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발 룰루.jpg » 북한산 바윗길을 네발로 기어올라가는 앙큼군.

 

진달래 너머.JPG » 산중턱까지 진달래꽃이 점점이 피어 있다. 

 

 

 

 

잘한다. 잘한다. 네발로 자알 올라가네.”

북한산 중턱쯤 올랐을까? 드디어 칭찬 하나를 먹었다. 얼마나 기다렸던가. 나도 병관이처럼 칭찬을 먹겠다는 일념으로 엄마아빠를 따라나선 산행이었다. 칭찬을 들은 앙큼이는 궁둥이를 더욱 쑥 빼고 네발 동물처럼 바윗돌을 분주히 기어올랐다.


몇살이야? 8?” “7살이에요.” 안그런척 우쭐한 표정을 감췄다. “대단하네, 최고야 최고!” 가파른 비탈에서 바위를 타던 앙큼이는 칭찬을 또 먹었다. 젊은 할아버지였다. 옆에 있던 일행이 이 친구는 첫 손자가 네 살이라고 했다. 칭찬 뒷말에는 우리 손자랑 조만간 함께 산에 와야지하는 결심이 따라붙을 것 같았다.


씩씩하네.” “저 꼬마 좀 봐.” “잘 올라오네.” “산에는 어릴 때부터 다녀야 돼.” “힘내!” 봉우리가 가까워질수록 칭찬은 수많은 등산객의 입에서 나와 봄꽃처럼 흩어져 앙큼이의 귀를 커다랗게 만들었다. 칭찬의 힘은 투정도 쏙 들어가게 했다. 심지어 내달리듯 정상까지 올라갔다.


처음에는 반신반의했다. 구기동에서 비봉으로 오르는 길은 길진 않지만 북한산 꼭대기로 바로 치고 오르는 길이라 아이의 인내심으로는 쉽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대여섯살 때 두시간 도는 서대문 안산 둘레길을 걸을 때도 하산길 절반은 업고 내려와야 했다. 북한산은 첫 도전이다. 아이의 미약한 끈기에다 도중에 투정 부릴 것까지 감안하면 단단히 긴장하지 않을 수 없는 산행이다. 병관이가 아니었으면 엄두 못냈을지 모른다.

 

칭찬 먹으러 가요 표지.jpg » <칭찬 먹으러 가요> 표지. 병관이는 <칭찬 먹으러 가요>(고대영 글, 김영진 그림, 길벗어린이)의 주인공이다. 초등학생 누나 지원이와 병관이 이야기는 아이 있는 어느 집을 대입해도 아하 우리집 얘기네할 만큼 리얼리티가 살아 있다. 동화 속의 비현실적인 집이 아니라 서울 실제 공간과 아파트 살이의 현실을 그대로 그림책에 옮겨놓았다. 고집 피우고 거짓말 하고 손톱 깨물고 카트를 서로 타려 하는 소소한 일상의 에피소드를 코믹하고도 따듯하게 갈무리하는 이야기맛이 좋다.

 

무엇보다 김영진 작가의 그림의 세밀함이 혀를 내두를 만하다. 버스 번호와 노선표, 지하철역 안의 풍경, 집안 세간들, 마트의 세일 장면 등을 그려내는 솜씨가 실사 저리가라다. 책을 보는 아이들은 그림의 구석구석을 살피기도 바쁘다. 그렇다고 현실만이 빼곡하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병관이의 기분에 따라 등장하는 상상의 판타지가 한가득 펼쳐지기도 한다. 앙큼이도 현실 묘사를 좋아하지만 판타지와 오버랩되는 그림을 특히 좋아한다. 시무룩하다 급 방긋하는 과장된 표정, 칭찬을 들을 때는 귀가 엄청나게 커진다던지 맛있는 걸 먹을 때는 쫙 벌린 입밖에 안보이는 개구진 얼굴이 병관이를 아주 귀엽고도 만만한 친구로 여기게끔 한다. 그림책 장마다 책장이나 거실 바닥에 숨어 병관의 마음에 장단을 맞춰주는 조그만 캐릭터 친구들(펭귄, 코끼리, 양 등)을 숨은그림 찾듯 찾아내는 것도 큰 재미거리다.

 

얼마전 오랜만에 들른 동네 도서관에서 월척을 건졌다. 새로 구입한 책을 꽂아놓은 책꽂이에 지원이와 병관이 시리즈 몇권이 나란히 꽂혀 있었다. 사람들이 계속 빌려가는 바람에 목록에서만 봤지 책 구경은 못했었다. 그만큼 도서관에 꽂히기 바쁘게 빌려가는 책이 지원이와 병관이시리즈다.

 <지하철을 타고서> <용돈 주세요> <손톱 깨물기> <두발자전거 배우기> <거짓말> <집안 치우기> <먹는 이야기> <칭찬 먹으러 가요> <싸워도 돼요?>

 이중에 어떤 게 제일 재밌어?”

 모두 다 엄청, 엄청엄청 재밌어.”

밤마다 불끄기 전 무서운 생각이 난다며 이불 속으로 쏙 들어가 공벌레가 되곤 하는 앙큼군에게 지원이와 병관이 시리즈는 무서운 괴물세계를 잊게 하는 재미나는 현실 세계다. “무서움아 사라져라 얍!”

