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ec0d4c8e834e6ffc5cdb71151e0287. » 동생과 함께 놀아주는 민지. 민규는 그런 누나를 너무 좋아한다. photo by 양선아



“언니. 나 오늘 △△이를 아침에 때렸어. 너무 맘이 안 좋아서 살짝 울었어. 나 이러면 안되는데... 내가 아이한테 무슨 짓을 한 걸까... 폭력을 가르치고 말았어... 정말 맘이 안 좋아...”

 

딸과 비슷한 또래의 아이를 키우는 친한 동생이 내게 울상을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4살배기 아들이 바쁜 아침 시간에 두꺼운 겨울 체육복을 입겠다고 고집을 피우고 끝내는 어린이집에 가지 않겠다며 울며 떼를 쓴 모양이다. 어린이집 버스 시간에 맞춰 보내야 하는 엄마로서는 그런 아이에게 화가 날 수 밖에 없고 순간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엉덩이를 심하게 때렸다고 한다. 그 동생은 아이가 혹시나 마음에 상처를 입지 않았을까 미안해하고, 왜 그 순간 자신이 화를 참지 못했을까 죄책감을 느끼며 괴로워했다. 동생은 “일주일의 반은 아이랑 관계가 좋고, 일주일의 반은 싸움”이라며 “앞으론 내가 더 잘 참아야지”라고 다짐했다.

 

아이와 좋은 관계로 충돌없이 지내고 싶은 것이 모든 엄마의 바람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희망사항일 뿐.



사실 살다 보면 아이와 옥신각신 싸우고, 소리 높이고, 가끔은 매를 때릴 때가 있는 것이 우리네 삶이다. 엄마에게 엉덩이 맞고 실컷 혼나도 엄마가 따뜻하게 안아주면 언제 그랬냐는 듯 엄마 품에 꼭 안겨 엄마에게 뽀뽀 세례를 퍼붓고 “엄마 사랑해” “나는 엄마가 좋아”라고 말하는 것이 아이의 생명력이기도 하다.



아이를 한번 때렸다고, 아이에게 화를 냈다고, 굳이 ‘나는 못된 엄마’라는 꼬리표를 스스로 달며 지나치게 죄책감을 가질 필요는 없다. 아이에게 화 한번 내놓고, ‘나는 왜 이럴까’를 몇 번씩이나 되뇌는 동생을 보며 조금은 안타까웠다. 내가 보기엔 그 동생처럼 좋은 엄마가 없고, 성실한 엄마가 없는데 말이다. 또 자책을 하며 ‘앞으로 내가 좀 더 잘 참아야지’라고 말하는 동생이 ‘육아=참는 것=견디는 것’이라 생각하는 것도 걱정됐다. 그렇게 아이를 위해 참고 참고 또 참다 언젠가 또 아이에게 화를 폭발시키지는 않을까 걱정되서다.

 

언젠가부터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둘째를 낳고서 나는 아이들을 대함에 있어 한결 대범해졌다. 그리고 스스로에 대한 기대치-예를 들면 아이에게 어느 정도 해줘야 좋은 엄마다라는 식-도 낮아졌다. 스스로에 대한 기대치가 낮아지니 마음의 부담도 줄었고, 부담이 줄어드니 아이들과 있는 시간이 즐겁다. 아마 아이 하나만 키우고 있을 때 내게 위와 같은 상황이 발생했다면 나 역시 그 동생보다 더 심한 죄책감을 느끼고 아이에게 상처를 주지 않았을까 노심초사했을 것이다. 그런데 아이가 하나가 아닌 둘이 되고 보니 모든 것에 좀 더 관대해지고, ‘좋은 엄마, 완벽한 엄마’가 되겠다는 욕심도 버려지게 된다. 오히려‘이 정도면 나는 훌륭한 엄마야’ ‘아이들에게 지나치게 신경 쓰는 것보다는 가끔은 방목하고 조금은 무관심 하는 것도 나쁘진 않아’ ‘엄마도 사람인데 아이에게 화도 내고 아이 앞에서 울 수도 있고 투정도 부릴 수 있지’ 하는 알 수 없는 자신감도 생겼다. 

