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철 안에서 우연히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짧은 은색 머리카락과 단정한 양복, 그리고 양 어깨에 걸친 가방은 멀리서도 그 사람이 누구인지를 알게 했다. 5년 전 보건복지부에서 기사를 썼던 시절, 복지부 대변인실에 있었던 그는 아침부터 보도자료를 돌리며 기자들과 만났다. 가깝고도 멀었던 공직자와 기자 간 관계였지만 시간이 지나 예상하지 못한 순간 만나면, 멀었던 관계는 사라지고 가까운 관계만 남는다. 지나간 시간은 슬프거나 날선 시간마저 따뜻하게 바꾸어 놓는 마법이 있었다. 지나간 시간과 오랫동안 가지 못한 장소는 아름답게 남는다는 점에서는 비슷했다. 그에게 달려가 말을 걸었다. 한껏 술을 마신 목소리였지만 놀란 표정은 반가운 얼굴로 바뀌었다. 사람을 대하는 긍정적인 능숙함도 여전했다. 잠시나마 시간을 5년 전으로 되돌려 놓을 만큼 세월은 그를 비켜간 모습이었다. 외모에서부터 태도에 이르까지 그는 그대로 였다.

 

그는 동행하는 사람을 소개했다. 건장한 키에 짙은 코트를 걸쳐 입은 동행자가 인사를 하며 명함을 건넸다. 명함 위에 새겨진 글자는 간결하게 그를 설명했다. 건네 받은 명함은 그가 어떤 일을 하고 어떤 자리에서 누구를 만나며 이 시간까지 내가 알던 사람과 왜 만났으며 조금 전까지 어떤 이야기를 나눴을지를 짐작하게 했다. 명함에 새겨진 직책을 읽었을 때 깃털처럼 가벼운 종이 한 장이 무겁게 느껴졌다. 악수를 하기 위해 손을 내밀면 같은 방식으로 손을 내밀어야 하는 것처럼, 소개받은 그가 명함을 건넸을 때 같은 방식으로 명함을 건네야 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명함을 주었던 그는 나의 명함을 기다리고 있었다. 5년 전에 흔했던 내 명함은 이제 없다는 걸 느끼는 순간 과거 속에 잠시 머물렀던 내 모습은 다시 현재의 나로 되돌아 왔다. 많았던 기자 명함은 더 이상 없었다.

 

한 달전쯤이었던가, 서천석 선생님이 진행하는 팟캐스트에 초대를 받았을 때도 그랬다. 책과 강연을 하며 대한민국 육아 멘토란 수식어가 따라다니는 서 선생님 명함엔 ‘의사’라고 적혀 있었다. 여러 활동을 하는 사람도 여러 평가를 듣는 사람도 자기만의 정체성을 담은 글자를 새기며 자신을 소개했다. 명함은 그래서 한 개인이 자신을 어떻게 정의하는지를 보여준다. 회사를 그만두고 아이를 키우면서 갖게 된 고민하나는 난 나를 정의하기가 쉽지 않았다. 서 선생님과 만나자마자 명함을 만들지 못한 이유를 설명해야 했다. 

 

 “명함을 아직 만들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빠이기도 하고, 심리학 공부를 하는 학생이기도 하고, 그러면서 글을 쓰는 제가 저를 뭐라고 정의해야 하는지 아직까지 모르겠습니다.”

 

외부에서 강연이나 식사자리가 있으면 사람들은 명함을 건네지 못한 나에게 ‘선생’ 또는 ‘작가’라고 불러주지만 아직까지도 기자란 호칭이 더 친숙했다. 기자라고 불려진 시간은 10년을 훌쩍 넘겼고 작가나 선생님이란 호칭을 들은지는 이제 막 1년을 넘었다. 동네에선 선생이나 작가라는 호칭보다 ‘민호 아빠’가 더 익숙했다.

 

나에게 명함이 없는 것처럼 엄마들도 대부분 명함이 없다. 놀이터에서 만나든, 도서관에서 만나든, 부모와 부모끼리 만나면 그 만남이 초면이라도 어색하지 않았다. 명함을 주지 않아도 주저함이 없었던 건 상대방이 명함을 준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전철에서 처음으로 만난 사람과 인사를 할 때 명함을 주고 받는 게 당연한 것처럼, 부모들끼리 만나면 누구누구의 엄마 또는 누구누구의 아빠라고 말하는 방식이 당연했다. 육아를 하는 부모들은 자신을 소개할 때 온전한 자신보다 아이를 키우는 사람으로 서로가 서로를 바라봤고 그런 평가를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동네에 머무를 때엔 명함이 없어도 불편함이 없었지만, 동네를 벗어나 새로운 사람들과 만나보니 명함이 없다는 사실에 어색했다.

