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주 전 금요일 저녁. 녀석은 집 안에서 꼬마 지붕차를 운전하면서 책장을 강하게 들이받았다. 범퍼카 놀이를 하는 것 같았다. 다행히 책장에 흠집은 나지 않았지만 행동이 너무 과격했다.
“성윤아, 살살 해야지. 성윤이가 그렇게 세게 부딪치면 책장이 아프잖아.”
나름 부드럽게 녀석에게 타일렀다. 그러자 녀석은 갑자기 고개를 푹 숙이더니 아무 말이 없다. 그러고는 어깨를 들썩이더니 이내 울음을 터뜨렸다. 하지 말아야 하는 일을, 하지 말라고 했을 때 녀석이 대개 보이는 반응이다. 녀석이 이럴 때마다 나나 아내나 장모님이나 아빠가 이걸 하지 말라는 건 이러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성윤이가 미워서 그런 게 아니다, 그러니 울지 말라며 달래준다. 여기까지는 여느 때와 똑같았다.
휴일인 다음날 오후 볼 일이 있어 잠깐 외출을 했다. 볼 일을 보고 귀가를 하려는데 아내에게서 전화가 왔다.
“성윤이가 지붕차를 타긴 탔는데 ‘무서워, 무서워’하면서 아예 움직이지를 못하고 있어. 성윤이한테 ‘이제 지붕차 타도 괜찮아’라고 얘기해줘.”
아니, 이게 뭔 소리. 나는 무섭게 한 적이 없는데... 녀석에게 전화로 얘기했다.
“성윤아, 지붕차 타도 돼요. 책장 부딪쳐도 되니까 지붕차 타세요.”
그제서야 녀석은 다시 마루에서 지붕차를 신나게 탔다고 했다.
나의 말 한 마디가 녀석에게는 ‘트라우마’가 된 것인가. 한편으로는, 내가 꿈꾸었던 이상적인 아빠 상-아이와의 스킨십을 통해 끈끈한 애착 관계를 형성했지만 잘못한 일에 대해서는 따끔하게 혼내주는 카리스마적 존재-에 한 발 다가섰다는 느낌도 적지 않았다. 솔직히 “녀석이 너무 마음이 여린 것 아닌가”라는 걱정보다는 “움화화, 드디어 우리집 유일 카리스마가 확립됐다”는 흐뭇함이 앞섰다.
눈웃음을 샤방샤방 날리는 녀석에게 ‘내리사랑’을 듬뿍 주시는 외할머니와 배 아파 낳은 자식에게 모질게 하기가 쉽지 않은 엄마, 이런 양육자들에 견줘 비교적 둔감하고 쉬크한 아빠가 악역을 담당하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이런 생각에서 일종의 사명감을 가지고 있었는데...
일요일 오전, 녀석이 “배가 고파요”라며 제 엄마를 깨웠다. 아내가 말했다.
“성윤아, 아빠한테 뽀뽀해주고 밥 달라고 그래.”
식사 때마다 전쟁을 치르는 녀석이 기특하게도 밥을 달라는데 지체할 이유가 없었다. 난 벌떡 일어나 주방으로 나갔다. 어젯밤에 아내가 끓여놓은 냉이 된장국과 먹다 남은 찬밥이 있었다. 밥과 국을 전자레인지에 데우고 계란후라이를 했다. 녀석을 식탁의자에 앉혔다. 밥과 국을 제 손으로 뜨게 했고 계란후라이는 입에다 넣어주었다. 일종의 타협책이었다. 그런데 녀석이 밥과 국을 먹는 게 시원찮았다. 녀석은 이렇게 말했다.
“계.란.만. 먹.고.싶.어.요.”
“성윤이, 배고프다며? 배고프면 밥도 국도 잘 먹어야지.”
녀석은 내가 언제 그랬냐는 듯 서너 숟갈 뜨더니만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식탁 위에서 장난감 자동차를 만지작거렸다.
“밥도 안 먹을 거면서 이걸 왜 만져!”
난 녀석에게서 장난감 자동차를 뺏었다. 그리고 최후통첩을 했다.
“너 이거 안 먹으면 아빠가 먹을 거야. 시간 3분 주겠어.”
1분 단위로 카운트다운을 했다. 그 사이에 녀석은 밥 한 숟가락을 더 먹었지만 더 이상의 진전은 없었다.
“3분 지났어. 이거 아빠가 먹을 거야. 너 아침 먹지 마.”
» 지난 주말 동물원에서 사자를 구경하던 모습. 우리 사이 좋아요!
녀석을 바닥에 내려놓고 난 녀석이 먹다 남긴 밥과 국을 먹었다. 녀석은 할머니한테 다가가 또 꺼이꺼이 울었다. 출근을 해야 했던 난 그렇게 아침식사를 했다. 그런데 사실 전자레인지에 데운 찬밥은 까실까실했고 된장국은 좀 짰다. 세수를 하며 출근 준비를 하던 내 머릿속에서는 두 가지 생각이 충돌하고 있었다.
‘밥도 국도 맛이 없어 계란만 먹고 싶다던 반응은 당연한 건데 내가 너무 심하게 한 건가.’
‘아니지. 그런 밥 한 끼도 소중한 거지. 그래서 안 먹는 건 반찬 투정이지.’
악역은 맡은 자의 고민은 오늘도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