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ea0b7a5547a91fcdeb2a749bc4e20f3. » 서울중앙지검 잔디밭에서 달리기 한판. 항상 뒤에서 져주듯이 따라가야 녀석의 질주본능이 유지된다.계절이 바뀔 때마다 곤혹스러운 일이 하나 있다. 눈에 보이지 않게 늘어만 가는 뱃살 때문에 계절에 맞춰서 양복바지를 바꿔입을 때마다 호흡곤란 증세를 느낀다. 30대 중반의 나이... 기초대사량이 점점 떨어져 과잉된 영양분이 살로 간다는 ‘나잇살의 원리’를 철마다 체득하고 있는 중이다.


그래서 결심했다. 운동을 시작하기로. 거창하게 헬스클럽을 끊고 그럴 필요도 없이, 일찍 퇴근하는 날은 집앞 운동장을 뛰기로 했다. 운동장에 나가면 100명 중에 95명은 걷는다. 그러나 난 운동효과를 내기 위해서 500미터 트랙을 다섯 바퀴 돈다. 달리기를 건강관리의 방법으로 삼은 것은, 가장 손쉽게 할 수 있는 운동이라는 점도 작용했지만, 녀석이 질주본능에 힘입은 바도 크다.


지난 8월 대구에서 열린 세계육상대회를 티브이를 통해서 본 뒤 녀석은 세계적인 선수들의 동작을 따라하기 시작했다. 우사인 볼트의 폭풍질주를 따라 마루에서 연신 뜀박질을 해댔고, 도움닫기 뒤 폴짝 뛰어올라 바닥에 쓰러지는 멀리뛰기 동작도 따라했으며, 세단뛰기를 보고서는 깽깽이를 배웠다.


그뒤로 녀석은 나를 보면 “아빠, 우리 달리기 하자”하면서 달려들었고, 마루에서 또는 빌라 주차장에서 짧은 거리나마 달리기 시합을 했다. 아빠와 열 번 뛰면 여섯 번 이기고 네 번 지는 기묘한 경기 결과에 녀석은 더욱 열광했다. 9월 하순부터 시작된 나의 운동도 녀석과의 경합에서 힌트를 얻은 것이었다.


처음에는 혼자 운동장으로 나갔다가 몇번은 온 가족이 함께 나갔다. 내가 없는 날에 아내와 녀석이 나가서 뛰고 온 날도 있었다. 500미터 정도 되는 트랙 한 바퀴를 쉬지 않고 돌았다며 아내는 감탄했다. 그 다음에 나와 함께 나간 날에도 녀석은 그 짧은 다리로 ‘다다다다’ 거리며 운동장 돌다가 잠시 쉬고 출발해 한 바퀴를 금세 돌았다.


그 순간 2008년 3월1일의 마라톤이 생각났다. 회사에서 주최했던 3·1절 마라톤에 나는 별 준비도 없이 호기롭게 출전했고 10킬로미터를 1시간 안에 완주해 기념메달을 받았었다. 그때 나는 지금보다 홀쭉했고 아내는 배가 불룩했다. 출산 3개월 전이었다. 야외에서 숨을 헐떡거리며 달릴 수 있게 된 건, 3년7개월만이다.


그때는 혼자였지만, 이제는 셋이다. 게다가 시합도 가능하다. 함께 할 수 있는 운동이 축구에서 달리기로 하나 더 늘어난 셈이다. 게다가 맹렬하게 쫓아오는 녀석의 속도가 심상치 않다. 초등학교만 들어가도 단축 마라톤은 충분히 함께 완주할 수 있을 것 같다. 아버지와 아들이 숨이 턱밑까지 차오르는 상황에서 같은 곳을 바라보며 뛰고 또 뛰어 결승점을 함께 통과했을 때의 성취감이란 얼마나 감격적일까. 처음에는 내가 녀석의 손을 끌어줘야겠지만 언젠가는 훌쩍 커버린 녀석이 내 페이스에 맞춰서 아빠의 완주를 도울 날도 올 것이다. 생각만 해도 가슴이 두근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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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규 기자
서른두살 차이 나는 아들과 마지못해 놀아‘주다가’ 이제는 함께 잘 놀고 있는 한겨레 미디어 전략 담당 기자. 부드럽지만 단호하고 친구 같지만 권위 있는 아빠가 되는 게 꿈이다. 3년 간의 외출을 끝내고 다시 베이비트리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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