 

아이가 하나일 땐 나의 온 관심은 아이 하나에게만 집중됐다. 나는 내 온 에너지를 그 아이에게 투입해 양육했다. 아이가 하나일 땐 이유식도 매 끼니 새로 해먹였다. 육아 관련 책을 보며 이쯤 되면 아이가 어떤 발달 상황이 되어야 하나 찾아보며 아이가 조금이라도 ‘정해진 교과서’대로 자라주지 않으면 불안해했다. 이쯤 되면 뒤집어야 하는데... 이쯤 되면 걸어야 하는데... 이쯤 되면 말해야 하는데... 식으로 말이다. 아이가 조금이라도 울면 달려가 바로 안아줘야 좋은 줄 알았고, 아이를 엄마가 아닌 남의 손에 맡기면 혹시라도 정서 불안이라도 생길까봐 겁났다. 매일 육아일기를 쓰며 아이의 행동 하나하나에 예민하게 반응했고, 하루에도 수십 장씩 사진을 찍으며 아이의 순간순간을 기록하려 애썼다. 

 

그러나 아이가 둘이 되니 한 아이와 놀아주다 보면 한 아이가 젖을 달라 칭얼대고, 한 아이 젖을 주고 있으면 한 아이가 책을 읽어달라 보챈다. 잠시 혼자 누워있으려면 두 아이 모두 달려들며 ‘부비부비’를 한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보니 어느새 두 아이 모두를 만족시킬 수 없음을 인정하게 된다. 아이가 하나일 때처럼 아이들에게만 내 온 에너지를 투입하다가는 어느 순간 내가 질식사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첫 아이를 키운 경험들이 있어서인지 아이 행동 하나하나에 너무 예민하게 반응하는 법도 없다. 9개월 된 둘째가 좀 넘어지거나 다쳐도 “아프겠다. 괜찮아. 다 그렇게 다치면서 크는 거야”라고 말하며 꼭 안아줄 수 있게 됐다. 첫째 땐 아이가 넘어지거나 다치면 내 탓이라며 자신을 자책했더랬다. 



아이들이 울거나 떼를 써도 그 상황에서 조금 떨어져 아이의 울음이 의미하는 바가 뭔지를 한번 더 생각하게 된다. 첫째 때처럼 무작정 울음을 그치기 위해 안절부절 해하지 않는다. 이제는 아이도 그냥 울고 싶은 날도 있고, 뭔가 자기 뜻대로 되지 않으면 엄마에게 도와달라는 의미로 울기도 하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아이의 울음과 떼에 대한 나름의 해석력과 분석력도 늘어난 것 같다.

 

엄마 뿐만 아니라 아이 역시 형제가 있다 보니 자신의 욕구를 모두 만족시킬 수 없음을 알아가는 것 같다. 당장 엄마랑 놀고 싶어도 엄마는 동생 젖을 줘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됐고, 자기가 놀고 싶어하는 장난감을 동생도 놀고 싶어한다는 것을 알아가고 있다. 혼자만 있을 땐 어떤 짓을 해도 엄마 아빠의 사랑과 관심을 독차지했기 때문에 떼도 많았는데, 또 다른 경쟁자 동생이 나타났으니 예쁜 짓을 해 엄마 아빠의 사랑을 받으려는 모습도 보인다.  물론 동생이 처음 등장했을 때 엄마에게 강한 집착을 보여 엄마를 숨막히게 만들었지만 말이다.

