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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되면 심장이 수십 개는 되어야 한다.

자식 키우다보면 심장 내려앉는 일이 어디 한 두번인가 말이다.



특히 육아 경험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키우게 되는 첫 아이 때는 자지러지게 울기만 하면

가슴이 쿵 무너져 내리곤 했다. 열이 38도만 넘어도 침이 마르고, 내가 실수해서 몸에

생채기 하나 나기라도 하면 미안하고 맘이 아파서 같이 울었다.

대형마트 주차장에서 나오는 차에 치인 큰 아이를 업고 병원으로 달려갔을 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오금이

저려온다. 놀이터에서 1미터도 넘는 미끄럼틀에서 떨어졌을 때는 또 어떤가. 엑스레이 상으로는

이상이 없다는 아이가 일주일간 다리를 절룩거리며 다닐 때는 더 큰 병원으로 가봐야 하는 것 아닌지

매일 마음 졸이며 지켜보곤 했었다.



둘째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자꾸 눈에 눈곱이 끼고 충혈되어 안과에 가보니 양쪽 눈물샘이

막혀 있다는 얘기를 들었들 때도 심장이 쿵 내려 앉았다. 알고보니 흔한 증상이었지만 11개월에

자연스럽게 뚫릴 때까지 내내 맘 졸이며 지냈다. 급성 중이염으로 고막이 터져 흘러 내려왔다는 것을

알았을 때도 하늘이 노랬었다. 고막이 터져도 다시 재생된다는 걸 몰랐었기 때문이다.

두 돌 무렵 코를 만지며 아픈 표정을 짓는 아이를 달래어 세게 풀게 했더니 한 쪽 코 안에서

장난감 비비탄 총알 네 개가 한꺼번에 나왔을 때도 기겁을 했었다.

두 아이 모두 유별나게 개구장이도 아니었고, 어지간히 순하게 자라주었는데도 불구하고

정말이지 간 떨어지고 심장 오그라든 이야기들을 늘어 놓기 시작하면 끝도 없을 것이다.



막내도 마찬가지다.

14개월 동안 키워오면서 숱하게 가슴 조이는 일이 있었다.

태어난 그날 밤 밤새 자지러지게 우는 아이를, 출산 후 하혈이 심해 절대 안정을 해야 하는

몸으로 안고 밤을 새웠었다. 도무지 진정이 되지 않는 절박하고 끈질긴 울음에 아이를 낳자마자

심장이 말라 붙는 것 같았다.

4개월 때 왼쪽 팔꿈치 뼈가 탈골이 되어 새벽에 응급실로 달려갔을 때도 놀랐었고, 5개월 때

중이염이 심하게 와서 의사에게 온갖 무서운 말을 다 들었을 때에도 가슴이 내려 앉았다.

기침을 하다가 토하고 우는 아이를 안고 서성이며 밤을  새는 날도 무서웠다. 더 아플까봐,

더 나빠질까봐 마음은 자꾸 불안해지는 것이다.

막내는 특히 입에 온갖 물건을 넣기를 좋아하는데, 친정에 갔을 때 친정 엄마가 낮은 곳에 두었던

치간 칫솔을 빨다가 날카로운 끝 부분이 부러지면서 목에 걸려 몇 번이고 토한 끝에 나왔을 때

얼마나 놀랐던지... 최근에는 바둑알을 토하기도 해서 또 한번 가슴을 쓸어 내리게 했다.



막내를 낳고 특히나 잊을 수 없는 일이 ‘선천성 대사 이상 검사’였다.

아이를 집에서 낳았기 때문에 일주일 정도 지난 후에 조산원 원장님이 집에 오셔서 아이 발끝을

침으로 찔러 피를 내어 검사지에 묻혀 가셨는데, 얼마 후에 ‘갈락토오스 혈증’ 수치가 정상보다

두 배 이상 높게 나와서 재검사를 해야 한다는 연락이 왔었다.

그때까지 우리 부부는 그런 병명이 있다는 것도 알지 못했었다. 먼저 키운 두 아이 모두

아무 이상이 없었기 때문에 그저 아이 낳으면 으례 하는 검사려니... 생각만 하고 있었던 것이다.

“만약 갈락토오스 혈증이면 어떻게 되는데요?”' 물었더니

“당장 엄마젖부터 끊어야지. 탄수화물 제거된 식단으로 식이요법 해야 하고...” 하시는 것이다.



