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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 키우다보면 무서운 말들이 있다.

예를 들면 ‘안아주세요’ 같은 말이다. 사랑스런 아이가 안아달라는 말이 무섭다니 말이 되냐고

하겠지만 세 아이가 모두 나를 향해 팔을 벌리며 ‘나, 안아주세요!’ 해보라. 등에 식은땀 난다.

남편이 주중에 지방으로 출장을 다니면서부터 밤마다 나 혼자 세 아이를 먹이고, 씻기고, 재우느라

할 일은 많고 몸은 정신없이 바쁜데 아이들은 툭하면 저를 안아달란다.

10개월된 막내는 내 품에서만 살려고 하니 바닥에 내려만 놓으면 팔을 벌리고 저를 안으라고

‘음-마마마’ 외쳐대고, 네살된 둘째는 앉아서 바닥 치우는 내 등에 매달려 ‘안아주세요’ 하고

여덦살 큰 아이는 소파에 누워 ‘여기에서  안아주세요’ 외쳐댄다.

어릴 때부터 안아달라고 하면 최선을 다해 품을 내주었던 내 탓이다.  많이 안아주면 넘치는

애정 속에서 안정되게 자라겠거니 생각해서  애를 쓴 것인데,  아이들은 지금도 아무때나 저희들이

원하면  엄마가 안아주어야 한다고 믿는 모양이다.

이리저리 뛰다가 짬을 내 막내를 안아 올리면 둘째가 달려든다.  할 수 없이 주저앉아 왼팔로

막내를 안고, 오른팔로 둘째를 안으면 다 큰 첫째가 ‘나는요!!!’ 소리친다.  그리고는 기어코

내 발 사이로 파고든다.  이렇게 되면 정말 사랑스런 아이고 뭐고 징글징글하게 힘들어진다.

막내만 안고 일어서면 양쪽에서 ‘엄마는 이룸이만 이뻐하고!!’ 원망하는 소리가 넘친다.

재울 때는 더 난리다.

누워서 막내에게 젖 물리고 있으면 등 뒤에서 두 아이가 서로 안아달라며 내 옆자리를 다투느라

싸워댄다. 아빠가 없는 집에서 엄마의 관심과 보살핌을 조금이라도 더 제게 향하게 하려는

처절한 암투다. 막내 재우고, 몸 돌려 둘째 안아 재우고 나면 침대에서 아까부터 안 자고

끈덕지게 내가 올라오기를 기다리는 큰 아이 옆으로 가서 안아줘야 한다.

이렇게 세 아이를 재우고 나면 몸도 마음도 파김치가 되어 버린다.

그러니 정말 자주 ‘안아주세요’ 하는 소리가 무서워진다.



‘엄마’라는 소리도 겁난다.

첫 아이 낳고는 언제 커서 ‘엄마’ 소리를 하는지, 아이 입만 쳐다보고 살던 시절도 있었다.

그 작은 입을 오무려 엄마 비슷한 소리라도 내면 온 몸이 떨리도록 황홀하고 행복했다.

아이가 ‘엄마, 엄마’ 하며 내게 다가올 때엔 세상을 다 얻은 것처럼 기쁘지 않았던가.

배 고파도 ‘엄마 엄마’, 졸려도 ‘엄마, 엄마’, 다치거나 아파도 ‘엄마, 엄마’...

아이들은 늘 엄마만 찾는다. 그 소리가 고맙고, 사무치고, 기뻐서 엄마만 부르면 몸이 부서져라

달려갔다. 그래서 아이의 젖이 되고, 손이 되고, 발이 되는 날들을 정신 없이 살았다.

그렇지만 애들을 키우다보면  ‘엄마’ 소리가  마냥  반갑지 않은  때가 금방 온다는 것을 알게 된다.

조금만 아쉬어도 ‘엄마’, 제가 필요한 것이 있어도 ‘엄마’, 심심해도 ‘엄마’를 찾아대니

‘엄마’ 소리만 들어도 ‘왜!!’ 하는 짜증이 날 때가 있다.

