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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쯤 되면 말문이 트인다고 한던데 15개월에 들어선 울 아기의 구사 단어는 아직 9개월때쯤 했던 ‘무우(물)’과 ‘어부(어부바)’가 전부다. 아니 물고기 육고기 포함한 고기와 콩 등을 가리키며 하는 ‘코오’와 주변에 누가 방귀를 뀌면 벌떡 일어나 ‘뿌우’하는 것도 있긴 하다.  아! 그리고 가끔 ‘아빠’라는 말을 한다. 물론 아빠를 보면서 ‘아빠’라고 부르는 아름다운 순간은 아직 벌어지지 않았고, “아빠 해봐, 아~빠~” 하면 가끔 인심쓰듯 ‘아빠’를 한다.



하지만 ‘엄마’는 절대 하지 않는다. 평소 엄마를 훨씬 더 자주 찾으면서도 ‘엄마’는 하지 않는다. 매일 밤마다 늦게 들어오는 엄마를 부르지 않는 건 너무나 당연한거 아니냐는 게 주변 사람들의 분석이다.



말문이 안 트이면 걷기라도 하는가, 그것도 아니다.  13개월 쯤 되자 걸음을 떼기 시작했는데 지금도 많이 걸어야 열 발자국 정도. 뭔가 목적이 확실할 때는 여전히 네 발로 후다닥 기어간다. 일주일에 한번씩 이모와 함께 문화센터에 가는데 처음에는 다들 안겨 들어오던 아이들이 두달 정도 지난 지금은 다들 걸어온다고 한다. 우리집 인이만 빼고 말이다. 물론 언젠가는 잘 걸을 것이고 네 발로 기는 것 보는 날도 얼마 안남았으니 실컷 기어다니렴 하지만 마음 한 구석에는 ‘그래도 중간은 가야지...’라는 생각이 은근슬쩍 피어오른다.



전에도 고백했지만 아이가 눈만 찡끗해도  뭔가 신동의 기미를 찾으려는 엄마의 욕심과 속물 근성에서 나 역시 자유롭지 못하다. 물론 기대는 아이의 개월수와 반비례해서 돌이 지나도 엄마 소리를 입에서 떼지 않고 잘 걷지도 못하는 아이를 보며 이제는 뭐 중간만 가도 땡큐라는 생각이지만 그래도 그 기대를 완전히 접었다고는 할 수 없는데...



약 한달 전 쯤 아이의 영재적 자질을 드.디.어. 발견했다. 바로바로바로 ‘쉬야’ 부문. 14개월에 오줌을 가리는 ‘쉬야 신동’임이 밝혀진 것이다.  (여기저기서 들리는 이 비웃는 소리는 뭐지?) 매일 기저귀를 차고 있으면 발견하지 못했을 이 놀라운 재능을 깨닫게 된 건 기저귀 발진 때문이었다.



아기 때부터 싸구려 기저귀를 채워놔도 별 탈없던 아이였는데 컸다는 이유로 기저귀를 자주 안 갈아서 그랬는지 어느날 보니 똥꼬와 꼬추 주변이 빨갛게 변하고 피부가 일어나기도 했다. 예방접종을 위해 간 병원에서 물어보니 기저귀에 쓸려서 그런 것 같다고 의사가 말한다. 그래서 집에서 기저귀를 벗기고 내복만 입혀 놓기 시작했다.



물론 배변 훈련을 할 생각은 없었는데 아이를 보는 친정엄마가 아이를 화장실에 몇번 데려갔더니 쉬를 했다. 무려 끙~ 하고 힘까지 줘가면서 쉬야를 했다. 배변 훈련을 일찍하면 애가 스트레스 받는다고 해서 엄마한테 하지 말라고 했지만 엄마는 이미 맛을 들여서 두시간에 한번 정도 화장실에 데려갔다.



물론 화장실에 갔을 때만 쉬야를 한건 아니지만 적중률이 50%는 됐다. 그렇게 한 일주일을 지냈더니 아이가 아침에 눈을 떠서 기저귀를 툭툭 치고는 화장실 쪽을 가리키는 게 아닌가!  변기 위에 세워놓고 쉬를 한 뒤 물을 내렸더니 쉬야를 한 뒤 물까지 직접 내리는 세리모니까지 꼭 하려고 했다. 그 다음에 터지는 박수 세례도 아이는 즐겼다.



