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금요일, 3월25일은 어린이집 선생님과 정기적으로 하는 부모 상담일이었다. 상담거리는 차고 넘쳤다. 술 약속이 비교적 일찍 끝나 자기 전에 녀석의 얼굴을 볼 수 있었던 지난 월요일, 녀석의 오른쪽 뺨이 모기 물린 것처럼 빨갛게 일어나 있었다. “성윤아, 이거 왜 그랬어?”라고 물어보았지만 녀석은 그냥 빙긋이 웃기만 했다. 다음날 아침 아내가 메신저로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퇴근해서 들어가니까 나한테 쪼르르 오더니 ‘선생님이 때렸어’라고 말하더라고.”






뭐, 또? 처음 들을 때보다 충격은 덜했고 분노도 별로 없었다. 다만 결심이 설 뿐이었다.






‘얘기를 해야겠구나.’






어린이집에 나간 지 거의 한 달이 다 되었다. 적응프로그램이 거의 마무리될 무렵에 접어들었지만, 녀석은 지난주에 오히려 퇴행적인 모습을 보였다. 감기 기운이 있던 녀석은 약 먹는 문제로 엄마와 씨름을 하더니, 수요일 아침에는 급기야 등원 거부를 선언했다. 목요일에는 겨우 등원을 하긴 했지만, 점심시간이 지나서는 갑자기 불안해하는 모습을 보여서 일찍 귀가했다고 한다. 금요일에는 병원에 갔는데 의사 선생님은 “혓바늘이 돋을 정도로 아이가 지쳐 있다. 푹 쉬게 하라”고 조언했다. 등원 초기, 엄마와 떨어질 때도 울지 않고 순조롭게 적응하는 모습을 보이던 녀석이었지만, 그래도 어린이집에서 생활하는 게 나름대로는 엄청난 스트레스였던 모양이었다.






금요일 오후 어린이집에서 아내와 함께 선생님을 만났다. 우선적인 화제는 어린이집 적응 문제였다. 선생님은, 처음에 적응 잘 하던 아이가 뒤에 가서 못하는 경우가 있는데 성윤이도 그런 것 같다고 말씀하셨다. 아내는 “아이가 불안해하니 월요일부터는 첫째 주와 마찬가지로 외할머니를 옆방에 대기시키는 게 좋지 않겠냐?”고 물었다. 선생님은 “그렇게 되면 적응 프로그램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게 되는 것”이라며 부정적인 의견을 내비쳤다. 그 부분은 할머니가 옆방에서 대기하고 있으되, 녀석이 전혀 눈치 못 채게 하자, 점심 먹고 낮잠 자는 코스까지 시도해 보자는 식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다음은 식습관 문제. 녀석은 이번 주 들어 어린이집에서 간식과 점심식사 일체를 모두 거부했다고 했다. 심지어 식사시간만 되면 불안해하는 표정이 역력하고 금세라도 울음을 터뜨릴 기세였다고 했다. 다른 친구들이 식사하는 모습을 보는 것조차 힘들어해서 심지어 식탁을 등지고 앉아 있었다고 하니 매우 안 좋은 상태였다. 일단 일반적인 얘기부터 꺼냈다.






“집에서도 어린이집에서와 비슷한 식생활 환경이 만들어져야하는 거죠?”






“그렇죠. 집에서는 성윤이가 어떻게 밥을 먹나요?”






TV나 아이폰 속의 동영상으로 녀석의 주의를 분산시킨 뒤 입에다 밥을 떠 넣는 나쁜 식습관은 여전했다.






“집에서도 정해진 시간에 제 손으로 밥을 먹게 해주세요. 안 먹어서 굶게 되면 간식을 주지 마세요. 배고프면 먹게 되거든요. 성윤이 식습관은 또래보다 많이 늦은 거죠. 물론 음식물 섭취는 성장과 연결되니까 아이가 굶으면 부모님들이 걱정하시기는 하는데...”






영유아건강검진 때 의사 선생님이 하신 말씀과 똑같았다. 그 얘긴 그때부터 1년 가까이 성윤이의 잘못된 식습관을 전혀 바로잡지 못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어린이집 가면 아이들 따라하면서 다 먹게 된다”는 낙관적인 생각만 했지, 아이가 집에서 혼자 밥을 먹을 수 있는 기회를 주지 못한 것이었다. 오케이. 그건 인정.






