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드라마 <마지막 전쟁>에서 부부싸움하는 한 장면.
“아이, 정말. 힘들어 못해먹겠네. 왜 잠을 안자는거야! 도대체 왜 넌 네 맘대로만 하는거니?”
남편이 딸에게 버럭 소리를 쳤다. 남편이 1시간이 넘게 딸의 몸을 주무르고, 자장가를 불러줬지만 딸은 좀처럼 잠잘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날은 베이비시터 이모님(세 번째 재중동포 이모님)이 별안간 아프다며 휴가를 낸 날이었다.
평소보다 일찍 집에 들어온 남편은 만삭인 나를 위해 땀을 뻘뻘 흘리며 저녁 식사를 준비했다. (이 이야기는 8월 중순께 겪은 일이다. 둘째 출산은 지난 8월21일 했다. 출산과 산후조리때문에 뒤늦게 글을 올린다. 현재 육아휴직중이며, 앞으로 두 아이를 키우며 겪는 일들에 대해 써보려 한다.)
일하고 돌아와 식사 준비에 아이 목욕 등 아이 보살피는 일까지 했으니 남편은 고단함을 느꼈을 것이다. 조금이라도 빨리 아이를 재우고 눈을 붙이고 싶었을게다. 그러나 인생이 그렇게 자기 맘대로 되던가. 세 살배기 아이를 둔 부모라면 아마 알 것이다. 자기 뜻대로 아이를 조종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자기 맘대로 시간을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을. 딸은 아빠가 서서히 주전자처럼 부글부글 끓고 있다는 사실도 모른채 잠자리에서 장난만 치려했다.
“애기한테 소리는 왜 질러? 만삭 배로 하루종일 땀 흘리며 아이랑 놀아준 사람도 있는데, 1시간 잠재우는 게 그렇게 힘들어? 쳇. 소리친다고 해결되는거야? 소리는 왜 질러? 아이 놀라게!”
출산 휴가를 냈지만 제대로 쉬지 못하고 아이에게 종일 시달린 나도 불만섞인 목소리로 남편에게 짜증냈다. 평소라면 이런 상황에서 남편은 화를 삭이고 아이를 다시 재우던가, 아니면 그 상황을 피하기 위해 잠시 자리를 비웠을 것이다. 연애 2년, 결혼생활 3년 동안 우리 부부는 큰 소리를 오가며 싸워본 적이 없다. 문제가 생기면 대화로 풀었고, 어느 한 쪽이 양보를 해 큰 싸움이 될 일이 없었던 것. 그런데 이날은 둘째 출산을 앞두고 결혼생활 이후 최대 부부싸움을 하고 말았다. 그것도 첫째 아이가 보는 앞에서 말이다. 남편과 나는 상당한 시간 동안 서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말싸움을 했다.
“그런데 당신! 정리 좀 하고 살 수 없어? 입장 바꿔 좀 생각해봐. 바깥에서 일하고 집에 돌아왔더니 집은 난장판이고, 식탁 위에는 식칼 두 개가 돌아다니고 말야. 아이 키우는 집에서 식칼이 버젓이 식탁 위에 있는 게 말이 되냐? 도대체 정신이 있는거야 없는거야? 하루 이틀 일이 아니야. 이건. 너 정말 정리 안해. 평소에도 출근할 때 아침에 이불도 안개고 나가고, 음식 한번 하면 부엌 난장판 만들고 말야. 아줌마 아픈 것, 그거 네 탓도 있어. 임마. 네가 평소에 좀 도와드렸어봐. 그렇게 아프시나. 정말 스트레스 무지 받는다. 밖에서도 스트레스, 안에서도 스트레스. 힘들다. 힘들어.”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는데? 나도 오늘 힘들었다고. 당신만 힘들어? 민지가 하루종일 밖에 나가서 놀자고 하는데 밥은 먹여야겠고 해서 김밥 싸서 나가느라고 식칼 못치웠다. 만삭 배로 하루 종일 땀 뻘뻘 흘리며 애기 돌보는 상황에서 집을 어떻게 깨끗이 치워? 그리고 내가 뭘 평소에 그렇게 정리를 못하는데? 그리고 아줌마 아픈 게 왜 내 탓이야? 나도 당신처럼 밖에서 똑같이 일하는 사람이야. 바깥 일 하면서 집안 일도 잘 해야해? 그리고 정리 좀 못하면 어떠니? 내가 모든 걸 잘해야해? 지금 이 상황에서 내가 정리 못하는 게 왜 문제가 되는데?”
