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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우리집 닭들이 알을 낳기 시작했다.

남편이 들고 온 작은 알 하나를 보고 있자니, 알을 얻기까지 지나온 몇 달의 일들이 감개무량하게

스쳐 지나간다.



마당 있는 집을 얻을 때만 해도 개는 길러보고 싶었지만 닭까지는 생각하지 못했었다.

닭을 기르자는 것은 순전히 남편의 생각이었다.

아이들도 어리니까 병아리 몇 마리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은 헀었지만, 남편이 닭장도 안 지어 놓고

지방 출장에서 돌아오는 길에 45일 된 중병아리 열 마리를 덜컥 집안에 풀어 놓았을 때는

암담하기도 했었다.

어지간히 큰 종이 상자를 구해 그 안에 병아리들을 넣어 놓았지만 힘 좋은 토종닭 중병아리들은

무서운 기세로 먹이를 먹고, 똥을 싸대기 시작했다. 거실에선 금방 닭똥 냄새가 진동했다.

아이들은 아랑곳 않고 병아리들을 꺼내 놀곤 했다. 큰 아이는 매나 솔개처럼 길들이겠다고

병아리들을 꺼내 제 팔뚝에 올려 놓고 집안을 누비기 시작했다. 상자를 벗어난 병아리들은

이따금 퍼덕거리며 집안을 날기도 했다. 아무곳에나 똥을 싸는 것은 당연했다.

나는 곧 비명을 자르고 병아리들을 상자 않에서 꺼내어 노는 것을 금지했다.

그러나 힘센 중병아리들은 곧 종이상자를 쪼아 뚫고 나다니기 시작했다.

먹이나 물을 주기 위해서 그물을 걷는 그 사이에 퍼덕거리며 도망가서 집안을 돌아다니기도 했다.

닭들이 아무데나 똥을 싸 놓으면 세 아이가 그 똥을 밟아가며 온 집안을 누볐다.

온 집안에서 닦아도 닦아도 닭똥 냄새가 났다.

병아리들만 들여 놓으면 금방 닭장을 지어주겠다던 남편은 일이 바빠서 차일 피일 미루기만 하는데

나는 그 상태로 2주일을 지내면서 더 이상 못 참겠다고 남편과 대판 싸웠다.

남편은 2층 거실로 닭들을 옮겼으나 2층 거실이 난장판이 되는 것은 금방이었다. 한번 더 남편과

싸우고 닭들은 2층 베란다로 옮겨졌다. 베란다도 금방 닭똥 천지가 되었다.

그리고 나서야 남편은 닭장을 짓기 시작했다.

나무로 대충 집 모양을 올리고 둘레에 철근을 박아 담장을 만들고 나서 닭장을 가로질러 PVC호스를

구부려 지붕을 만들고 그 위를 그물로 덮었다. 문을 해 달고 비를 피할 수 있는 비닐까지

치는데 꼬박 2주가 걸렸다.

남편이 집을 수리하는 재주도 있고, 이런 저런 만들기를 잘 한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끙끙거리며 온갖 공구들을 동원해서 닭장을 만들어 내는 모습은 내게도 참 대단하고 새로운

모습이었다.

마침내 닭장을 만들어 낸 남편은 마치 전원주택이라도 자기 손으로 지은 사람처럼 으쓱으쓱

스스로를 대견해 했다.



뒷뜰에 닭장이 생기고 나니 수시로 아이들과 들러서 닭들에게 풀도 뜯어 주고 닭장 안에 들어가

닭들과 놀기도 했다.

그러나...

길고 지루했던 장마기간 동안엔 숨 막히는 닭똥 냄새로 머리가 다 아플 지경이었다.

닭장에는 물이 닿지 않아야 한다는데, 닭똥은 물만 닿으면 지독한 냄새를 풍긴다는데

지붕 일부만 비닐로 가린 닭장이라 비를 완전하게 차단할 수가 없었다.

아침에 일어나 창문만 열면 머리가 다 아플 정도로 지독한 닭똥 냄새를 하루 종일 맡다보니

알이고 뭐고 닭장을 치웠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어쩌다 닭똥 냄새를 맡는다면 고향의 냄새니, 정겨운 시골 냄새니 하며 좋아하겠지만

하루 종일 닭똥 냄새를 맡으며 지내는 일은 견디기 힘든 고역이었다.

게다가 닭똥으로 질척한 닭장 안엔 이내 파리와 날벌레들이 우글거리기 시작했다.