그런데 녀석이 어린이집에 적응하지 못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지는 않을까. 특히 식판을 보는 것조차 거부한다는데, 그와 관련된 ‘아픈 기억’이 있는 건 아닐까. 부모 상담이 거의 마무리가 되는 분위기에 드디어 그 얘기를 꺼냈다.






“선생님 그런데요, 성윤이가 이런 말을 하네요.”






선생님, 김치, 매워, 때렸어, 볼을 찰싹거렸던 시늉까지... “저희가 이런 말을 꺼내는 것 자체도 쉽지 않았다”며 감정을 배제하고 녀석이 했던 말을 최대한 그대로 전달했다. 선생님은 깜짝 놀라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저희 어린이집은 절대 그런 일이 없어요. 원하신다면 CCTV를 보여드릴 수도 있고요... 제 생각에는 성윤이가 음식물에 대한 거부감을 그렇게 표현한 게 아닌가 싶네요. 그리고 이런 말씀은 주저하지 마시고 그때그때 말씀해 주세요. 성윤이 볼이 빨개졌으면 그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씀드릴 수 있는데 며칠 지나면 저희가 경위를 잊을 수도 있으니까요.”

성윤이가 식당에서 토를 하며 강하게 저항했던 그날, 아이들과 함께 있었던 선생님은 따로 있었다. 어쨌든 선생님이 이렇게까지 말씀하시니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그날 저녁, 원장 선생님이 아내에게 전화를 하셨다. 상담내용이 보고가 된 모양이었다. 어렵게 꺼낸 얘기를 진지하게 들어주시는 것 같아 고맙게 느껴졌다.








5068bb49ef62e00018558d50c35ddcd9. » 나도 할 수 있어요! 못한 게 아니라 안한 거라구요!






 






 어쨌든 상담 다음날부터 녀석의 잘못된 식습관을 바로잡기로 했다. 토요일 점심 메뉴는 녀석이 좋아하는 카레밥. 아내가 어린이집처럼 식판에 밥과 카레를 담으니, 녀석이 손으로 밀어냈다. 어쩔 수 없이 밥그릇에 카레밥을 담았다. 숟가락을 주고 먹으라 하니, 녀석이 순순히 제 손으로 퍼먹는다. 흐흐, 의외로 쉽게 되네. 녀석이 숟가락질을 할 때마다 나와 아내, 장모님은 박수를 치면서 녀석을 응원했고, 난 아내의 아이폰으로 사진을 찍으며 호들갑을 떨었다. 그런데...






한층 기분이 업된 아내가 “성윤아, 성윤이 찍은 사진 볼까?”라고 말하며 아이폰을 녀석에게 건넸다. 그러자 녀석은 언제나 그랬듯이 두 손으로 아이폰을 들고 능숙하게 터치를 하더니 동영상을 시청하기 시작했다. 숟가락질 잘 하던 아이에게 본연의 사명을 망각하게 만든 찰나의 어리석음이었다. 아이폰을 식탁 위에 놓고 밥을 먹으라고 했지만, 녀석은 들은 척도 안했다. 평소 같았으면 녀석의 입에 밥을 퍼 넣었겠지만 이제는 단호함이 필요했다. “배가 부르다”는 녀석을 식탁의자에서 내려버렸다. 주말 동안 간식도 별로 주지 않았고 어른들 식사시간에 녀석도 앉아서 먹을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유도했다. 나쁜 식습관이여! 이젠 정말 안녕~






새로운 주가 시작된다. 이번 주에는 어린이집에서 점심식사, 낮잠은 물론, 저녁 6시에 엄마와 함께 퇴근하는 ‘깜짝쇼’가 펼쳐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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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규 기자
서른두살 차이 나는 아들과 마지못해 놀아‘주다가’ 이제는 함께 잘 놀고 있는 한겨레 미디어 전략 담당 기자. 부드럽지만 단호하고 친구 같지만 권위 있는 아빠가 되는 게 꿈이다. 3년 간의 외출을 끝내고 다시 베이비트리로 돌아왔다.
이메일 : dokb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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