서 결국 최후의 보루, 뽀로로에 맡기고 일을 끝냈다.

이번 주 내내 뽀로로 유혹과의 싸움이었다. 일을 할 때는 물론이고, 조금 피곤하고 몸이 안 좋을 때도 뽀로로 얼굴이 아른거렸다. 이렇게 뽀토령 각하 앞에 무릎을 꿇게 되는 건가? 남편은 너무 장시간, 너무 자주 보는 것만 아니면, 급할 땐 틀어주자고 한다. 우리도 어릴 때 태권TV, 코난, 아톰, 밍키 같은 거 보면서 자랐고, 지금도 그 캐릭터에 대한 향수가 있듯이 소율이도 그런 게 좀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거다. 그러나 여전히 걱정이 되는 부분이 있다. 뽀로로가 나쁘다기보다 모든 게 뽀로로로 귀결되는 게 겁이 난다. 매일매일 뽀로로 틀어달라고 할까봐 걱정되고, 이제 모든 용품을 뽀로로로 사달라고 할까봐 겁이 난다. 너무 장시간 현란한 영상에 쉬지도 않고 집중해서 보는 것도 걱정이다. 이렇게 몇 번 하고 나니, 이럴 바에는 어린이집에 보내서 아이들이랑 뛰어놀게 하는 게 낫지 않을까? 조만간 '뽀로로에 대한 입장정리'가 필요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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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희
30대 중반, 뒤늦게 남편을 만났다. 덜컥 생긴 아기 덕분에 근사한 연애와 결혼식은 건너뛰고, 아이 아빠와 전격 육아공동체를 결성해 살고 있다. '부자 아빠=좋은 아빠', '육아=돈'이 되어버린 세상에 쥐뿔도 없으면서 아이를 만났고, 어쩔 수 없이 '돈 없이 아기 키우는 신세'가 되었다. 처음엔 돈이 없어 선택한 가난한 육아였지만, 신기하게도 그 경험을 통해 가족, 친구, 이웃과의 관계를 풍요롭게 만들어가고 있다. 더불어 몸의 본능적인 감각에 어렴풋이 눈을 뜨 고 있으며, 지구에 민폐를 덜 끼치는 생활, 마을공동체에 재미를 들여가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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