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762ddffeccfdb73829fa8df9af0904. » 취미는 독서, 였으면 얼마나 좋겠는가만 울 아기 취미는 발가락 빨기.












" 우리 애가 송아무개 같으면 어떡하지? 다 큰 어른들하고 같이 공부한다니까 친구도 없고 얼마나 외롭겠어?" 주말에 아이와 함께 빈둥대던 남편이 말한다. 송아무개는 티브이에도 여러번 등장했던, 8살에 대학에 들어갔다는 천재소년. 물을 먹던 나는 뿜을 뻔 하다가 가까스로 삼키며 대꾸했다. " 그런 건 짝짜꿍 같은 것부터 하고 나서 걱정해도 늦지 않아. 지난 주에 병원 가서 못봤어? 우리 애 막내동생처럼 보이던 아기가 도리도리 하던 거? 자~ 엄마랑 짝짜꿍해보자. 짝짜꿍~짝짜꿍~" 아이는 '누구세요?'하는 표정으로 멀뚱하게 엄마를 보면서 신고 있던 양말을 쑥 잡아빼서는 쭉쭉 빨고 있다. 나는 남편에게 괜히 힐난조로 덧붙였다. "보라구. 영재가 아니라 강아지랑 행동패턴이 유사하다구"






얼마 전 김미영 기자도 영재 육아에 대한 '백일몽(!)'을 썼지만 '혹시 우리 애가 영재가 아닐까'라는 기대, 그러니까 사실은 '우리 애가 영재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바람은 동서고금을 초월한 부모의 욕망인 것 같다. 물론 나 역시 뱃속에서부터 '건강하기만 해다오'기도를 하고 지금도 마치 선언처럼 "건강하기만 하면 되지, 뭘 더 바라나?"라고 말하고 다니긴 하지만 마음 속에 건강 플러스 알파에 대한 욕심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건 어쩔 수가 없다. 특히 8개월이 지나면서 아이가 말귀도 조금씩 알아듣고 뭔가 자기 의지로 이런 저런 행동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 문득문득 '혹시나'하는 바람이 들어가곤 한다.






얼마 전에는 식당에서 밥을 먹고 나오는데 아이가 식당 옆 완구점에서 천장에 떠 있는 풍선을 집으려고 애를 쓰길래 하나 사가지고 왔다. 방귀대장 뿡뿡이가 그려진 헬륨 풍선이었는데 얼마 뒤 아이를 안고 있다가 "뿡뿡이 어딨니?"물어보니 고개를 돌려 풍선을 보는 것이 아닌가. "어머머, 역시 남다르다니까" 신생아 때부터 '남다른 우리 손자론'을 펼쳐온 친정엄마가 완전 뿌듯해 한다. 신기해서 "엄마 어딨니?" 물어보니 다시 뿡뿡이 풍선을 본다. "할머니 어딨니?" 물어보니 다시 뿡뿡이 풍선을 본다. 그럼 그렇지. 요새 아이와 엄마와 나는 주로 이러고 있다. 혹시나와 역시나를 반복하면서 말이다.






이럴 때 할머니의 합리화는 코미디다. 하루에도 몇번씩 짝짜꿍과 죔죔을 가르쳐보지만 올곧게 거부하는 아이를 보면서 기다림에 지친 할머니는 "얘 그런 건 여자애들이나 하는 거야"툭 던진다. 참고로 우리 엄마는 남아선호사상이 지금보다 훨씬 심했던 60-70년대에 딸만 셋을 낳아 키우면서도 아들 부러운 적 한번 없었다던 나름 올드스쿨 페미니스트라고 말할 수 있는 양반인데 손자신비화를 위해서는 반세기 지켜온 신념까지 초개처럼 버려주신다.






이렇게 '혹시나'하는 마음이 있다보니 때때로 나도 모르게 나쁜 엄마 짓을 하고 있다. 짝짜꿍과 죔죔을 할 때 마다 '누구세요?'하는 표정으로 쳐다보기만 하는 아이한테 가끔씩 "야, 이것도 못하냐? 너만한 애들은 다 하는 거라구" 라며 부모가 아이에게 해서는 안된다는 표현 1위의 비교 핀잔을 한다. 또 엄마를 찾으며 우는 아이한테 "엄마~하고 부르면 가고, 안부르면 안 갈거야"라고 말하며 약을 올려서 애 데굴데굴 구르게 하는가 하면 "빠이빠이는 해줘야 어디 가서 8개월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겠니?"라고 애는 알아듣지도 못하는 강압적인 설득을 하곤 한다. 지난 번 칼럼에서 올바른 사랑을 줘야하네 어쩌구 쓴 내가 할 짓이 아닌 '비뚤어진 사랑'을 하고 있는 셈이다.






물론 나는 요새 요행하는 영재교육 바람의 허상을 비교적 잘 알고 있는 1인의 엄마라고 생각한다. 한두돌 지난 아이한테 한글이나 영어를 가르치는 모양새도 바람직하지 않아 보인다. 그렇게 키우고 싶지도 않고 극성 엄마로 살 부지런함도 없다. 그럼에도 우리애가 남보다 똑똑했으면 하는 기대까지 삭제하기는 쉽지가 않다. 그런 내 안의 속물성이나 헛된 욕망을 들여다보면서 때로는 '우리애는 조기교육을 시키지 않을 거니까 저 알아서 똑똑하기를 바라는 거'라고 해괴한 자기변명을 하기도 한다.






예전에 잠깐 언급한 적도 있지만 육아에서 아이와의 씨름보다 힘든 건 엄마 욕심과의 전쟁인 것 같다. 아이가 조금씩 크면서 이런 저런 성장의 표지를 드러낼 때마다 엄마의 기대는 더 부풀어 오르고 또 그 기대를 현실화 시키기 위해 또는 뒤처짐에 대한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많은 엄마들이 대한민국의 엄청난 교육시장에 풍덩 몸을 던진다. 아이가 어려서인지 아니면 아직은 팔랑귀가 뒤집어지지 않아서인지 아직은 0세부터 시작한다는 온갖 교재 홍보에도 꿋꿋이 버티고 있지만 오만군데에서 메아리치는 유혹의 말들에 넘어가지 않으려면 정말 긴장 바짝하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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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형 기자
투명하게 비칠 정도로 얇은 팔랑귀를 가지고 있는 주말섹션 팀장. 아이 키우는 데도 이말 저말에 혹해 ‘줏대 없는 극성엄마가 되지 않을까’, 우리 나이로 서른아홉이라는 ‘꽉 찬’ 나이에 아이를 낳아 나중에 학부모 회의라도 가서 할머니가 오셨냐는 소리라도 듣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서는 엄마이다. 그래서 아이의 자존심 유지를 위해(!) 아이에게 들어갈 교육비를 땡겨(?) 미리미리 피부 관리를 받는 게 낫지 않을까 목하 고민 중. 아이에게 좋은 것을 먹여주고 입혀주기 위해 정작 우는 아이는 내버려 두고 인터넷질 하는 늙다리 초보엄마다.
이메일 :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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