 

때로는 첫째가 든든한 육아 지원군이 되어준다. 아침에 눈을 떠 제일 먼저 동생을 보고 배시시 웃으며 “우리 민규 잘 잤어요~아이고 예쁜 우리 아들~” 하며 엄마 흉내를 내며 동생을 안아준다. (이럴 땐 정말 자신의 아들 대하듯 한다. 흐흐.) 동생이 울면 동생 손에 소리 나는 장난감이나 자신의 장난감을 손에 쥐여주며 동생의 정신을 딴 곳으로 돌려주기도 한다. 9개월 된 동생이 제법 앉아서 놀고 기어다니니 그런 동생을 따라다니며 잡기 놀이 등을 하며 서로 즐거워한다. 잠자기 전에 요에 누워 떼굴떼굴 구르며 둘이 놀기도 하고, 서로 엎치락뒤치락 덮치며 마냥 즐거워한다. 항상 “엄마 민규는?” “우리 민규는?” 하며 동생 민규를 챙긴다. 동생을 살뜰히 챙기는 딸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나중에 육아 휴직이 끝나고 복귀할 때는 첫째 때만큼 걱정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민규 역시 엄마만큼이나 누나를 좋아해서 누나가 어린이집에 가려 하면 현관 문까지 가서 배웅하고 누나가 밖에 나가면 함께 나가자고 문쪽으로 손가락질을 한다. 혼자가 아닌 둘이고, 동생을 챙길 줄 아는 누나가 있어서 든든하다.  

 





97d92a10b8019d11aaa02d20f1ec6df3. » 민규가 어느정도 커서 놀이터에 데리고 나가 함께 놀곤 한다. 민규는 마냥 즐거워한다. photo by 양선아



아무래도 아이가 하나 있으면 그 아이 하나에게 ‘올인’하게 될 수 밖에 없다. 그렇게 하지 않으려 해도 자신도 모르게 그렇게 된다. 그러나 아이가 하나가 아닌 둘이 되다 보니 ‘올인’보다는 ‘사랑 분배와 남매간의 원만한 관계 형성’에 신경쓰게 된다. 때로는 둘이 놀도록 하고 나는 벌러덩 드러누워 쉬는 여유도 갖는다.



아이가 둘이면 물론 힘든 점도 많다. 경제적 비용도 만만찮다. 그러나 하나가 아닌 둘이라서 더 풍요롭고 더 행복하고 더 든든한 점도 있는 것 같다. 또 아이가 하나일 때 아이가 내 전부였다면, 아이가 둘이 되니 아이들과 나를 조금은 분리시켜 아이들의 세계를 지켜보는 관찰자가 되어보는 재미도 솔솔하다.



둘째를 임신했을 때 ‘둘째를 낳기 위한 필수조건’이라는 글로 둘째는 신중하게 낳아야 한다는 요지의 글을 썼던 내가 둘째를 낳아 키우면서 ‘둘째 낳을 만 하다’라는 내용의 글을 쓰게 될 줄이야. 흐흐.



그렇다고 독자들에게 무작정 둘째를 낳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둘째를 낳기 전 남편의 육아 협조 서약은 반드시 있어야 함을 다시 한번 독자들에게 주지시키고 싶다.



 

양선아 기자anmad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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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선아 기자
열정적이고 긍정적으로 사는 것이 생활의 신조. 강철같은 몸과 마음으로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인생길을 춤추듯 즐겁게 걷고 싶다. 2001년 한겨레신문에 입사해 사회부·경제부·편집부 기자를 거쳐 라이프 부문 삶과행복팀에서 육아 관련 기사를 썼으며 현재는 한겨레 사회정책팀에서 교육부 출입을 하고 있다. 두 아이를 키우며 좌충우돌하고 있지만, 더 행복해졌고 더 많은 것을 배웠다. 저서로는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자존감은 나의 힘>과 공저 <나는 일하는 엄마다>가 있다.
이메일 : anmadang@hani.co.kr       트위터 : anmadang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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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선아 기자의 육아의 재발견] 아이가 둘이라서 좋은 이유 imagefile 양선아 2011-06-03 20851

Q.수면 거부에 대해 여쭙고 싶습니다.

저희 아기는 만 7개월 된 아기인데요, 밤이고 낮이고 졸려서 눈을 비비고 머리를 박으면서도 자는 것을 거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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