모이를 주러 그 안에 발을 디뎠다가 사방에서 달려드는 날벌레들에 기겁을 한 이후로

닭장 안엔 얼씬도 안 했다.

닭을 기르자는 말을 처음 한 죄로 남편이 닭들 수발을 전담하게 되었다.

알은 언제나 낳는 것인지 소식도 없는데 파리떼가 꼬여 들고 냄새까지 심해져서 견디기 어려운데

얼마 전부터는 새벽부터 우렁차게 ‘꼬끼오~’ 하며 울어대는 닭들 때문에 잠까지 설치게 되었다.



아아아...

닭은 왜 기르자고 해서 이 고생을 사서 하나... 남편이 원망스럽고 닭들이 미워 죽겠는데

남편이 흥분해서 들고 온 따스한 알을 보는 순간 그간의 원망들이 한순간에 날아가 버렸다.

안그래도 유정란 값이 무지하게 올라서 걱정을 하고 있던 참이었다.

열 마리 닭 중에 암탉이 여섯 마리인데 한 마리가 이틀에 한개 꼴로 알을 낳는다고 하니

매일 세 개 정도의 알들을 얻게 되었다. 하루에 세 개라도 그게 어디냐 싶었다.

매일 매일 달걀을 먹는 것도 아니니까 이틀만 모아도 여섯 개, 삼일이면 아홉 개... 우와...

자고 나면 또 세 개라... 이러다가 머지 않아 정말 알부자가 되겠구나... 미리 흐믓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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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알을 본 지난 주말 이후로 아침에 눈을 뜨면 제일 먼저 닭장을 들러본다.

물론 똥으로 질퍽거리는 닭장 안에 들어가 알을 꺼내오는 일은 둘째 윤정이의 몫이다.

지렁이도 잘 만지고 벌레들도 좋아하는 기특한 다섯살 딸 아이는 지저분하고 냄새 나는

닭장 안도 아랑곳 않고 들어가 알을 꺼내온다. 이뻐 죽겠다.



얼마 전엔 시험삼아 조금 심어 보았던 감자도 20킬로나 캤고, 두 주먹쯤 심었던 강낭콩도

한 양푼 가득 수확했다. 오이랑 고추도 벌써 몇 개나 따 먹었는지 모른다.

한 줄 밖에 심지 않았던 깻잎은 어찌나 사방에서 돋아나는지 우리집 여름 내내 먹을

장아찌를 담그고도 계속 돋아나서 친정과 친정 언니들에게까지 깻잎 장아찌를 줄 수 있을 정도다.

집 안팎에서 나는 채소들도 다 못 먹을 정도로 푸짐한데 이제 닭들이 알까지 낳아 주다니

하루 아침에 부자가 된 기분이다.



양은냄비처럼 얇은 마음을 가진 마누라는 닭똥 냄새에 진저리를 치다가 알을 보는 순간

그간에 겪었던 일들은 다 잊고, 이제 닭 알을 모아 부자가 될 생각에 가슴이 다 벌렁거리고 있다.

남편은 이 여세를 몰아 오리도 키우자는 등, 토끼도 길러보자는 등 야단인데

제발 농장 식구들을 더 이상 늘리는 일은 참아 주었으면 한다.

내 집에서 낳은 달걀을 먹는 일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만족하고 뿌듯하다.



아아아...

알 몇 개는 병아리로 부화시켜 볼까?

고물 고물 잘 크면 뒷 뜰이 금방 닭들로 넘쳐날텐데, 닭을 키워 팔아도 큰 돈을...



나는 이솝우화에 나오는, 달걀을 이고 가는 처녀처럼 온갖 상상으로 벌써 배가 부르다.

우하하...



나는 알 부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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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순화
서른 둘에 결혼, 아이를 가지면서 직장 대신 육아를 선택했다. 산업화된 출산 문화가 싫어 첫째인 아들은 조산원에서, 둘째와 셋째 딸은 집에서 낳았다. 돈이 많이 들어서, 육아가 어려워서 아이를 많이 낳을 수 없다는 엄마들의 생각에 열심히 도전 중이다. 집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경험이 주는 가치, 병원과 예방접종에 의존하지 않고 건강하게 아이를 키우는 일, 사교육에 의존하기보다는 아이와 더불어 세상을 배워가는 일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고 있다. 계간 <공동육아>와 <민들레> 잡지에도 글을 쓰고 있다.
이메일 : don3123@naver.com      
블로그 : http://plug.hani.co.kr/don3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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