노는 일에 정신을 팔다가 있는대로 급한 지경이 되어 오줌 뉘어 달라고 엄마를 찾는 둘째를

봐주고 있는데, 제가 쓰는 왼손잡이용 가위가 보이지 않는다며 숨 넘어가게 ‘엄마’를 불러대는

큰 놈는 제가 부르는데 금방 오지 않는다고 소리를 질러대고, 막내는 화장실 문 앞까지

기어와서 ‘음-마마마’ 하며 빨리 안으라고 울부짖는 광경을 상상해보라.

서로 다른 요구를 한꺼번에 내게 쏟아 놓으며 ‘엄마’를 불러대는 세 아이 틈바구니 속에 있다 보면

‘엄마’하고 부르는 소리만 들어도 숨고 싶을 때가 생긴다.

그럴땐 정말 나도 ‘엄마’ 하고 부르며 내 엄마에게 달려가고 싶어진다.



그렇지만 뭐니뭐니해도 요즘 남편과 나를 제일 겁나게 하는 말은 ‘'내가 할래요’다.

늘 부모에게 의지하던 아이가 제가 하겠다고 나서게 되면 참 기특하고 흐믓하다.

외출할 때 양말 신겨달라고 발을 내밀던 아이가 언제부턴가 양말을 뺏어들고 제가 신을 수 있다며

끙끙대는 모습을 보면, 어느새 이렇게 컸나 벅차오르기도 한다.  늘 먹여주어야 했던 밥도

제 손으로 숟가락질을 하고, 어려워하던 가위질도 척척 하며 ‘내가 할 수 있어요’ 한다.

기쁘다. 힘들여 아이 키우며 보람을 느끼고 뿌듯한 행복을 느낄 때가 이런 순간이다.

그러나 ‘내가 할래요’라는 말이 부모의 인내력과 참을성의 한계를 시험하게 하는 가장 힘든

말이라는 사실을 곧 깨닫게 된다.

외출할 시간이 늦어져서 정신없이 서두르는데,   세살 난 아이가 현관에서 신발을 제가 신겠다고

우기는 것을 상상해보라.  부모가 신기면 1분도 안 걸리는 일을, 아이는 오른발 왼발을 바꾸어서

서툰 손으로 찌찍이를 떼어가며 발을 구겨 넣느라 하염없이 시간을 허비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으면 그 모습이 마냥 대견할 수 없게 된다.  발이 안 들어간다고 짜증내고, 울음을 터뜨리면서도

엄마가 신겨준다고 하면 제가 할 수 있다고 펄펄 뛰고,  그러면서 또 짝짝이로 발을 들이밀 때는

머리 뚜껑이 확 열린다.  신발을 뺏어들고 신겨버리면 차 타고 가는 내내 ‘내가 신으려고 했는데...’

하며 훌쩍이는 원망의 소리를 들어야 한다.  미안하다고, 너무 늦어서 그랬다고 사과해도

아이는 마음을 풀지 않는다.  부모노릇 하기 정말 어렵다.



부모는 모든 일을 빠르게 효율적으로 하기를 원하다보니 아이의 서툰 손과, 굼뜬 동작과

어설픈 행동들을 한없이 기다려주고, 참아주는 게 쉽지 않다.  특히나 세 아이를 빨리 재워야

글이라도 쓸 수 있는 나는 밤만 되면 모든 신경이 세 아이를 빨리 씻기고 재우는 것에 집중된다.

그런데 네살난 둘째가 이 닦는 것부터 제가 할 수 있다며 제동을 건다.

막내를 씻기느라 둘째를 남편에게 맡겼더니 한참있다 들여다봐도 아직 이조차 닦지 못했다.

