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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있는 집을 원했던 이유 중에서 가장 컸던 것은 ‘개’를 기를 수 있기 때문이었다.
아파트에서 사람처럼 키워지는 그런 개 말고, 마당을 뛰어 다니고 지나가는 사람을 보고
컹컹 짖기도 하고, 나갔다 돌아오면 멀리부터 꼬리를 흔들며 반가워 하고, 짝짓기도 하고
새끼도 키우는 그런 ‘개’말이다.


내 어린 시절에도 우리집 마당이나 친구들 집엔 대개 개가 있었다.
‘해피’, ‘쫄랑이’, ‘바둑이’, ‘매리’같은 개들을 부르는 소리가 늘 골목에 울려퍼지곤 했었다.
무엇보다 어린 시절엔 역시 개가 있어야 자연스러울 것 같았다.
어른들에게도 개는 특별할 수 있지만 아이들이야말로 가장 순수하고, 가장 솔직하게 개를
사랑할 줄 아는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아파트에서 아이들을 키울때 아이들은 밖에서 개만 만나면 열광했었다.
작은 개든, 큰 개든 그 곁을 맴돌며 만지고 싶어했고, 길 가다 만나면 수없이 뒤돌아보며
아쉬워 했고, 차를 타고 가다가도 개를 지나치면 창문에 매달려 안보일때까지 바라보며
이야기하곤 했다. 그리고 돌아오면 개를 키우고 싶다고 졸랐다.
마당있는 집으로 가면, 그때 개를 키우자고, 달래곤 했었다.
그리하야 마침내 올 해 1월에 마당있는 집으로 이사오게 되었을때, 남편은 이삿날이 한달이나
남았는데 덜컥 개를 얻어 왔다. 두 마리의 새끼 개와 아파트에서 한달을 살았는데 정말
끔찍했었다. 녀석들은 아무데나 똥을 쌌고, 베란다로 창 밖에 사람들이 지나갈때마다
왕왕 짖어 댔다. 잠시 외출이라도 할라치면 마음이 불안해서 오래 있을 수 가 없었다.
새 집에 짐도 들이기 전에 녀석들 부터 데려다 놓았다. 너른 마당에서 마음껏 뛰며 노는 모습을
보며 비로소 오래 바라던 꿈이 이루어졌구나.. 실감했었다.
봄에서 여름 사이 두 마리 중의 한마리가 장염에 걸려 갑자기 죽은 후로
이제 우리곁엔 ‘해치’ 한 마리만 남았다.


작년 12월에 젖 뗀지 두달 만에 우리곁에 왔던 해치는 이제 생 후 1년이 된 청년 개로 자라났다.
힘도 얼마나 센지 추석때 3박 4일간 두고 갔었을 때는 널빤지에 나사로 고정시켜 두었던 개 집을
끌고 언덕을 내려와 동네를 돌아다녔던 전설이 있을 정도다.
아이들은 혼자 남은 해치를 퍽 아낀다.
아홉살 큰 아이 필규는 학교에 갈때마다 꼭 해치에게 인사를 한다.
다섯살 윤정이는 해치밥을 뺏어 먹는 까치들이 몰려들 때마다 창가에 매달려 큰 소리를 질러
까치를 좇곤 한다. 해치에게 여자 친구가 찾아  왔다고 내게 일러주는 것도 윤정이다.
두 살 이룸이는 늘 해치를 만지고 싶어 한다. 곁에 가면 얼마나 알뜰하게 만져 주는지
지켜보다 보면 가슴이 뭉클할 정도다.
‘애치야, 애치야’ 하며 머리도 만져주고 커다란 해치 얼굴을 제 가슴에 끌어 안으려고 하고
나는 더럽다고 손사래 치는 해치 침이 제 손에 묻어도 깔깔 거리며 좋아 한다. 해치가 얼굴을
쓰윽 핥도록 제 얼굴을 내밀고 있기도 하다.
밖에서 기르는 개라 늘 흙먼지 속에 뒹굴고 있어서 나는 자꾸 더럽다고 가까이 가지 말라고 하지만
어린 이룸이에게 보이는 건 해치의 먼지가 아니라 저를 바라보는 해치의 눈빛인가 보다.
마당에만 나가면 해치에게 달려간다.
얼마전엔 내가 잠시 한눈파는 사이에 이룸이에게 해치가 앞발을 들고 달려드는 바람에
(그게 해치가 사람을 좋아하는 표현이다) 이룸이가 뒤로 쿵 넘어지기도 했었다. 그래도
이룸이는 또 해치에게 다가간다.


