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db79231dd2fde67d65e2ba73211bedc.만남이 있으면 이별이 있다. 또 이별이 있으면 또 다른 만남이 있기 마련이다. 그렇게 우리 삶은 거듭되는 만남과 이별의 과정 속에서 진행된다. 만남과 이별 속에서 우리는 때론 웃고 때론 울고 때론 화내며 그렇게 살아간다. 이런 만남과 이별의 공식은 베이비시터와의 관계에도 적용된다. 시터와의 만남이 있고 이별이 있고 그리고 또 다른 시터와의 만남이 있다. 그 과정 속에서 우리 가족은 웃고 울고 화내며 그렇게 일상을 꾸려가고 있다.

 

베이시시터 D를 만난 것은 민지를 1년이 넘도록 잘 키워주셨던 C가 도저히 체력이 안돼 아이 둘은 못 키우겠다고 손을 들면서였다. (이전 시터 A,B,C와 관련한 에피소드는 이전 글을 참고하시라.) 시터 D는 음식 솜씨가 좋았고, 말이 많았고, 둘째 민규를 아들이라는 이유로 정말 예뻐했다. 평소 아들 자랑을 많이 했으며, 식탁에서 남편 욕을 많이 했다. D는 식탁에서 갱년기 증상 때문에 그런 것 같다며 갑자기 눈물을 흘리며 우는 바람에 날 당황시킨 적도 더러 있다. 내가 마트에 장을 보러 잠깐 나가기라도 하면 1시간도 안돼 전화를 해댔다. “민지 엄마~민규가 젖 먹고 싶어하네~언제 와?”

 

민지보다는 민규를 아들이라는 이유로 편애하는 것이 좀 걱정이 되긴 했지만, 나는 D가 심성이 착하고 성실한 분인데다 음식 솜씨가 좋아 계속 호흡을 맞춰 나갔다. 그런데 갑자기 D가 비자 문제로 중국에 다녀와야 했다. 한 달 동안 나는 D를 기다렸고, D는 중국에서 가족들을 만나고 비자 문제를 해결하고 다시 우리집에 복귀했다. 그런데 D는 중국에 다녀온 뒤로 계속 몸이 아팠다. 하루는 이가 안좋고, 하루는 가슴이 콩닥대서 잠이 안오고, 하루는 목이 아프고... 급기야 “몸이 안 좋아 며칠 쉬어야겠다”는 말을 했다. 또 민규가 밤중에 자주 깨 젖을 먹으려 하다 보니 너무 힘들어했다. 밤에 잠을 잘 자야 하는데 민규 때문에 잘 수 없으니 너무 힘들다고 했다. (이때는 이모님이 민규를 데리고 잤고, 나는 민지만 데리고 잤다. 민규가 깨면 나는 이모 방으로 가서 민규에게 젖을 먹이고 돌아와 다시 잤다. 그땐 민지가 동생이 생겼다는 사실에 예민해 있어서 둘이 데리고 잘 수 없는 상황이었다.) 당시엔 나와 아이들이 두 달 넘게 감기를 앓아 나 역시 지칠대로 지쳐있는 상태였다. 내 코가 석 자인지라 결국 D에게 6개월 만에 이별 통보를 했고, 바로 나는 몇 명의 시터를 면접보고 시터 E를 들였다.  

 

시터 E를 들일 때는 이전 이모에게 부족했던 체력과 아이들과 즐겁게 놀 수 있는 능력을 중시했다. 이전 이모가 56살이었는데 시터 E는 47살의 젊고 건강한 이모였다. 다만 시터 E는 아이를 돌본 경험이 없었고, 식당 일만 하셨던 분이었다. 처음 면접을 보러 왔는데 화장을 진하게 하고 금 목걸이에 금 팔찌 금 귀걸이를 치렁치렁 하고 와 ‘역시 초보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하루 지내보니 외모와는 달리 아이도 잘 보고 성격도 서글서글한 것이 나랑 잘 맞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몸이 아팠던 상황이라 많은 것을 고려하지 않고 나는 시터 E를 바로 고용했다. 내가 육아휴직 중이니 아이를 돌본 경험이 없더라도 내가 아이 돌보는 것을 알려주면서 지내다보면 충분히 잘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E는 활달하고 유쾌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이제까지 만난 이모들 중에서 가장 아이들 눈높이에 맞춰 잘 놀아주는 인물이었다. 민지랑 숨바꼭질 놀이도 하고, 가위바위보를 한 뒤 게임을 하기도 하고, 놀이터 미끄럼틀에서 같이 뒹굴며 놀아줄줄 아는 사람이었다. 동생이 생긴 뒤로 내게 더 집착을 하던 민지는 E가 온 뒤로는 엄마를 덜 찾았다. 민지는 E를 참 좋아했고, 민규 역시 역동적으로 놀아주는 시터 E를 좋아했다.



