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04451d85b348ec600ba7cff4fa210. » 바닥에 나뒹구는 낙엽 하나도 좋은 놀잇감이 될 수 있다. 동심으로 돌아가 아이와 함께 낙엽을 주워 여우도 만들어보고, 왕관도 만들어보자. photo by 양선아






올해도 다 가고 마지막 달에 들어섰다. 내 입에선 ‘세월이 너무 빠르구나... 아, 내 인생~’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내 앞으로 마구 달려가는 시간을 붙잡아둘 수 있다면 붙잡고 싶은 마음이다. 함께 아이를 돌봐주시는 이모님께 “아... 정말 시간이 너무 빨라요... 벌써 내년이면 제가 서른 넷이에요. 믿을 수가 없어요. 정말. 시간이 이대로 멈춰버렸으면 좋겠어요.”하고 말을 건네면, 이모님은 내게 이렇게 말한다.






“민지 엄마, 인생은 그런 거야. 애 낳고 키우다 보면 어느새 청춘은 가고 마흔이 돼 있어. 마흔 살 먹어봐. 그 뒤론 세월이 더 빨리 가. 나도 애 둘 낳아 키우다 보니 순식간에 오십 살이 넘었더라. 인생, 그렇게 허무해.”라고...






이모님은 아이를 다 키우고 나서 ‘허무함’을 느꼈다지만, 세 살, 한 살 아이를 키우고 있는 나는 최근 정체 모를 ‘허무함’ ‘우울감’에 시달릴 때가 종종 있다. 아이와 함께 지내는 엄마의 하루는 짧아도 너무 짧기 때문이다.






큰 아이 밥 챙겨 먹이고, 집안 일 하고, 부쩍 고집이 세진 큰 녀석과 실랑이를 하다 보면 점심때가 된다. 둘째 젖을 주고 조금 놀아주다 재우고 첫째와 놀이터라도 다녀오면 어느새 늦은 오후다. 저녁을 먹고 아이들 목욕시키면 벌써 취침 시간. 아이가 하나도 아니고 둘이나 되니 나의 하루는 쏜살 같이 아니 총알 같이 가버린다.

 






하루하루는 잘도 가는데, 날마다 그렇고 그런 날은 계속된다. 커다란 변화도, 짜릿한 자극도 없다. 만날 똑같은 사람과 똑같은 일상을 반복한다. 그래서 그런지 스산한 겨울 바람에 낙엽이 나뒹구는 모습만 봐도 괜스레 마음이 울적해진다.






운 좋게 아이 둘이 잠자는 시간이 맞아 책이라도 볼라치면 한 녀석이 금세 잠을 깨 이유없이 앙앙 울어댄다. 한 녀석이 깨서 시끄럽게 하면 또 한 녀석이 일어난다. 그럴 땐 한숨이 절로 나온다. 둘째 민규에게 젖을 주고 있는데 첫째 민지가 불가능한 임무를 부여하며 생떼를 부리고 징징대면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다. 고집과 생떼의 총량 법칙이라도 있듯 하루도 빠짐없이 이유없는 눈물을 쏟아내며 “엄마 안아줘”를 외치는 딸을 보고 있으면 아무 말도 나오지 않는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자식들이 어느 순간 짐덩이처럼 느껴질 때가 있고, 행복해야 할 시간이 무가치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산후 갑자기 달라진 내 현실에 적응하는 과정일 수도 있고, 온전한 나만의 시간이 너무 부족해 내적 에너지가 부족한 것일 수도 있으리라.

 

 ‘허무 바다’나 ‘우울 바다’의 속성은 그 끝을 알 수 없다는 것이 특징이다. 한번 들어가면 헤어나오기가 쉽지 않고, 우울의 폭풍이 몰아치기라도 하면 가족 구성원 모두에게 상당한 타격을 입힐 수도 있다. 그래서 더욱더 조심해야 한다. 우울과 허무의 폭풍이 몰아치기 전에 엄마들은 몸과 마음을 단단히 무장해야 한다. 그래서 요즘 나도 단조로운 일상과 고단한 육아에서 벗어나기 위해 나름대로 노력중이다. 그 중 가장 효과적인 처방이 있으니 바로 내 안에 숨어있는 동심 일깨우기.