개가 있는 유년시절은 행복하다.

아이들은 해치와 다양한 감정들을 함께 나눈다.
눈이 많이 내리던 지난 겨울, 아이들은 개들이 춥지 않을까 늘 창가에 매달려 염려를 하곤 했었다.
작아진 제 옷들을 넣어 준다며 개 집을 드나들곤 했다.
해태가 먼저 떠났을때 혼자 남은 해치가 밤마다 늑대 소리를 내며 울때는 아이들도 함께 잠 못들고
울곤 했다. 식당에서 음식이 남았을때는 해치 가져다 주자고 먼저 나선다.


해치가 처음 짝짓기를 할때 아이들은 창가에 모여 숨을 죽이고 마음으로 해치를 응원하며
같이 지켜 보았다. 친구를 잃고 오래 외로왔던 해치였던 것을 알기에 진심으로 해치에게 좋은
짝이 생기기를 바랬던 아이들에게 짝짓기 하는 모습은 이상하지도, 무서운 것도 아니었다.
개들이 어떻게 사랑을 나누는지, 그것이 개들에게 얼마나 중요하고 의미있는 일들인지
사람들이 어떻게 지켜주어야 하는지 아이들에게 몇 번이고 이야기 했었다. 아이들은 내 이야기를
아무런 선입견 없이 받아들였다. 그래서 해치가 짝짓기 할때 누구도 놀리거나 흉보지 않았다.
다만 마음을 다해 잘 되기를 응원했었다.
두 어번 짝짓기를 실패했던 해치는 마침내 지난달에 아랫집 식당에 있는 짓돗개 진순이와
짝짓기에 성공했다. 10월 말이면 새끼를 낳는다고 한다. 식당집 아저씨는 잘생긴 새끼 한마리를
주시겠다고 하셨다. 이제 아이들은 손꼽아 해치의 새끼가 우리집에 오는 날을 기다리고 있다.


사람은, 아니 아이들은 개와 더불어 어떤 것들을 나누는 것일까.
개는 감정을 계산하지 않는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다.
제가 기분 나쁘다고 함부로 하지 않고, 언제나 한결같이 저와 함께 사는 사람에게
제 애정을 다 기울인다. 아이들은 그걸 안다. 엄마에게 야단맞고 기분 상했을때도
해치에게 가면 해치는 꼬리를 흔들며 변함없는 눈빛으로 어린 주인을 맞아준다.
엄마는 현관에서 인사하고 집으로 들어가버리지만, 해치는 어린 주인이 멀어질때까지
안 보이고서도 한참이나 서서 그곳을 바라봐준다.
아주 작은 손길에도 몸을 기대오고 탓하지 않고 혼내지 않는 눈빛으로 아이들을 바라본다.
엄마인 나라도 해치처럼 한결같을 수 없다.
이런 개들의 충직함과 한결같은 애정은 자폐를 앓고 있는 아이들의 마음의 빗장도 열어준다.
외국에서는 오래전부터 자페증을 앓는 아이들에게 동물치료를 발전시켜 왔고, 많은 치료견들이
상처받고 마음을 닫은 아이들을 돕고 있다.


해치는  이제 우리들만의 개가 아니다.
첫 아이 학교 친구들은 해치가 보고 싶어 우리집을 찾기도 한다. 제 집에서는 기를 수 없는
이 커다랗고 힘세고 착한 개를 만지고 쓰다듬어 보고 먹을 것을 건네며, 제 애정과 관심이
그대로 받아들여지고 되돌아오는 따스한 경험을 나눈다.
내 아이들의 어린시절에, 또 내 아이들 친구들의 어린시절에 해치가 오래 오래 좋은 벗으로
남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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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순화
서른 둘에 결혼, 아이를 가지면서 직장 대신 육아를 선택했다. 산업화된 출산 문화가 싫어 첫째인 아들은 조산원에서, 둘째와 셋째 딸은 집에서 낳았다. 돈이 많이 들어서, 육아가 어려워서 아이를 많이 낳을 수 없다는 엄마들의 생각에 열심히 도전 중이다. 집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경험이 주는 가치, 병원과 예방접종에 의존하지 않고 건강하게 아이를 키우는 일, 사교육에 의존하기보다는 아이와 더불어 세상을 배워가는 일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고 있다. 계간 <공동육아>와 <민들레> 잡지에도 글을 쓰고 있다.
이메일 : don3123@naver.com      
블로그 : http://plug.hani.co.kr/don3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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