난데없이 남편이 쏟아놓는‘정리론’에 난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다. 잠투정을 하는 아이에게 화가 난 남편은 평소 내게 불만스러웠던 점들을 말하며 화풀이를 하고 있었다. 만삭인 아내에게 그것도 아이 보는 앞에서 큰소리를 치는 남편에게 너무 섭섭하고 화가 나 내 눈에선 눈물이 콸콸 쏟아졌다. 나는 대성통곡을 하며 울었고, 그 모습을 지켜보던 딸 역시 엉엉 울었다. 세살 된 딸은 “엄마 울지마”하며 내 눈물을 닦아줬고, 남편에겐 “아빠! 소리지르지마!”하며 소리를 질렀다. 아이가 우는 모습에 나는 화가 더 났고, 소리를 지르는 남편이 더 미웠다. 혹시라도 아이에게 정신적 충격을 줄까봐 싸우는 순간에도 딸이 걱정됐다. 그래서 난 딸을 안고 달래면서 설명을 해줬다. “민지야. 엄마 괜찮아. 민지도 옆집 언니랑 놀다보면 서로 싸우고 화해하지? 엄마도 아빠랑 서로 화날 일이 생겨서 싸우고 있는거야. 금방 화해할테니까 너무 걱정하지마.”라고 말해줬다. 아이는 그 얘기를 듣고 조금 안심이 됐는지 울다 지쳐 잠이 들었다. 마치 신파조의 한 드라마에서나 볼 수 있는 장면이 우리 집에서 연출됐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날 싸움의 원인은 아이의 잠투정에서 시작됐지만, 사실은 남편과 내가 베이비시터 문제로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고 있어서였다. 지난 1년 동안 딸을 잘 키워주신 이모님 C가 자신의 체력으로는 두 아이를 키울 수 없다며 둘째 출산을 앞두고 다른 시터를 구하라고 통보해왔기 때문이다. C는 일을 그만두기 전에 잦은 병치레를 했고, 그만큼 우리 가족 모두 불편할 수 밖에 없었다.
시댁과 친정이 모두 지방인 나는 산후조리원에서 2주 동안 산후조리를 하려고 예약을 해 둔 상황이었다. 만약 이모님이 출산 전에 일을 그만두신다면 산후조리원에 있는 동안 첫째 아이는 누가 돌봐주나? 또 이모님이 그만두신 상황에서 첫째가 내게 많이 매달린텐데 산후조리는 어떻게 하나? 믿을만한, 또 우리랑 잘 맞는 이모님을 만날 수는 있을까? 새로운 이모님은 어떻게 구하고, 새 이모님과는 어떻게 적응하나? 등등 우리 부부는 날마나 고민거리에 휩싸여 있었던 것이다.
» 머리카락을 뽑아 텅 비어있는 머리 한 쪽. 아직도 저 사진을 보면 가슴이 아프다. photo by 양선아
우리가 베이비시터 문제에 관해 이토록 예민한 것은 두번째 시터 B에 대한 안좋은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첫번째 이모님 A가 일을 그만둔 뒤(회사 복직 일주일 전 그만두겠다 하신 그 이모님. 관련 내용은 이전 글 참고) 우리 부부는 시간이 없어 B를 부랴부랴 선택했다. A는 까다롭게 면접을 했지만, B를 선택할 땐 그저 인상 하나 보고 선택했다. 밝고 명랑하고 인자해 보였다. 대부분의 시터는 첫 달은 매우 만족스럽게 아이를 돌봐주신다. B 역시 첫 달은 만족스러웠다. 그런데 시간이 가면 갈수록 문제가 터졌다. 두 달째 들어 서로 익숙해질 즈음, 입주해서 일하시는 이모님께서 밤에 자꾸 나가시려 했다. 찜질방을 다녀오겠다, 친구 만나오겠다 등등 이유는 다양했다. 저녁 나절 전화가 오는데 옆에서 듣고 있노라면 남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이가 가끔 집에 없던 풍선 등을 가지고 있어 누가 줬냐고 물어보면 “할아버지가 줬다”고 했다. 이상한 기분이 들어 하루는 일하다 낮에 전화를 해보니 B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너무 걱정돼 남편이 일하다 말고 집으로 가봤더니 B는 우리에게 말도 하지 않고 아이를 데리고 자신의 볼 일을 보고 저녁 나절 늦게 들어온 걸 알게 됐다. 그즈음 딸은 갑자기 자면서 머리 양쪽을 뽑기 시작했는데 마치 탈모 증상 같았다. 말 못하는 아이가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것 같았다. 머리 뽑는 습관을 잡기 위해 머리를 빡빡 밀어줄 수 밖에 없었고, 우리는 아이의 상태를 보고 결국 두 달 만에 B를 그만두게 하고, 세번째 이모님 C를 지인을 통해 소개받았다.
두 번의 실패로 걱정이 태산이었던 우리는 C를 만나 비로소 안심하고 아이를 맡길 수 있었다. C 이모님이 오신 뒤로 아이가 머리를 뽑던 현상도 사라졌고, 아이는 훨씬 명랑해졌다. C는 우리 부부가 퇴근하면 항상 아이의 일상에 대해 말해줬다. C는 아이 눈높이에 맞춰 대화도 많이 했고, 항상 아이와 즐겁게 놀아주는데 집중했다. 아이는 이모를 너무나 좋아했고, 엄마에게 집착하는 현상도 많이 줄어들었다. 그런 C와의 생활이 안정적이었기에 우리 부부는 시터분과 잘 지내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우리 둘은 이모님을 가족처럼 대해 드렸다. 이모님 생일날엔 새벽에 일어나 미역국과 갈비찜 등 생일상을 차리기도 했고, 옷 등 깜짝 선물을 가끔 드리기도 했다. 아무리 늦게 퇴근해도 나는 이모와 대화를 하려 노력했다. 명절때면 용돈이나 선물을 꼭 챙겨드렸고, 이모님 가족에게 우리가 도움될 일이 있으면 발벗고 나서서 도왔다. 이모님과 가끔 나들이나 외식도 같이 했다. 이모님을 시터가 아닌 가족으로 대했기에 남편은 이모님을 대신해 요리도 자주 했다. 그런데 그런 이모님이 둘째 출산을 앞두고 우리를 난처한 상황으로 몰고가니 우리 부부가 얼마나 화가 많이 나고 섭섭했겠는가.