“너 배변 훈련하는 게 얼마나 힘든 줄 아니? 아무리 앉혀놔도 쉬 안하는 애들이 대부분이야. 역시 우리 인이는 보통이 아니야.” 6개월 넘게 창고에 처박아 놓았던 엄마의 ‘보통이 아니야’ 론이 다시 먼지를 털고 광채를 빛내며 우리집 거실로 돌아왔다. 대체로 늦은 아이라고만 생각하던 아이가 뭔가 빠른 게 있다는 게 나 역시 여간 신기하고 흐뭇한 일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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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그렇게 의사표시를 하면서도 뭔가 다른 데 빠져있거나 하면 그냥 선 채로 싸는 일도 많지만 화장실에 데려가면 대체로 쉬~를 하고 또 화장실을 찾는 일도 잦아지면서 기저귀 사용량도 하루 한 두개로 줄었다. 친정엄마와 아이를 봐주는 큰 언니는 이제 곧 응가도 가릴 테니 얼른 변기를 주문하라고 했다.



한동안 육아용품 쇼핑의 늪에서 벗어나 있던 나는 다시 육아 변기 세계에 빠져들어 식음을 전폐하면서 엄마들의 사용후기를 뒤지고 메신저로 친구들의 여론조사를 하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리고 결국 이번에도 역시 가장 싼 제품에서 시작해 가장 비싼 제품을 주문하는 결정을 일주일 만에 내렸다.



그렇게 파란색 변기가 집에 도착했을 때 식구들은 모두 꿈에 부풀었다. ‘응가응가’ 하면서 변기에 앉아 쾌적하게 볼일을 보는 우리 아이의 성숙되고 비범하며 남다른 모습을 그렸다.



그.러.나. 우리 아이는 쉬야 신동이기는 했으나 응가 신동은 아니었다. 놀다가 갑자기 힘을 주길래 얼른 바지를 벗겨서 변기에 앉혔다. 급했는지 한 덩어리를 싸더니 벌떡 일어나 나에게 안겼다. 그리고는 나머지 잔여 응가를 바닥에 떨어뜨리는 게 아닌가.  처음이라 그런가 보다면서 몇번 내버려 두다가 다시 시도를 했는데 역시 이번에도 질색을 한다.  이러다 배변에 장애가 생길 것 같아 내버려 뒀더니 서거나 쭈그리고 앉아서는 아주 잘 싼다. 



가끔씩 변기를 보면서 “예쁜 변기지? 저기 앉아서 응가하자” 그러면 고개를 살랑살랑 내젓는다. 그러고는 자유로운 영혼의 자세로 서서 또는 앉아서 싸고 그 다음 털푸덕 주저 앉아 뭉개며  해맑게 논다.



그럼 그렇지 신동은 무슨 신동... 당장 필요한 것만 같았던 변기는 화장실 옆에 오롯이 놓인 상태로 당분간 무용지물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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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형 기자
투명하게 비칠 정도로 얇은 팔랑귀를 가지고 있는 주말섹션 팀장. 아이 키우는 데도 이말 저말에 혹해 ‘줏대 없는 극성엄마가 되지 않을까’, 우리 나이로 서른아홉이라는 ‘꽉 찬’ 나이에 아이를 낳아 나중에 학부모 회의라도 가서 할머니가 오셨냐는 소리라도 듣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서는 엄마이다. 그래서 아이의 자존심 유지를 위해(!) 아이에게 들어갈 교육비를 땡겨(?) 미리미리 피부 관리를 받는 게 낫지 않을까 목하 고민 중. 아이에게 좋은 것을 먹여주고 입혀주기 위해 정작 우는 아이는 내버려 두고 인터넷질 하는 늙다리 초보엄마다.
이메일 :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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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은형 기자의 내가 니 엄마다] 쉬야 신동, 응가 신동은 아니었다네 imagefile 김은형 2011-05-19 21253

Q.수면 거부에 대해 여쭙고 싶습니다.

저희 아기는 만 7개월 된 아기인데요, 밤이고 낮이고 졸려서 눈을 비비고 머리를 박으면서도 자는 것을 거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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