녀석의 팔꿈치와 어깨에 이상 징후가 발견되고 여름이 지나갔다. ‘선수 보호차’ 일체의 야구 행위를 금지한 뒤 신기하게도 녀석의 열정은 정상치로 돌아왔다. 거의 중독처럼 매일 보던 야구 경기에 대한 관심도 시들해져 오히려 내가 궁금해 TV를 켜는 날도 생겼다. 이렇게 야구에만 집중되던 녀석의 관심은 이제 축구, 배드민턴, 테니스 등의 다양한 스포츠와 음악회나 체험 행사 등으로 골고루 퍼지고 있다.

 

한글날인 10월9일, 나들이에 나섰다. 목적지는 ‘예쁜 한글 엽서전’이 열리는 청계광장이었다. 버스를 타고 시청 앞에 내리니 한글문화축제도 열리고 있었다. 시청에서 청계광장을 거쳐 내친 김에 광화문 광장으로 향했다. 광장에 들어서자 세월호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노란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녀석은 이따금 TV에서 세월호 뉴스가 나올 때마다 물었다.

“아빠, 아직 찾지 못한 사람이 몇 명이지?”

언제부턴가 나는 기억이 가물가물했다.

“10명인가, 9명인가... 잘 모르겠네.”

 

녀석은 바로 이날, 그 자리에서 정확한 답을 찾았다. 9명. 광화문 광장 초입에 이들의 사진과 사연이 적힌 노란 간판이 있었는데 녀석은 그걸 지나치지 않았다. 아픈 가슴을 추스르고자 휘리릭 훑고 잡아끄는데도 녀석은 움직이지 않았다. 한참을 섰다 앉았다 하며 9명의 사연을 꼼꼼히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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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에 들어서니 노란 스폰지를 잘게 잘라 리본을 만드는 좌판이 여러 개였다. 스폰지에 본드를 붙여 리본 모양을 만들거나 만들어진 리본에 고리를 다는 작업의 손길이 필요했다. 아이는 작업을 자처했다. 우리 세 식구는 30분 가까이 수북이 쌓인 노란 리본에 고리를 달았다. 그리고 가방에도 달았다. 아이와 함께 나온 여러 가족들이 작업을 함께 도왔다. “가슴이 아프다”며 지나가려는 엄마 아빠를 아이들이 끌었다.

광장을 빠져나오며 아이에게 물었다. 9명 사연을 찬찬히 읽어 보니 기분이 어떠냐고.

“응. 슬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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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상상 속 린치까지 유발하는 인면수심의 존재들이 많지만... 인지상정과 측은지심, 이런 게 사람의 모습이다. 누구의 강요도 없이 자발적으로 노란색 리본을 만들던 아이들의 작은 손에서 난 성선설의 강력한 근거를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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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규 기자
서른두살 차이 나는 아들과 마지못해 놀아‘주다가’ 이제는 함께 잘 놀고 있는 한겨레 미디어 전략 담당 기자. 부드럽지만 단호하고 친구 같지만 권위 있는 아빠가 되는 게 꿈이다. 3년 간의 외출을 끝내고 다시 베이비트리로 돌아왔다.
이메일 : dokbul@hani.co.kr      
블로그 : plug.hani.co.kr/dokb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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