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와 함께 탄생한 수많은 걱정들
험한 세상에서 아이를 안전하게 건강하게 키우는 건 기적일까
출산을 하고 나서 7개월 동안 병원 다닌 게 지난 7년 동안 다닌 기간과 맞먹는 것 같다. 노산의 어려움이란 바로 이런 것인지 허리며 어깨며 발이며 쑤시고 아픈 데가 한두군데가 아니다. 하지만 단지 몸 상태가 이전보다 많이 나빠져서만은 아니다.
지난 주 신순화씨가 칼럼에서 쓴 것처럼 ‘엄마는 아플 수도 없고 아파서도 안되는 사람’이기 때문에 지금처럼 휴직중인데다가 친정엄마에게 아기를 맡기고 짬짬이 병원에 다닐 수 있을 때 열심히 다니고 있다.
아파서는 안되는 사람이 왠 병원이냐고? 더 아플까봐 그래서 아이를 돌보기 힘들어질까봐 미리미리 예방 차원에서 다니는 것이다. 옛날 같으면 병원 가기 귀찮아서라도 조금 불편하거나 아프면 버티기로 일관했는데 이제 감기 기운만 조금 있어도 병원에 달려간다. 릴레이로 이어지는 걱정 때문이다. 이러다가 많이 아프면 어떡하지? 많이 아파서 젖을 줄 수 없거나 아이를 돌볼 수 없으면 어떡하지? 많이 아프다가 죽으면 우리 애는 누가 돌보지? 할머니와 이모 고모가 잘 봐주더라도 엄마 없는 우리 애 불쌍해서 어떡하지? 아주 그냥 최루성 장편소설을 한편 쓴다. 쓰면서 혼자 도취해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고 난리다. 우리 애 불쌍해서 어떡해 엉엉엉~~~
이것도 호르몬의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아이를 낳고 걱정을 달고 살게 됐다. 앞에서 이야기한 변종 건강염려증이 첫번째 증상. 특히나 늦은 나이에 아이를 낳으니 아이가 성인이 될 때까지 건강하게 살면서 아이를 키울 수 있을까하는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애 대학까지 보내놓으면 벌써 환갑이니 아이를 한창 키워야 하는 40대 50대를 무사히 보내야할텐데, 티브이에서 40대 무슨 성인병이 급증했다 이런 소식을 들으면 불안해지고 아이를 한창 키우는 엄마가 암에 걸린 이야기의 다큐멘터리라도 보면 꼴딱 밤샘이다.
그 다음 걱정되는 건 각종 뉴스에 등장하는 험악하고 끔찍한 유아 관련 사고들... 특히 어린이 실종 사고 관련 소식은 악몽이다. 며칠 전 중국의 유아 실종 문제에 대한 보도를 보고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뿐만 아니라 마트 같은 데서 예전 같으면 무심하게 넘겼을 미아찾기 방송 같은 것도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다. 며칠 전에도 마트에서 4살짜리 아이를 찾는다는 방송을 듣고는 내 눈에 쌍심지를 켜고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아이를 찾는가 하면 집에 와서도 애 찾았을까? 찾았겠지? 누가 데려갔으면 어떡하지?
나중에 나도 애를 잃어버리면 어떡하지? 또 릴레이 시작이다. 이제 걸어다니면 어디 데려 나갈 때 끈으로 묶어서 나갈까? 그런 제품도 있다던데... 그런데 나쁜 놈이 그 끈을 끊어 버리고 애를 납치할 수도 있잖아... 어떡하지? 유치원은 어떻게 보내지? 요새는 학교나 유치원도 안전지대가 아니던데.. 걱정을 하다 보면 이런 결론에 이르기도 한다. 세상에... 내가 미쳤지... 이렇게 험한 세상에 어떻게 아이를 낳을 생각을 했을까! 이런 세상에서 아이를 안전하고 건강하게 키운다는 건 기적이야 기적!
그래도 여기까지가 현실성이 있는 걱정이라면 이제는 전쟁이나 지진까지 나의 근심 바운더리 안에 들어오게 됐다. 이전에는 전쟁 위기 어쩌구 하는 기사가 나오면 ‘고마해라... 그 레퍼터리 마이 묵었다 아이가...’ 하고 코웃음을 치곤 했다. 그런데 이번 천안함 사태 때 보수꼴통들이 전쟁위기론을 들고 나오자 밤잠을 잘 수가 없었다. 전쟁 나면 저 아이를 어떻게 해야 하나. 도대체 한국전쟁 때 엄마들은 기저귀도 못땐 아기들을 어떻게 업고 피난을 다녔을까. 피난은 어불성설이고 난방 안들어오고 먹을 것도 없으면 우리 애 어떡해야 하지? 아파트에 포탄이라도 떨어져서 애가 죽으면 어떡하지? 아니 나 죽고 아기 혼자 남으면 그건 또 어떡해?
으흑~~~ 얼마 전에는 티브이에서 영화 <해운대>를 보고나서는(요새 나의 ‘최신작’ 관람은 다 티브이, 그것도 공중파 티브이에서 해결한다) 쓰나미가 오면 어떡하지?라는 근심으로 밤새 뒤척였다. 이러다보니 나의 상상의 나래는 갑자기 집이 무너지면 어떡하지?라는 터무니없는 근심(이라면 좋겠지만 백화점도 한강다리도 무너지는 나라 아닌가) 으로까지 마구마구 확장되면서 거의 매일밤 공포영화 찍고 눈물없이 볼 수 없는 장편소설 쓰느라 바쁘다.
아마 혼자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조그만 아이를 둔 엄마의 보호본능이나 방어본능이 부풀려져 이런 걱정병이 생겼을 것이다. 주변에 물어보니 아이가 크면서 이런 걱정병도 자연스럽게 줄어든다고 한다. 또 어른들은 이런 이야기도 한다. 아이들을 지켜주는 신이 따로 있어서 톡 건드리면 부서질 것 같은 작은 아이들도 기적처럼 안전하고 건강하게 자라게 보호해준다고. 그래도 오늘 밤 엄마의 창작본능(공포영화+최루소설)은 아직 식을 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