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fd1508db3da3a77b7f3fd4cd4eb7c8.누구나 인생의 황금기가 있다. 우리 엄마의 황금기는 결혼 후, 더 정확히는 두 살 터울로 우리 삼남매를 내리 낳고 나서부터라고 한다. 엄마 표현을 그대로 빌리자면 구름 속을 걷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나? 어머니(나한테는 외할머니)를 일찍 여의고 실질적인 소녀가장이 된 엄마는 아래로 다섯 명의 동생들의 엄마로, 학교보다는 논밭으로 출근도장을 찍는 농부로 처녀일 때부터 ‘워킹맘’으로 살았다. 그렇게 노처녀가 된 엄마에게도 볕들 날이 있었으니, 컨츄리걸에 딱 꽂힌 댄디보이(우리 아빠)와 만나 결혼하고, 당시 백 점짜리라던 <딸 하나, 아들 둘>을 낳고부터다. 이렇게 시작되는 스토리가 바로 우리 엄마 버전의 ‘구름 속의 산책’이다.



그때가 얼마나 좋았던지, 백 번(진짜로!) 도 넘게 들었던 엄마의 ‘구름 속의 산책’을 내가 요즘 실감한다. 한동안 낯선 사람한테는 쭈삣쭈삣하던 딸이 어느 순간 남녀노소, 지위고하, 동서남북 막론하고, 사람을 따른다. 그리고 웬만하면 방긋방긋 웃어주고, 먼저 다가가 손을 내밀고, 내키면 허그하고(껴안고), 필이 꽂히면 뽀뽀까지 하자고 달려든다. 집에 누가 오면, 연예인이 갑자기 집에 들이닥친 것처럼 ‘꺄아~’ 하면서 까무라친다(정말 그렇게 좋은가? 오버액션 대마왕!). 그러니 어딜 가든 귀여움을 독차지 한다. 가끔 가끔어른들이 ‘그렇게 웃음이 헤퍼서 어쩌누…’라고 하시는 분도 계시지만, 그 역시 ‘예쁘고 좋아서’ 하는 말로 들린다.



8df5650ff693b180264b9b5449a9bb63.요즘 아이의 상태(!)가 이렇다보니 길만 걸어가도 주목 받는다. 내 인생에 이렇게 주목 받아본 적이 있던가!... 아이의 후광을 이용한  연예인 놀이다. 지나가는 말로 ‘예쁘다, 귀엽다’ 하는 소리를 가끔 진짜로 듣고 우쭐한다. 가끔은 나에게 하는 소리로 착각하기까지!!!...;;;



어른들이 ‘고생한다, 큰 일하는 거다’라고 등을 두들겨주시면 내가 무슨 국가유공자라도 된 양 어깨가 펴진다. 아이와 지하철을 타면 더 재밌다. 아이의 옹알이와 웃음소리는 국가대표급 무표정, 어색, 긴장이 뒤섞인 지하철을  일순간에 무장해제시킨다. 그럴 때마다 내가 도시에 인간미를 불어넣는 퍼포먼스를 하는 것 같은, 그래서 주기적으로 지하철을 타줘야 할 것 같은 과대망상에 빠지기도 한다. 어쨌든, 아이를 어디든지 앞세우고 다니면 기분이 좋다. 이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인류애적 사랑’을 베풀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는 생각이 든다. 





cc3b3f895ad90d50705cdcfa14705ed4.그렇게 거침없이 세상 속으로 걸어가던 딸이 교실에 입성했다. 최근 우리 부부는 여러가지 재미난 교육을 함께 받고 있다. 지난달에는 버섯을 좋아하는 딸 때문에 버섯을 직접 기르려고 주말마다 여주까지 가서 버섯전문교육을 6주나 받았다. 물론 그럴 생각은 없었는데, 교수님과 수강생들의 적극적 권유와 배려로 아이도 함께 교실에 머무르게 되었다. 소리가 커지면, 남편이나 내가 데리고 나갔지만, 대부분 아이가 옹알옹알 하며 노는 소리는 아저씨들의 자양강장제와 각성제가 되어 주었다. 