 

  “아직 명함을 만들지 않았습니다.” 

전철 안에서 명함이 없다고 밝히자 동료를 소개해 준 복지부 지인이 명함대신 말로써 동료에게 나를 소개했다. 5년 전쯤 복지부를 출입했던 기자였고, 예기치 못한 가족과 이별, 그리고 현재 육아와 함께 글을 쓰고 있다고 전했다. 명함을 주지 못했던 잠깐의 어색함을 지나 두 사람에게 전철 안에서 육아의 즐거움을 꽤 오래 말했다. 늦은 시간 직장 일 때문에 술 한 잔을 걸친 사람들 앞에서 가족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의 소중함과 즐거움을 강연회 자리에 온 것처럼 한껏 이야기했다.

 

전철에서 내릴 때가 되어 작별 인사를 할 즈음 질문을 받았다. 
“그런데 지금 아이는 누가 보나요?”
 밤 10시 반을 넘어간 시간, 짧은 만남 앞에서 육아가 즐겁고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이 소중하다고 한참 말했던 난 그 질문 앞에선 순간 아무런 말을 할 수 없었다. 당황스러웠다. 그 당황스러움은 말과 행동의 간극만큼 컸다. 왜 아빠는 이 시간에 여기에 있으며 아이는 누가 돌보느냐는 질문은 지금까지 내가 했던 나의 말을 모두 뒤집는 느낌이었다. 육아가 즐겁다고 말을 하면서 몸은 아이를 떠나 전철 안에 있었으니까 말이다. 대학원에서 공부가 늦게 끝나는 날엔 학교 돌봄 선생님이 집으로 오셔서 아이를 돌본다고 답을 하고 우리는 헤어졌다. 나를 어떻게 정의할지 몰라 명함을 만들지 못한 것만큼이나, 내 말과 내 행동 사이에 나의 모습은 어디에 있는지 혼란스러웠다. 육아의 즐거움과 의미를 말했지만 따지고보니 어느덧 지난해 가을부터는 학교에 들어가 새로운 내 삶을 찾기 위한 긴 여행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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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철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 “노력하는 한 방황한다”는 괴테의 말이 떠올랐다. 명함이 없었던 지난 5년 동안 글을 쓰는 ‘나’와 육아를 하는 ‘나’ 사이에서 방황을 했다. 아이를 돌보는 기쁨과 아이를 돌봐야 한다는 의무 사이에서의 방황, 해야 하는 삶과 하고 싶은 삶 사이에서의 방황은 어쩌면 아빠로서의 삶보다는 나의 삶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일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아이 사춘기가 걱정돼 시작한 상담심리 공부. 어느새 공부의 목적은 아이 돌봄을 넘어 심리학과 관련된 책을 쓰기 위한 연습을 향하고 있었다. 그래서 아이와 떨어진 시간은 내 삶을 찾아 나선 시간이었다.

 

아이가 어떤 삶을 살던 그 아이의 삶을 지지하고 응원하고 싶었다. 그러면서 한편으론 그런 아이가 꿈을 찾아나선 아빠의 삶을 지지하고 응원해주길 바랐다. 설사 아이의 지지가 없더라도, 내 삶을 지키는 건 아이가 아니라 나 임을 기억하기로 했다. 부모와 아이의 삶은 하나가 아니라 둘로 나뉜 채로 공존할 때 행복할 테니까. 심리학에서 ‘분리’의 개념은 냉정함이 아닌 그렇게 존중의 의미를 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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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구
이름 앞에 붙는 수식어를 만들고 다듬느라 35년을 흘려보냈다. 아내와 사별하고 나니 수식어에 가려진 내 이름이 보였다. 해야 할 일보다 하고 싶은 일을 찾으려고 기자 생활을 접고 아이가 있는 가정으로 돌아왔다. 일 때문에 미뤄둔 사랑의 의미도 찾고 싶었다. 경험만으로는 그 의미를 찾을 자신이 없어 마흔에 상담심리교육대학원에 진학했다. 지은 책으로는 '지금 꼭 안아줄 것' '나의 안부를 나에게 물었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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