 

2006년 첫 이야기 <지하철을 타고서>로 어린이들의 격한 공감을 산 지원이 병관이 시리즈는 9권까지 나왔다. <칭찬 먹으러 가요>8번째 이야기로 유치원생이었던 병관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한 8살로 나온다. 병관이가 자랐거나 말거나 앙큼이가 네 살 때부터 도서관에서 만난 병관이는 친구다. 은근히 병관이에게 경쟁심도 느낀다. 5편인 <거짓말>에선 태권도 다니는 병관이가 나오는데, 지원이 누나보다 높은 빨간 띠를 두르고 있다. 얼마 전 태권도를 시작한 앙큼이는 생초보 흰띠다. 태권도복을 받은 날 도복을 입고 잘 정도로 너무나 좋아하는 태권도를 병관이는 잘한다. 병관이의 발차기 솜씨를 바라보는 표정은 흰띠를 두른 지원이가 도장에서만큼은 자신보다 잘하는 병관이를 바라보는 부러움의 시선과 똑같았다.

 

 

회전_20160402_135826.jpg » 능선에 올라 산바람을 느끼고 있는 앙큼군.  <칭찬 먹으러 가요>는 아빠 생일 선물로 아빠의 소원을 이뤄주겠다는 백지수표를 위임한 지원 병관이가 아빠의 소원대로 북한산에 함께 가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버스 차창밖으로 펼쳐지는 가을산의 아름다움이 눈길을 잡는다. 그런데 병관이는 산 입구에서부터 고기를 먹고 가자고 호들갑을 떤다. 하산하는 아저씨들이 잇달아 칭찬하자 병관이 귀가 엄청나게 커진다. 앙큼이가 병관이 귀를 잡아당기려 할 만큼 그 모습이 우스꽝스럽다. 계곡 물가에서 뛰노는 지원병관의 예쁜 모습에 빨려드는 나와 달리, 앙큼이는 힘든 등산에 무지하게 화가 나서 돌에 걸터앉아 있는 장면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눈이 찢어져 올라간 두 얼굴 뒤로 아저씨들의 칭찬소리가 들렸다. 귀가 또 커졌다. 칭찬에 탄력받은 병관이는 오버하며 오르막길을 속도 내며 쌩 올라간다. 백운대 앞 험한 바위 앞에서도 칭찬 듣고 우쭐우쭐. 정상의 태극기 바위 위에서 사진 찍고 내려오는 아이들의 기분은 날아갈 듯하다. 하산길, 색종이가 흩날리고 따라다니던 캐릭터들이 축하해주는 그림은 누가 봐도 흐뭇하다. 칭찬으로 커진 귀와 정상에서의 여운을 이토록 잘 표현할 수가 있을까. 색종이가 단풍잎으로, 판타지가 현실로 바뀐다. 

 

등산지도를 보고는 병관이가 오른 제일 높은 봉우리는 어디냐고 물었다. “저기 백운대가 있네.” “병관이는 우이동길로 해서 저쪽으로 올라갔고 우리는 반대편에서 올라가는 거야.” 앙큼이는 병관이가 갔던 길과 반대편 사면이란 걸 서운해했다. “병관이처럼 가을에도 와 보자.” 앙큼군의 첫 봄산행은 성공적이었다. “엄마 이 꽃 좀 봐. 진짜 예쁘다. 이거 찍어놔.” 기어가 오르며 본 바위틈 노란꽃에 감탄했다. 나중에 사진을 본 꽃박사 조홍섭 환경전문기자가 노란제비꽃이라고 알려줬다. “여기가 우리집이었으면 좋겠다. 재밌어요. 다음에 또 와요.” 정상 가까이서 물 한모금을 마시던 앙큼이는 칭찬 먹는 북한산 놀이터 바위타기가 세상에서 제일 재밌는 놀이라는듯 말했다.

 

 노란제비꽃.jpg아차, 실은 이번 산행은 앙큼이의 두 번째 북한산행이다. 예정일이 지나도 세상에 나올 뜻이 없는 앙큼군의 출산을 독촉하는 만삭등산을 했었다. 능선까지 이르기에 제법 긴 코스인 대남문 코스로 올라갔다. 추적추적 내리는 가을비를 맞으며 대남문에 이르니, 만삭의 임산부를 보고 깜짝 놀란 산행꾼들이 대단하다고 박수를 쳐주었다. 칭찬소리가 뱃속 안까지 퍼졌나? 생각해보니 모태 산꾼앙큼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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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귀순
일찌감치 결혼했으나, 아이 없이 지낸지 13년. ‘룰루나 행성’에서 꽃을 키우며 지내던 앙큼군은 우주 폭풍을 만나 어느날 지구별로 떨어졌다. 아이가 없는 집을 둘러보다 우리집으로 왔다. 어딜 가나 엄마들한테 ‘언니’라는 호칭으로 통하는 ‘늙은 엄마’이지만, 앙큼군은 “엄마가 우리 엄마여서 다행이야”를 달고 사는 여섯 살 소년으로 자랐다. 곰팅맘은 현재 한겨레 편집 기자이며, 책과 지성 섹션에 어린이청소년 책을 소개하는 기사도 쓰고 있다.
이메일 : gskw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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