또 E는 매우 건강했다. 생파를 반찬으로 먹는, 내게는 너무나 생소한 식성의 소유자였다. 우리 집 온 식구가 감기를 두 달 동안 앓아도 감기 한번 걸리지 않았다. 나는 지금도 그녀가 감기 한번 앓지 않는 것은 생파를 마치 오이 먹듯 아무렇지도 않게 잘 먹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그녀는 아이 둘을 버거워하지 않았고, 그렇게 수다스럽지도 않았다. 다만 E의 음식 솜씨는 별로였다. 국과 반찬 모두 입에 잘 맞지 않아 남편이 아침 식사를 거르는 횟수가 늘어갔다. 그러나 음식 솜씨가 뭐 그렇게 중요하랴. 모든 걸 잘 할 수는 없지 않는가. 아이들 음식 잘 챙겨 먹이고, 아이들과 잘 놀아주고, 성실하고 신뢰할 만한 인물이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쉽게도 시터 E와 또 이별을 해야 할 이유가 생기고 말았다.



2주 전 민지가 그네를 타다 다리를 접질려 병원에 다녀온 날이었다. 동네 정형외과에 대기 환자가 많아 2시간이 넘게 걸렸다. 다리를 절뚝거리는 민지를 유모차에 태우고 집에 돌아왔는데 집에 아무도 없다. 그날 오전 민규가 잠을 30분 밖에 자지 않았기 때문에 걱정이 됐다. 순간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나는 유모차에서 잠자고 있는 민지를 데리고 동네 놀이터 세 곳을 모두 가봤다. 이모가 민규를 데리고 갈만한 곳은 놀이터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 곳의 놀이터에서는 이모와 민규를 발견할 수 없었다. 갑자기 가슴이 콩닥콩닥댔다. 민지를 데리고 다니며 마음대로 자기 볼일을 보러 다녔던 과거 시터 B가 생각나면서 ‘설마... 설마....’하는 생각으로 이모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모 어디세요?”

 (천연덕스럽게) “응~ 뒤쪽 놀이터.”

 “네? 뒤쪽 놀이터요? 어디요? 저 지금 뒤쪽 놀이터인데 이모 안 보이는데...”

 (약간 놀라며) “어... 여기 뒤쪽 놀이터야... 금방 가... 10분이면 가... 나 갈게.”

 

 뚝.

 

 전화를 끊는다.

 

갑자기 내 얼굴이 홍당무처럼 벌게지고 손에선 식은땀이 흐르고 머릿속이 하얘졌다. ‘도대체 이 여자가 우리 애를 데리고 어디를 간거야?’라는 생각이 들면서 나는 분노에 떨고 있었다. 나는 아파트 정문 앞에서 이모가 나타나길 기다렸다. 한 10분이 지났을까... 그 10분이 내겐 1시간처럼 느껴졌다. 민규를 맨손으로 안고 웃으면서 이모가 나타난다. 민규는 좀 지쳐보였고 잠이 몰려와 눈이 작아져 있었다. 집에 들어오자마자 민규에게 젖을 물리니 민규는 바로 잠이 들었다. 지쳐서 잠이 든 민규 얼굴을 보니 더욱 화가 치밀어 올랐다. 젖을 물린 채로 난 낮지만 격앙된 어조로 이모에게 물었다.

 

 “이모, 어디 다녀오셨어요? 놀이터 다녀온 것 맞아요?”

 (약간 놀란 표정으로) “응. 놀이터에서 놀다가 저 뚝방 쪽으로 돌고 왔어. 민규가 밖에만 나가자고 해서.”

 (벌개진 얼굴로 한참을 침묵하다.. 격앙된 어조로) “이모! 솔직히 말씀하세요. 누구 만나시고 왔어요? 이모 솔직히 얘기 안 하시면 우리 이대로 갈 수 없어요. 저한테는 신뢰가 제일 중요해요. 저는 이제 직장 복귀하면 이모한테 전적으로 애 둘 맡기고 나가야 하는 사람이에요. 그런데 제가 이모 불신하게 되면 맡길 수 없죠. 솔직히 말씀하세요. 10kg 되는 아이를 그냥 안고 2시간이 넘게 이모가 뚝방 길을 돌았다고요? 그건 저도 못해요. 누구 만나고 오셨어요?”