 

“달이다. 달!! 엄마, 하늘에 달이 보여요~”

 민지를 데리고 운전을 해서 잠시 선배네 집에 다녀오는 길이었다. 뒷좌석에 있던 딸은 하늘을 보며 뭔가 대단한 것을 발견한 것 마냥 소리쳤다.

 

 “응~ 달이 나왔구나~ 무슨 모양이야?”

 

운전을 하며 나는 기계적으로 묻는다.

 

 “응~만두달이야. 만두달~ 그런데 엄마~ 만두달이 자꾸 날 따라와요. 달도 우리 집에 가나 봐~”

 

 나는 딸의 대답에 순간 웃음을 터트리며 고개를 돌려 달을 봤다. 초승달, 반달, 둥근 달 같은 정형화된 답을 예상했었는데 ‘만두달’이라니. 정말 민지 말대로 만두 모양 같기도 하고, 송편 같기도 한 달이 우리를 따라오고 있었다.






딸의 재밌는 상상력에 절로 웃음이 나왔고, 배가 출출했던 나는 머릿속에 만두달, 송편달, 호떡달이 하늘에 둥실둥실 떠있는 모습을 그려봤다. 상상만으로도 재밌고 신이 났다. 민지와 난 이런저런 모양의 달을 그려가며 얘기를 나눴고, 우리 둘은 낄낄대며 신나했다.

 

 어른들한테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 아이들에겐 무한한 상상력의 재료가 된다. 이 세상 모든 것은 신기한 것 투성이고, 단순한 일상도 엄마와 함께라면 신나는 이벤트가 된다. 그것이 바로 ‘동심’이고, 딸이 내게 일깨워준 것이 동심이다.

 

아이와 함께 지내다 보면 이런 일이 종종 일어난다. 놀이터에서 비둘기만 봐도 아이는 “비둘기다!!” 소리치며 따라다니고, 어쩌다 지하철을 타고 바깥 세상을 구경하게 되면 기차 타고 멀리 여행 가는 것처럼 설레어 한다. 책에서 갖가지 동물이나 곤충들을 보면 “나도 잠자리 되고 싶어” “나도 캥거루가 되고 싶어” 하며 되고 싶은 것도 많다. 길거리에서 마주하는 보도블록, 민들레, 주유소 등 모든 사물이 호기심의 대상이다. 동요 시디를 틀어놓고 혼자서 엉덩이를 덩실덩실 흔들며 즐거워하고, 집앞 공원이나 놀이터만 가도 소풍가는 것처럼 좋아한다.

 

반복되는 육아가 지루할 땐 아이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자. 내 마음 구석 어딘가에 숨어있는 ‘동심’을 일깨우면 일상은 신나는 하루하루가 된다.






일상에서 기쁨을 찾아내려면 내 주변에 항상 있는 것들을 낯선 눈으로 쳐다볼 줄 알아야 한다.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도 예사롭지 않게 쳐다볼 줄 아는 눈을 지녀야 한다. 지난 10월 말 탁틴맘에서 실시한 ‘아기랑 엄마랑 함께하는 해설이 있는 정원산책’이라는 프로그램을 참여하고 나서도 나는 그런 점을 많이 느꼈다. 






 이 프로그램은 이촌역 2번 출구 국립중앙박물관 정원에서 진행됐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아이들과 소풍가기 좋은 장소라는 것을 이 프로그램을 듣기 전엔 미처 몰랐다. 날씨가 좀 더 따뜻해지면 도시락을 싸들고 나들이 갈 생각이다. ) 숲 해설가가 박물관 정원을 산책하며 각종 나무와 풀, 꽃에 대해 설명을 해주었다.