요즘 담배를 끊는 중이라 금단현상으로 유난히 피곤해하며 무기력해진 남편은 퇴근하고 오면

빨리 정리하고 눕고 싶어 한다. 그렇지만 아이들을 재우기 전에 아빠가 잠 들 수는 없으니

서둘러 아이들을 씻겨서 같이 누우려고 애쓴다.

그런데 둘째는 ‘치약은 제가 묻힐 수 있어요’라면서 칫솔과 치약을 들고 씨름을 하고 있는 중이다.

치약 뚜껑 여는 데만 족히 몇 분은 걸린 듯 했다.  그 다음엔 칫솔에 치약을 짜서 묻히느라

또 하세월이다.  어지간히 참을성 많은 남편도 머리에서 김이 오르는 게 보인다.

게다가 우리집은 치약에 죽염을 묻혀 이를 닦는데,  그것도 제가 하겠다고 죽염통을 열다가

죽염을 확 쏟아 버렸다.  쏟아진 죽염을 다시 쓸어 담으면서 ‘아, 정말 환장하겠네’라며 남편이

중얼거리는 소리를 듣다가 그만 웃음을 터뜨려 버렸다.

‘당신은 어쩌다 한번이지, 매일 도닦는 나도 있어.  애들이 나를 아홉번 구운 죽염으로 만드려나봐.

어찌나 내 속을 이글이글 태워대는지, 한 놈만 그러나.  세 놈이 번갈아 아홉번씩 구워대니

구죽염이 아니라 스물 일곱번 구운 죽염이 될 정도라구...’



아이가 스스로 한다는 것을 더디고 귀찮다고 막을 수 는 없으니 남편과 나는 매일이 도를 닦는 날이다.

그나마 남편은 출장을 다니느라  애들과 지지고 볶는 날이 며칠 되지 않지만  매일 세 아이와

지내는 나는 날마다 아홉번 구운 죽염이 되어가며 약효만 높아져가고 있다.

음식을 만들때 계란도 제가 깨뜨릴 수 있다고 나서는 우리 둘째가 제일 고민이다.

지켜보고, 기회를 주고, 기다리는 일이 보통 내공을 요구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단추 채우기, 양말 신기, 옷 입기, 야채 썰기, 하다못해 설걷이며 빨래까지 제가 할 수 있다고

나서는 둘째 덕분에 하루에도 몇 번 씩 참을 인자를 새겨가며 마음 수련을 하는 중이다.

10개월 된 막내도 진작부터 밥 숟가락을 제가 든다고 달려들기 시작하고, 여덟살 큰 아이는

디지털카메라며 캠코더를 저도 만질 수 있다며 손대기 시작하는데, ‘내가 할 수 있어요’라는 말은

당분간, 아니 앞으로도 오랫동안 우리 부부를 겁나게 할 듯 하다.



중년 남자들은 마누라가 콧바람 넣으며 ‘여-봉’ 하는 소리만 들어도 기함을 한다는데

줄줄이 아이 셋 낳고 정신없이 사는 우리 부부는 여전히 상대방보다 애들이 부르는 게 더 겁난다.

아아아...

호환마마보다 더 무서운 아이들의 말, 말, 말...

앞으로 견뎌야 하는 세월이 아득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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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순화
서른 둘에 결혼, 아이를 가지면서 직장 대신 육아를 선택했다. 산업화된 출산 문화가 싫어 첫째인 아들은 조산원에서, 둘째와 셋째 딸은 집에서 낳았다. 돈이 많이 들어서, 육아가 어려워서 아이를 많이 낳을 수 없다는 엄마들의 생각에 열심히 도전 중이다. 집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경험이 주는 가치, 병원과 예방접종에 의존하지 않고 건강하게 아이를 키우는 일, 사교육에 의존하기보다는 아이와 더불어 세상을 배워가는 일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고 있다. 계간 <공동육아>와 <민들레> 잡지에도 글을 쓰고 있다.
이메일 : don3123@naver.com      
블로그 : http://plug.hani.co.kr/don3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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