(겁먹은 토기 눈으로) “어... 솔직히 얘기할게... 남편이 이 근처로 일하러 왔는데 잠깐 보자고 해서 떡볶이 먹고 뚝방길 좀 걷다 온거야...”

“이모 왜 거짓말을 하세요? 남편분이 근처에 왔으면 내게 전화해서 말하고 가시면 되잖아요... 뻔히 드러날 거짓말을 왜 하시는 거냐고요... 이모랑 나 사이엔 신뢰가 제일 중요한데, 이렇게 하시면 제가 어떻게 이모를 믿고 일을 하러 갈 수 있겠어요?”

“주인 입장에선 내가 누구 만나러 간다고 하면 안 좋아할 것 같아서 그랬지... 알았어... 미안해... 다음부터는 말하고 나갈게...”



아... 그 순간 치밀어오르는 분노란... 가슴에서 활화산이 폭발하는 것 같았다. 잠도 못 잔 아이를 자신의 필요에 의해 나가 시간을 보내고, 내게는 거짓말을 했다는 사실에 화가 났다. 내가 집에 있는데도 이런 일이 있다면 내가 집에 없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일이었다. 사실 이 일이 있기 직전 자꾸 E에게 전화와 문자가 자주 와서 신경이 거슬리던 터였다.



그러다 우연히 E의 핸드폰을 보게 됐는데 문자 내용이 남편과 아내 사이에 오갈 수 있는 내용이 아니었다. 직감적으로 이모에게 애인이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무튼 그런 의심을 하고 있던 와중에 이런 일까지 생기니 E에 대한 내 신뢰감은 바닥으로 추락했다. 민지가 E를 너무 잘 따르고 좋아했지만 이 일이 있고난 뒤 E와 나는 서로 불편한 관계가 돼버렸다. 며칠을 고민하고 주변 친구들과 상의를 하다 결국 난 E에게 이별을 통보했다.

 

E는 순순히 이별을 받아들였고, 본인도 그날 이후로 마음이 찜찜했다고 했다. 그렇게 우리는 이별을 했고, 나는  또 한 명의 이모님을 만났다. F 이모님이 마지막이 되어야 할 텐데... 복귀하기 전 아이들이 F 이모와 완전히 애착 관계를 형성해야 할 텐데... F 이모님과는 제발 무사히 아무 일 없이 민지를 1년 넘게 키워주셨던 C 이모님처럼 지내야 할텐데...

 

여러 시터를 만나고 이별하면서 이제는 시터를 교체하는 문제에 대해서 과거처럼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다. 만남이 있으면 이별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다만 아름다운 이별을 했으면 하는 바람이지만 말이다. 또 첫 달에는 누구나 잘 하고 열심히 하기에 첫 달 일하는 것만으로 그 사람을 평가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시터는 첫 달은 열심히 하다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본연의 성격을 드러낸다. 처음과 끝이 크게 다르지 않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리고 여러 시터를 겪어보니 어떤 문제가 터졌을 때 엄마의 직감을 믿는 것이 좋다는 결론을 내렸다. 아이들이 시터에게 적응한 시간이 아까워서, 또 좋은 시터를 만나지 못할까 하는 두려움 때문에 어떤 문제가 터졌을 때 뭉기적 거리며 시터 교체시기를 놓치면 문제는 더 커질 수 있다. 아이들은 다 적응하기 마련이고, 결국 우리 가족과 꼭 맞는 시터를 빨리 찾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시터 E를 교체하는 문제로 상당히 마음의 갈등을 겪었지만 난 내 직감을 믿었고 일사천리로 이별과 만남이라는 과정을 거쳤다.

 

시터 F와의 만남은 과연 어떤 추억들을 우리 가족에게 가져다줄까. 부디 즐겁고 행복하고 좋은 추억이길. 온전히 내가 아이들을 믿고 맡기고 일터에 나갈 수 있도록.



양선아 기자 anmad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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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선아 기자
열정적이고 긍정적으로 사는 것이 생활의 신조. 강철같은 몸과 마음으로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인생길을 춤추듯 즐겁게 걷고 싶다. 2001년 한겨레신문에 입사해 사회부·경제부·편집부 기자를 거쳐 라이프 부문 삶과행복팀에서 육아 관련 기사를 썼으며 현재는 한겨레 사회정책팀에서 교육부 출입을 하고 있다. 두 아이를 키우며 좌충우돌하고 있지만, 더 행복해졌고 더 많은 것을 배웠다. 저서로는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자존감은 나의 힘>과 공저 <나는 일하는 엄마다>가 있다.
이메일 : anmadang@hani.co.kr       트위터 : anmadang21      
블로그 : http://plug.hani.co.kr/anmad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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