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새벽 눈을 반쯤 뜨고 일어났다. 흐릿한 기억력에 의존하자면, 30분 전에 녀석은 울음을 터뜨렸고 늦게 잠자리에 든 아내가 안고 나갔다. 나는 오랜만에 저녁자리에서 만취해 자정도 되기 전에 정신을 잃은 상태였다.
피곤한 아내도 제대로 달래지 못했는지 녀석은 계속 울어댔다. 그래서 술기운이 남아있는 몸을 일으켰다. 임무교대를 하고 아내를 방으로 들여보냈다. 시계를 보니 새벽 4시30분.
잠을 잘 때 녀석은 속을 썩인 적이 별로 없다. 갓난아기 적 몇 번 안거나 업어서 재워봤지만 언젠가부터는 그런 접촉도 필요 없었다. 시간 돼서 침대에 눕혀놓으면 혼자 뒹굴거리다 잤다. 중간에 잘 깨지도 않았다. 간혹 침대 위에서 신경전을 벌이다 아빠를 재워버리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녀석은 잠자는 문제에 있어 ‘모범생 아가’였다.
그렇기에 녀석의 갑작스런 행동이 왜 그런 건지 분석이 필요했다. 어디 아픈가? 그러나 책 보고 퍼즐 맞추고 음악 틀어 춤추고… 녀석은 쌩쌩했다. 하품이라도 하면 잽싸게 침대로 데려가겠건만, 녀석은 쉽사리 빈틈을 보이지 않았다. 요 녀석을 어떻게 다시 재워야 할지, 아니면 출근하기 전까지 이렇게 쭈~욱 놀아줘야 하는 건지 머릿속이 복잡해질 무렵, 녀석이 갑자기 코밑을 심하게 비볐다.
순간 코 주위의 콧물 자국이 눈에 들어왔다. 재빨리 몸을 뉘여 녀석의 콧구멍을 탐색했다. 오른쪽 콧구멍의 70%가 ‘왕건이 코딱지’에 막혀있었다.
유레카! 코딱지가 코를 막아 호흡곤란을 가져와 녀석의 숙면을 방해한 것이었다.
이제 남은 건 가차없는 발본색원. 그러나 섣불리 제거 작전에 들어가면 녀석의 반항으로 역효과가 날까 두려워 일단 10분은 더 놀아주었다. 그리고 조심스레 미끼를 던졌다.“성윤아, 우리 손 씻을까?” 녀석을 세면대로 유인해 손과 얼굴을 씻어주면서 콧구멍에 물을 묻혔다. 그리고 소파에 눕히고 면봉을 콧구멍에 집어넣었다. 평소 같으면 코도 못만지게 강하게 저항했을 텐데, 녀석도 뭔가를 아는지 고분고분하다. 몇 번의 면봉질 끝에 ‘후루룩’ 낚아버렸다. 으~ 더럽지만 통쾌하다. 집도를 끝낸 의사가 환자에게 떼어낸 종양을 보여주듯, 코딱지를 녀석에게 보여주었다. “이것 때문에 성윤이가 못 잔 거야. 아빠가 파주니까 시원하지?”
짜식, 말은 못하지만 고마워하는 눈치다.
그 시각 새벽 5시. 녀석을 침대에 눕히니 바로 곯아떨어졌다. 그러나 술도 잠도 깬 나는 한참을 뒤척여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