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박하게, 유난 떨지 말고, 주변에(특히 친정에) 민폐 끼치지 말고 한번 해보자! 아이를 낳기로 하고 난 뒤 나는 혼자 속으로 이렇게 결심을 했다. 얼마 입지도 못할테니 비싼 옷 사지 말고, 별로 필요하지도 않은 육아용품 욕심내지 말며, 태교니 조기교육이니 하는데 동하지 말자! 또한 딸 낳은 죄인도 아니고 친정 엄마 고생시키지 말자! 이렇게 다짐을 했다.


이것이 현실적으로 얼마나 이루기 어려운 소망인줄, 아이를 낳기 전에는 미처 몰랐다. 우선 아이 옷을 비롯한 육아용품 이야기를 해보자. 내 경우 "첫 앤데 뭘 그렇게까지 얻어 입히냐"는 말을 들을 정도로 주변의 여러 사람에게 아이 옷을 얻어두었다. 임부복도 선배들이 가져다준 것만로 때우려고 안간힘을 썼다. 아기 이불은 언니가 8년 전에 사서 쓰던 것을 가져왔고 아기 요람, 모빌, 수유쿠션, 회음부 방석, 젖병까지 모두 얻었다. 육아서도 모두 얻거나 선물받았다.

 

곤란이 320.JPG » 주변 사람들에게 얻어온 아이 옷을 깨끗이 빨아 널었다. 얼마 입지도 못할 옷, 전부 다 얻어 입히리라 마음 먹었지만 옷값이 안든다고 돈이 안드는 것이 절대 아니었음을 뒤늦게 알았다.
 

 

하지만 그러면 뭐하나. 돈은 밑도 끝도 없이 들었다. 유모차, 카시트와 같이 아기의 안전한 이동과 관계된 물품들은 수십만원을 호가했다. 아기 겉싸개 하나만도 십만원을 훌쩍 넘었다. 아기 목욕용품은 바스, 샴푸, 로션, 기저귀용 크림 등 끝도 없는데 손바닥만한게 3~4만원은 우습다. 거기에 ‘유기농’이란 말만 붙으면 가격은 훅 뛰어올랐다. 어어, 공기청정기 겸 가습기도 준비해야하고 아기 사진을 찍자니 카메라도 사야했다. 이거, 아기 세탁기에 천연 세제도 있다 하고…. 아직 분유며 기저귀는 사지도 않았는데…!


병원비는 정부에서 주는 고운맘 카드 ‘40만원’(올해 4월부터는 50만원)을 비웃기라도 하듯 많이 들었다. 길게는 한 달에 한 번, 짧게는 일주일에 한 번 가야하는 산부인과에서는 갈 때마다 초음파 사진을 찍어댔고 매번 몇만원씩 병원비가 나갔다. 무슨무슨 검사라도 하는 날에는 십만원을 훌쩍 넘기도 했다. 그나마 동네 산부인과를 택한 나는 사정이 나았다. 임신부 F4(이전 칼럼 참조) 중에서 나만 빼고 나머지는 모두 대형 산부인과를 택했는데 그들의 경우에는 초음파 비용부터 가족분만실 이용 비용까지 훨씬 더 많이 들었다. F4 중 2명이 35세 이상이어서 자동적으로 ‘고위험군’에 분류됐는데 이 경우 검사 항목이 늘어 돈이 더 들었다.


게다가 이런 것도 있다. 출산의 순간 간호사가 남편을 한쪽으로 데려가 물었다. "1인실로 하실거죠? 영양제는 뭘로 맞으실래요? 5만원, 9만원, 14만원짜리 있는데요." 진통하는 부인 옆에서 어떤 남편이 "영양제 필요없다" 할 수 있으랴. 비싼 영양제까지 꽂고서는 병원비를 계산해봤다. 무통주사도 맞지 않고 자연분만을 했지만 임신부터 출산까지 병원비는 100만원을 넘어섰다. 제왕절개라도 하면 훨씬 더 든다.


그나마 정부에서 아이의 필수 예방접종을 지원해주고 올해부터는 서울시에서 보건소 뿐 아니라 동네 소아과에서도 이를 완전 무료로 맞을 수 있게 했다기에 기대를 했다. 그런데 산부인과를 퇴원하고 첫번째 접종하는 예방주사인 BCG를 맞는 과정에서 어마어마하게 실망을 했다. 내가 살고 있는 마포구에는 예방접종을 무료로 할 수 있다는 지정의료기관이 60여개나 있었지만 이 중에 BCG를 무료로 맞춰주는 곳은 단 한 곳도 없었다. 병원들은 모두 "(무료인) 피내용 BCG는 접종하지 않는다"고 했다. 지정의료 기관임을 믿고 병원에 갔다가는 7만원짜리 경피용 BCG를 맞을 수밖에 없었다. 선택 예방접종까지 모두 맞히면 100만원이 넘는다고 한다.


곤란이 457.JPG » 곤란이가 얻은 베게를 베고 선물받은 옷을 입고 겉싸개를 덮은 채 요염하게 누워 카메라를 의식하고 있다. 소박하게 해보려해도 살 것은 계속 나타나고 돈은 계속 든다.

 

아아, 아직 산후조리원이나 산후도우미 이야기는 하지도 못했는데 벌써 글이 이렇게 길어졌다. ‘친정 엄마’에게 민폐끼치지 않겠다는 말이 곧 "돈을 쓰겠다"는 말일 줄 나는 몰랐다. 집 근처 산후조리원은 모두 2주 머무는데 200만원대~300만원대였다. 그나마 산후조리원 상담실장은 "강남은 500만원대 이상"이라며 "마포구니까 이 가격"이라 했다. 집으로 부르는 산후도우미는 업체마다 차이가 있긴 하지만 2주에 70만원 선이었다. 친정의 도움을 받지 않는 경우 대부분 산후조리원 2주+산후도우미 2주를 많이 선택했다.


아이의 출생신고를 하고나니 지자체에서 주는 ’출산축하금’이 입금됐다. 10만원. 웃음이 났다. 그나마 이게 어디냐. 마포구는 첫 아이에게 10만원이라도 주지만 이마저도 주지 않는 곳이 허다하다. 돈돈돈, 전부다 돈인 임신·출산 과정을 겪으며, 아이 키우는데는 돈이 더 든다는데, 한숨을 쉬며, 아, 이래서 사람들이 아이를 못낳는구나,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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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지선 기자
<한겨레21> 기획편집팀, 사회팀, <한겨레> 사회부 24시팀을 거쳐 현재 오피니언넷부에서 일하고 있다. “결혼 생각 없다”더니 한 눈에 반한 남자와 폭풍열애 5개월만에 결혼. 온갖 닭살 행각으로 “우리사랑 변치않아” 자랑하더니만 신혼여행부터 극렬 부부싸움 돌입. 남다른 철학이라도 있는양 “우리부부는 아이 없이 살 것”이라더니 결혼 5년만에 덜컥 임신. 노키드 부부’로 살아가려던 가련한 영혼들이 갑자기 아기를 갖게되면서 겪게되는 좌충우돌 스토리를 나누고자 한다.
이메일 : s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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