재검사를 위해 부천의 조산원으로 아이를 데리고 가야 했다. 그게 막내와의 첫 외출이었다.

설레는 첫 나들이가 혹시 모를 경우를 위한 재검사 때문인 것이 가슴 아팠다. 아무것도 모르고

품 안에서 포근히 잠들어 있는 아이를 보며 속으로 울음을 삼켰다.

새로 피를 뽑고 열흘 후에 결과가 나온다고 했다.

그 열흘을 지내는 일은 내 평생 가장 강한 인내와 조바심으로부터 견뎌야 했던 시간이었다.

인터넷을 통해 갈락토오스 혈증을 알아보았더니 무섭고 두려운 내용들이 너무 많았다.

함께 태어난 쌍둥이 가운데 한 아이가 갈락토오스 혈증을 앓고 있어 음식을 맘 놓고 먹이지 못하는

딱한 사연의 가족 이야기도 있었다.

그 열흘 동안에도 이룸이는 매일 너무나 맛있게 내 젖을 빨며 크고 있었다.

이렇게 좋아하는 엄마젖을 먹을 수 없다면,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매일 기도했다.

재검에서 정상이라고 나온다면 평생 더 욕심 부리지 않고 살겠노라고 다짐하면서

기도하고 또 기도 했었다.



당시 열흘 뒤에는 첫 아이의 학교 입학식이 예정돼 있었다.

잠든 막내를 차 안에 계신 친정 엄마에게 맡기고 큰 아이 손을 잡고 운동장에 서서 소망을 담은

풍선을 하늘 높이 띄우고 있을 때 조산원 원장님께 전화를 받았다.

“재검에서 ‘정상’이 나왔어요.”

그 말을 들으면서 나는 울었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를 외치며 눈물을 흘렸다.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았다. 두 아이 키우면서 어지간히 단련되었던 내 심장이 열흘 내내 녹아 내렸다가

그날 다시 돋아나는 것 같았다.



사실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닐 것이다.

희귀병에 걸린 아이를 돌보는 부모도 있고, 수 백배 더 무섭고 끔찍하고 가슴 아픈 일을 겪는

부모들이 세상에는 너무나 많다. 아주 작은 일이라도 이렇게 가슴이 조여드는 일을 겪고 나면

그저 아이가 안전하고 건강하게 자라주는 것이 제일 큰 소망이 된다.

이제 걸음마를 하며 아장 아장 내게 걸어오는 예쁘게 자란 이룸이를 보고 있으면

여전히 내 젖을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어린 딸이 말할 수 없이 소중하고 고맙기만 하다.



엄마이기 때문에 하루에도 몇 번씩, 어쩌면 살아가는 내내 자식 앞에서는 가슴 졸이게 될지 모르지만

가슴을 쓸어내릴 때마다 허튼 욕심을 비우게 된다. 더 특별하고, 더 뛰어나고, 더 잘하게 되기를

바라기보다 늘 안전하고, 온전하게 자라나고, 건강하게 살아가는 것을 가장 큰 가치로 여기게

되는 것이다.



세 아이 모두 한 주 동안 별 탈 없이 건강하게 지냈다.

일주일간 출장갔던 남편도 다시 우리 곁에 돌아와 있다.

가족 모두 건강하고 함께 있으니 이것으로 족하다.

지진과 전쟁으로 얼룩진 날들 가운데 우리가 누리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인지

새겨보고 또 새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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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순화
서른 둘에 결혼, 아이를 가지면서 직장 대신 육아를 선택했다. 산업화된 출산 문화가 싫어 첫째인 아들은 조산원에서, 둘째와 셋째 딸은 집에서 낳았다. 돈이 많이 들어서, 육아가 어려워서 아이를 많이 낳을 수 없다는 엄마들의 생각에 열심히 도전 중이다. 집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경험이 주는 가치, 병원과 예방접종에 의존하지 않고 건강하게 아이를 키우는 일, 사교육에 의존하기보다는 아이와 더불어 세상을 배워가는 일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고 있다. 계간 <공동육아>와 <민들레> 잡지에도 글을 쓰고 있다.
이메일 : don3123@naver.com      
블로그 : http://plug.hani.co.kr/don3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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