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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학교 다니던 시절과 요즘을 비교해서 가장 많이 달라진 것은 단연 '촌지문화'다.

그 시절엔 촌지가 흔했다. 상담을 하러 가면 노골적으로 책상 서랍을 열어 둔다고 했다. 부잣집 아이 엄마가 학교를 다녀가면 분명 봉투를 드렸을거라고 아이들끼리 수군대곤 했다.

돈봉투가 아니더라도 제과점 상자나, 쥬스병, 하다못해 박카스라도 한 박스 들고서야 선생님을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하던 시절이었다.

궁핍한 살림에 직장때문에 떨어져 사는 부모님 대신 우리들을 키워 주셨던 외할머니가 어쩌다 학교에 올 일이 생길리라치면 박카스를 사야할지, 조금 더 비싼 인삼 드링크를 사야할지 돈을 헤아리고 고민하던 모습이 지금도 선하다.

두 딸이 다니는 초등학교에서는 '촌지'라는 말, 자체가 없다.

'불법 찬조금'이란 말을 대신 쓰지만 그것도 법에 어긋나니 절대 해서는 안된다는 교육 내용에서 대할 뿐이다.

아이가 입학하면 받는 오리엔테이션부터 학부모 총회, 반모임에 이르기까지 제일 자주 듣는 내용이 '불법찬조금'에 대한 안내이다.

어떤 이유로도 학부모들은 단체로 돈을 걷을 수 없고, 반에 간식을 넣어주거나, 돌려서도 안 되며, 개인적인 선물도 금한다는 것이다. 하다못해 학부모 상담으로 담임을 만날때 테이크 아웃하는 커피 한잔도 들고와서는 안된다고 단단히 교육 받는다.

2년 전에 공모로 오신 지금 교장 선생님은 금품은 물론 부모들의 노력봉사도 금지하셨다.

직장 등으로 노력봉사를 할 수 없는 학부모들 입장에서는 그 역시 불법찬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해마다 다가오는 스승의 날에 혹 작은 선물이라도 고민하는 학부모들이 있을까봐 학부모회에서는 미리 불법찬조금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안내하면서 아이들은 손편지를 부모들은 손편지나 애정 어린 문자를 보내주십사 부탁드렸다.

스승의 날이 지나고 학교에 들러보니 모든 선생님들에게 정말 많은 격려 문자가 쏟아졌다는 말을 교장선생님으로부터 전해 들을 수 있었다.

선생님들의 수고와 노력을 알아주고 지지해주는 문자 한 통이 선물보다 훨씬 힘이 세다.

두 딸들도 정성스런 편지를 준비했다. 열살인 큰 딸은 이쁜 카드를 만들고 손 편지를 썼다.

스승의 날 편지2.jpg

 

열살치고는 맞춤법도 많이 틀리고 문맥도 어색하지만 그래도 선생님에 대한 애정만큼은 넘치는 사랑스런 편지였다.

슷 ㅇ.jpg 

일곱살 막내는 유치원 담임 선생님에게 명랑한 편지를 썼다.


'선생님, 어제 스승의 날이었죠.

축하해요. 그리고 어제 비 왔지요.

근데 우리 위층 데크에 비가, 그리고 창문을 깜박 잊고 안 닫았는데 위에 가니 

꺄... 물바다!! 그리고 이빨이 흔들 흔들,

그래서 어마가 직접 빼는데 4번이나 했는데도 안 빠져서 울고 불고 했어요.

그리고 영화를 봤는데 영화의 제목은 '말할 수 없는 비밀'이란 영화예요.

선생님!!!! 사랑해요, 감사해요, 고마워요!!'


일곱살 다운 엉뚱하고 재미난 이야기들이 가득했다.

틀린 글자 투성이지만 선생님은 분명 행복하셨을 것이다.

교사와 학부모는 갑, 을 관계도, 수직 관계도 아니다.

같은 자리에서 아이를 키우는 교육의 주체들일 뿐이다.

서로 소통하고, 협력해서 모든 아이들을 제대로 잘 교육할 수 있도록 돕는 관계다.

서로의 수고와 노력을 인정해주고, 지켜봐주고, 돕고, 응원해주고, 부족함을 나누는 가운데 우리 아이들은 잘 커나갈 수 있다.

아직도 어떤 학교에서는 촌지가 존재한다느니, 값비싼 선물을 원하는 교사들이 있다느니 주위의 시선을 피해 선물을 전달하는 방법들이 공유되고 있다느니 하는 이야기들이 들려오지만 어디까지나 극히 일부에서 일어나는 일 이라고 믿고 싶다.

아이들에 대한 애정, 책임감, 헌신으로 오늘도 교육 현장에서 묵묵히 최선을 다하시는 모든 선생님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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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순화
서른 둘에 결혼, 아이를 가지면서 직장 대신 육아를 선택했다. 산업화된 출산 문화가 싫어 첫째인 아들은 조산원에서, 둘째와 셋째 딸은 집에서 낳았다. 돈이 많이 들어서, 육아가 어려워서 아이를 많이 낳을 수 없다는 엄마들의 생각에 열심히 도전 중이다. 집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경험이 주는 가치, 병원과 예방접종에 의존하지 않고 건강하게 아이를 키우는 일, 사교육에 의존하기보다는 아이와 더불어 세상을 배워가는 일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고 있다. 계간 <공동육아>와 <민들레> 잡지에도 글을 쓰고 있다.
이메일 : don312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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