볕이 따뜻한 날 놀이터는 아이들이 지르는 소리로 가득찼다. 뒤를 쫓아 달려가는 흥에 겨운 소리, 원통형 미끄럼틀 안에서 울리는 함성 소리, 하늘 위로 오르는 그네 위에서 웃는 소리는 듣는 이를 동심으로 끌어들인다. 아이들의 목소리는 마법을 지녔다. 까마득한 먼 옛날, 아무런 근심도 욕심도 없던 때로 어른들을 불러 들인다. 상실했던 때 들었던 음악은 가슴을 아프게 누르고 연애하던 시절 들었던 음악은 멈췄던 가슴을 설레게 한다면, 놀이터에서 들려주는 아이들의 목소리는 찌든 마음의 때를 벗겨 낸다. 그래서 때로는 티격태격 다투는 소리조차도 귀엽고 사랑스럽다. 


아이 표정.JPG » 놀이터에서 즐겁게 놀고 있는 아이. 사진 강남구.

 

 

엄마들 사이를 뚫고 들어가 놀이터 긴 의자 한 켠을 차지하고 앉았다. 놀이터에선 별다른 음악없이 책을 읽을 수 있는 건 아이들 목소리로도 충분히 행복했기 때문이었다. 잠깐 한 눈을 파는 사이 민호가 울면서 다가왔다. 글썽이는 눈물이 아니라 뚝뚝 떨어지는 눈물을 보였다. 찡그린 눈으로 입을 벌린 채 울음 소리를 냈다. 민호는 울기 전 친구들과 형들이 축구하는 모습을 꽤 오랫동안 지켜봤다. 축구 놀이에 끼지 못한 채 30분 가까이 주위를 서성대던 아이가 결국 설움이 터졌다.

 

 아빠, 형들이 나 축구에 안 끼워준대

 아이들은 남의 입장에서 생각하기에 서툴다고 했다. 그래서 역지사지가 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했는데, 민호는 모든 잘못을 형들 탓으로 돌렸다. 30분 가까이 서성였지만 자신을 끼워주지 않았던 친구와 형들. 사정도 해 봤지만 아이가 들었던 대답은 거절이었다.

 “왜?”

 몰라. 이유 없이 그냥 안 끼워준대.”

 

민호가 울기 전부터 축구 경기엔 끼기 어려울 것 같았다. 두 팀이 세 명씩 짜여 져 들어갈 틈이 없다는 걸 일찌감치 알 수 있었다. 어떤 말을 해야 할까? 어떤 말을 아이에게 건네야 할까? 아이나 어른이나 한 마디의 말은 아이에게 큰 상처를 주기도 하고 큰 위로를 주기도 한다.

 

 심리학 수업을 듣기 전에는 아이를 위로하기 위해 자주 했던 말이 괜찮아였다. 하지만 괜찮다란 말이 때로는 상대를 무척 불쾌하게 하거나 화를 돋우기도 한다는 걸 상담심리수업을 통해 배웠다. 마음이 아프고 상처 받은 사람에게 괜찮다란 말은, 말하는 사람 중심적일 수 있다. ‘괜찮다'란 말을 풀어보면 나는 너가 괜찮기를 바라또는 그런 상황은 속상한 상황이 아니라 괜찮은 상황인 거야라는 말일 테다. 그러니까 괜찮아라는 말에 상대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은 채 자신의 바람만이 담겨 있다면 그 단어는 이기적인 태도를 지닌다.

 

 내가 말하는 대화내용이나 다른 사람들의 말들을 하나하나 따져보면 무척 자기 중심적인 경우가 많다. 대화는 상대방의 마음이나 기분이 어떤지에 대한 고려를 할 때 서로 잘 통하는 법인데 대화를 한다며 자주 내 마음이나 내 기분만 전할 때가 대부분이었다. 상실이나 분노, 슬픔으로 가득찬 사람에게 괜찮다란 말이나 괜찮아질 거야란 말은 상대를 더욱 불편하게 한다. 괜찮다는 말이 괜찮지 않은 사람에게 괜찮아야 한다는 의무감으로 다가가기 때문이다.

 

민호에게 괜찮다란 말을 하려다 멈췄다. 민호는 괜찮지 않았으니까. “괜찮다라는 말은 아이에게그런 걸 가지고 우니라는 말로 아이가 받아들일 수 있으니까.

끼워 달라고 해라는 제안을 하려다가도 멈췄다. “끼워 달라고 해라는 말은너가 제대로 못한 거잖아.”라는 말로 들릴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아이는 지금까지 자기 나름 최선을 다해 끼워달라고 표정과 대화로 애원했으니까. 그럴 때 부모가아빠가 대신 그 축구 시합에 너를 넣어줄게라는 말은 아이들의 세계에 어른이 폭력적인 방식으로 들어가 오히려 민호와 다른 아이와의 관계를 더 꼬이게 할 수 있다는 판단도 들었다. “아빠가 대신 해 줄게라는 말은아빠는 너보다 힘도 세고 강하다라는 말로도 들릴 것 같았다.

 

그래서

괜찮다라는 말이나

이렇게 해라는 말이나

부모가 대신 해 줄게라는 언어 속에는

아이를 인정하지 않고

내가 너라면 이라는 의도하지 않은

어른으로서 우월감이 숨어 있다.

 

놀이터에서 민호가 눈물을 흘린 ,

상담 심리학에 서 배운 그대로 아이에게 전했다.

"민호야 많이 속상했구나"

 "아빠가 너라도 눈물을 흘렸을 거란다." ​

 "얼마나 속상했니. 정말 속상했겠구나."

 "아빠도 속상하네"

 "가슴이 아프겠구나"

 "아빠도 가슴이 아픈 걸"

 

그래서

 그게 아이와 부모와의 관계이든

 연인과의 관계이든

 사랑의 언어는 많은 경우

 “그렇구나”

 라고 말할 때 가능할 것 같았다. 

 

판단하지 않고

분석하지 않고

제안하지 않고 

상대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말

“그렇구나” 

 

공감한다는 게 철학적으로 얼마나 큰 의미가 있는지, 존재에 있어서 상대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주는 게 얼마큼 큰 일인지를 다시 한번 지난 시간을 떠올리며 가슴 속에서 되새겼다. 아이는 자기의 감정을 인정받을 때 자존감을 키워나간다.

 

 

  • 싸이월드 공감
  • 추천
  • 인쇄
태그
첨부
강남구
이름 앞에 붙는 수식어를 만들고 다듬느라 35년을 흘려보냈다. 아내와 사별하고 나니 수식어에 가려진 내 이름이 보였다. 해야 할 일보다 하고 싶은 일을 찾으려고 기자 생활을 접고 아이가 있는 가정으로 돌아왔다. 일 때문에 미뤄둔 사랑의 의미도 찾고 싶었다. 경험만으로는 그 의미를 찾을 자신이 없어 마흔에 상담심리교육대학원에 진학했다. 지은 책으로는 '지금 꼭 안아줄 것' '나의 안부를 나에게 물었다'가 있다.
이메일 : areopagi@naver.com      
블로그 : http://plug.hani.co.kr/namgu

최신글

엮인글 :
http://babytree.hani.co.kr/443569/400/trackback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수
» [강남구의 아이 마음속으로] ‘괜찮아’는 안 괜찮아, 대신 ‘그렇구나’ imagefile [15] 강남구 2016-02-22 203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