결국 이날 싸움은 남편의 사과로 끝이 났다. 만삭 배로 눈물 콧물 쏟고 있는 날 보던 남편이 내게 미안함을 느꼈는지 담배 한 대를 피우고 와서 나를 꼭 껴안으며 화해를 청했다.
“민지 엄마야... 내가 미안해...소리치고 화낸 것은 정말 미안해... 그런데 오빠 말이 틀린 것은 아니잖아. 우리 앞으로 정리 좀 하고 살자. 많은 걸 원하는 게 아냐. 도마나 식칼 같은 위험한 것들은 쓰고 싱크대쪽으로 바로 치우자는 거야. 너보고 모든 걸 잘 하라고 하는 것이 아니고... 오늘은 정말 미안해.. 그만 울어... 다시 안그럴게...우리 서로 이해하며 살자. 내가 요즘 너무 스트레스 받았나봐. 아줌마 문제도 그렇고, 회사 일도 그렇고. 그만 울고 자. 응? 우리 좋은 이모님 만날거야. 너무 걱정하지마. 응?”
남편의 사과에 얼었던 내 맘은 풀렸고, 나 역시 남편에게 사과하며 ‘신파조의 드라마’는 해피엔딩으로 끝이 났다. 이날 싸움으로 난 남편이 정리정돈 문제에 관심이 있는 줄 알게 됐고(사실 직장다닐 땐 정리정돈은 신경 끄고 산 것이 사실이다. 정리정돈 문제는 이날 싸움 뒤 상당히 신경쓰고 있다.), 남편은 내가 시터 문제로 너무 힘들어함을 이해했다. 아이가 보는 앞에서 부부싸움을 했지만, 우리 둘이 갈등을 해결하고 다음날 보통때와 다름없는 모습을 보여주니, 딸은 큰 충격을 받은 것 같지는 않았다.
시터와의 생활은 이렇듯 험난하고 험난하다. 한 고개를 넘으면 또 다른 고개가 있다. 예측불허의 일들이 터지고, 변수가 많다. 그래서 그냥 어린이집에 아이를 보낼까 고민도 해본다. 그러나 또 좋은 시터분을 만나서 ‘또 하나의 가족’처럼 잘 지낼 수 있으리라는 희망과 기대를 저버리기가 쉽지는 않다. 그만큼 좋은 시터를 만나면 안심하고 아이를 맡길 수 있고, 정시 퇴근 직업이 아닌 우리 부부는 시터쪽을 선택할 수 밖에 없다. C의 지인을 통해 네 번째 이모님 D를 소개 받았다. D는 내가 산후조리원에 있을 때 C와 함께 첫째 아이를 돌봐주시기 시작했고, 현재 난 D와 함께 아이 둘을 키우고 있다. D는 55살이시고 중국 대련이라는 곳에서 오셨다. 중국에 있을 때 한국 관련 식당과 한국인 가정에서 일을 많이 하셨다고 한다. D와도 C와 함께 있을 때처럼 즐겁고 행복한 시간들이 되길 기대해본다.
양선아 기자 anmadang@hani.co.kr
◆ 베이비시터와의 험난한 생활(1) 바로가기
http://babytree.hani.co.kr/archives/9621
아이 앞에서 부부싸움했다면? 아이 앞에서 부부싸움은 하지 않는 것이 좋다. 부부 관계가 좋고 화목해야 당연히 아이도 행복할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불가피하게 아이 앞에서 싸우게 되는 경우도 있다. 아이 앞에서 부부싸움을 하게 되면 아이 정서에는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또 아이 앞에서 부부싸움을 한 경우 아이에게 어떻게 해줘야 상처를 덜 줄 수 있는지도 알아봤다. 도움말은 아주대 의대 정신과학교실 조선미 교수가 해주셨다. 양선아 기자 anmadang@hani.co.kr 1. 아이 앞에서 부모가 자주 싸우면 아이의 정서에 어떤 영향을 미치나요? 아이에게 어떤 문제가 일어날 수 있는지요? 아이에게 있어서 부모는 이 세상이자 우주이고 발딛고 있는 땅입니다. 부모가 다투면 단순하게 우리 부모님이 다투는구나라고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세상이 무너질 것 같은 불안을 느낍니다. 즉, 기본적인 안전감이 흔들리면서 정서가 불안정해지고, 사소한 일에 쉽게 불안을 느끼거나 우울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