회사 다니느라 민지와 나들이 경험이 적어 민규에게 젖을 충분히 먹이고 민지 친구 시현이네와 함께 참석했는데 너무 만족스러웠다. (막판에 민규가 젖병을 빨지 않고 엄마 젖을 찾아 식은 땀 흘리며 택시 타고 집으로 서둘러 돌아와야 했지만 모험을 건 나들이는 후회되지 않았다.) 팽나무, 참느릅나무, 고로쇠 나무, 떡갈나무, 짚신이 닳지 않게 하기 위해 밑에 깔았다던 신갈나무, 산수유나무, 꽃은 배꽃 닮고 열매는 팥을 닮아 팥배나무…그냥 무심코 지나치는 나무들에도 다 다른 이름이 있고, 특징이 있었다.






민지와 시현이가 이리저리 뛰어다녀 해설가의 설명은 충분히 못 들었지만, 아이와 함께 나뭇잎을 줍고 나뭇잎 하나하나 모양이 다 다르다는 걸 확인하는 것 만으로도 좋은 시간이었다. 특히 이날 나뭇잎을 가지고 여우도 만들고, 왕관도 만들고, 장미꽃도 만들어봤는데, 나뭇잎만으로도 아이와 할 수 있는 놀이가 많다는 것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나뭇잎이 이렇게 좋은 장난감이 될 수 있다니 새로운 사실이었다.






또 나중에 내 아이들이 나무와 식물에 좀 더 관심을 갖게 되면, 같이 나뭇잎을 주워보고 만져보면서 나도 나무와 꽃 등 식물에 대해 공부해야겠다는 생각도 했다. 환경전문기자이신 조홍섭 선배가 내 옆자리에 계시는데 가끔 같이 점심을 먹고 효창공원을 돌 때마다 꽃과 나무에 대해 설명해주곤 했었다. 그때마다 해박한 선배의 지식에 감탄사만 내뱉었는데, 우리 아이들에게 나도 우리 주변의 꽃과 나무에 대해 알려주려면 조금씩 꽃과 나무에 관심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처럼 우리 주변에 있는 모든 것들을 낯선 눈으로 쳐다보면 우울할 틈도 허무할 틈도 없다. 이 세상은 좀 더 알고 싶은 대상이 되고, 하고 싶은 일도 많아진다.

 

겨울바람이 휑하니 불면 몸도 마음도 꽁꽁 얼어붙는 것 같다. 그렇다고 집안에 박혀 아이들과 괜한 씨름하며 우울해할 필요는 없다. 얇은 옷을 여러 겹 겹쳐 입고 아이 손을 잡고 위풍당당 잠시 나가보자. 아이와 함께 또 다른 아이가 되어 하늘과 구름과 새를 낯선 눈으로 구경해보자. 낙엽도 함께 주워 여우도 만들고 잠자리도 만들어보며 동심의 꽃을 활짝 피워보자.






두 아이를 재우고 밤을 새워가며 육아기를 쓰고 있는 나 역시 허무나 우울의 감정 따윈 쓰레기통에 던져버리고,  아이와의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기로 마음을 다잡는다. 지금 이 순간은 다시 오지 않을 소중한 시간이니까.






양선아 기자 anmad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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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선아 기자
열정적이고 긍정적으로 사는 것이 생활의 신조. 강철같은 몸과 마음으로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인생길을 춤추듯 즐겁게 걷고 싶다. 2001년 한겨레신문에 입사해 사회부·경제부·편집부 기자를 거쳐 라이프 부문 삶과행복팀에서 육아 관련 기사를 썼으며 현재는 한겨레 사회정책팀에서 교육부 출입을 하고 있다. 두 아이를 키우며 좌충우돌하고 있지만, 더 행복해졌고 더 많은 것을 배웠다. 저서로는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자존감은 나의 힘>과 공저 <나는 일하는 엄마다>가 있다.
이메일 : anmadang@hani.co.kr       트위터 : anmadang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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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선아 기자의 육아의 재발견] “만두달”이라는 딸이 준 선물, 동심 imagefile 양선아 2010-12-03 17465

Q.수면 거부에 대해 여쭙고 싶습니다.

저희 아기는 만 7개월 된 아기인데요, 밤이고 낮이고 졸려서 눈을 비비고 머리를 박으면서도 자는 것을 거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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