어제부터 시작한 도시농부학교에도 온 가족이 출동했다. 남편은 수강생이면서 동시에 진행을 봐주기로 해서 자동적으로 아이는 내 차지가 되었다. 앞쪽과 거리를 두고 맨 뒷자리에 앉아서 지갑놀이(지갑에서 카드와 신분증, 명함을 넣었다 뺐다 하는 놀이)를 하고 있었다. 오늘따라 아이가 대단히 잘 협조해주고 있다는 생각에 기특했다. 아직 말을 못하는 아이가 엄마, 아빠, 띠띠꿍 정도를 낮은 소리로 반복하고 있었다. 그 소리를 듣고 앞쪽에서 어깨를 들썩이며 웃는 분도 있었고, 저녁 시간이라 졸렸는데 간간이 잡음을 내줘서 고맙다고 해주신 분도 있어서 또 ‘우리가 또 한 건(!) 하고 있구나!’ 뿌듯했다.  



65d0cc0c78c0b70b1732053af6c4f9bb.물론 내심으로는 아이가 언제 어떻게 난동(!)을 피울지 몰라 아슬아슬한 균형을 맞춰가며 강의를 듣고 있는데, 갑자기 프로그램 책임자가 다가와서 아이폰을 들이밀었다. 웬 난데 없는 아이폰 자랑? 그런데 거기에는 <아이의 소리 때문에 강의에 집중이 안 됩니다!!!> 라고 적혀 있었고, 나는 문자를 다 읽기도  전에 거의 반사적으로 문 밖으로 뛰쳐나왔다. 아차! 싶었던 거다. 나름 자숙하고 있던 아이는 엄마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웅얼웅얼 볼륨을 높이기 시작했고, 빈 건물, 빈 복도에 울리기 시작했다. 아예 건물 밖으로 나와 버렸다. 신발은 교실 안에 있고, 유모차는 차에 있는데, 차 열쇠는 교실 안의 남편에게 있었다. 그러나 차마 다시 강의실로 들어갈 수 없었다. 아이를 재우고 들어가야겠다는 생각으로 아이를 업고 자장가를 부르며 산책을 하는데, 아이는 더 똘망똘망해질 뿐이었다. 점점 멀리 걸어가고 있는데, 갑자기 장마비가 ‘쏴아~’ 하고 쏟아지는 게 아닌가? 아이를 업고 전속력으로 질주했다. 옷, 아니 마음이 흠뻑 젖었다. 한달 전 없애버린 휴대폰이 아쉬운 첫번째 순간이었다.



연예인 놀이, 구름 속의 산책 좋아하다 굴욕 당한 기분이랄까? 그 분으로서는 당연한 요구인데도, 야속했다. 이 사연을 듣고 많은 분들이 ‘예민한 분’이라며 ‘기분 상하지 말라’고 위로를 해주었지만, 뭘 배우러 와서 방해 받기 싫은 건 당연하다. 프로그램 책임자는 이왕 시작했으니 같이 듣고, 그 분에게 양해를 구해보겠다고 했으나, 비단 그분의 문제일까? 말하지만 않았을 뿐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까? 소심해졌고, 괜한 민폐가 되고 싶지 않아서 거절했다. 당장 다음주부터 어떻게 하지? 취소해야 하나? 아직은 뾰족한 수가 없다. 분명한 건 ‘구름 속의 산책’은 이제 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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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희
30대 중반, 뒤늦게 남편을 만났다. 덜컥 생긴 아기 덕분에 근사한 연애와 결혼식은 건너뛰고, 아이 아빠와 전격 육아공동체를 결성해 살고 있다. '부자 아빠=좋은 아빠', '육아=돈'이 되어버린 세상에 쥐뿔도 없으면서 아이를 만났고, 어쩔 수 없이 '돈 없이 아기 키우는 신세'가 되었다. 처음엔 돈이 없어 선택한 가난한 육아였지만, 신기하게도 그 경험을 통해 가족, 친구, 이웃과의 관계를 풍요롭게 만들어가고 있다. 더불어 몸의 본능적인 감각에 어렴풋이 눈을 뜨 고 있으며, 지구에 민폐를 덜 끼치는 생활, 마을공동체에 재미를 들여가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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